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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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단지 유대인 문제가 아니었으며 유대인의 역사에만 고유한 사건도 아니었다. 홀로코스트는 우리의 합리적 현대 사회에서, 우리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 그리고 인류의 문화적 성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태동해 실행됐으며, 바로 이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그러한 사회와 문명과 문화의 문제다.

                                                   - 지그문트 바우만,『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홀로코스트(재앙)를 겪은 부부들은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예의 바르고 교양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앙 앞에서 순식간에 인간성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서로에게 실망해 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속으로 간절히 빈다. ‘오늘도 무사히...... .’ 항상 지뢰밭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재앙은 이제 일상이다. 교통사고, 산업재해, 온갖 사건사고...... 이제는 코로나 19까지 우리는 ‘인류 종말의 시대’에 산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취해야 한다. 일에 취해, 돈에 취해, 술에 취해, 운동에 취해, 공부에 취해, 출세에 취해, 갑질에 취해, 사랑에 취해, 마약에 취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인사한다. “요즘 바쁘시죠?” 그리고는 종종종 헤어진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이 시대의 낙오자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정직하다. 불안을 견디지 못한다. 항상 우울감에 시달린다. 축축한 권태에 몸서리친다.

우리는 흔히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히틀러 개인의 광기 혹은 나치의 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의 재앙들- 한국전쟁, 제주 4.3, 광주항쟁......-도 우리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특정 개인과 세력의 문제로 보지 않는가?

하지만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한다. “홀로코스트는 우리의 합리적 현대 사회에서, 우리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 그리고 인류의 문화적 성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태동해 실행됐으며, 바로 이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그러한 사회와 문명과 문화의 문제다.”

홀로코스트는 우리가 자랑하는 현대문명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자본주의, 합리주의, 효율성에 의해 눈부신 물질문명을 이뤘다.

바우만은 이 눈부신 현대문명이 바로 홀로코스트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가? 자본이 아닌가? 그 자본을 얻기 위한 합리적 인간이 탄생했고, 그 합리적 인간은 최대한의 자본을 얻기 위한 효율성을 가장 중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치들을 버릴 수 있는가? 우리는 재물도 섬기고 동시에 ‘하느님(神性)’도 섬기고 싶어 한다. 예수는 말한다. “하느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우리가 재물을 섬기는 한, ‘신적인 가치(최고의 인간적 가치)’는 포기해야 한다. 인간의 중요한 가치들은 다 잃어버리고 오로지 재물을 유일신으로 섬겨야 한다.

결혼상대도 직업이 우선이다. 재물을 얼마나 벌어들이는가? 학교 교육은 재물을 얻기 위한 필수 코스다. 재물은 우리의 신분을 결정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효율성을 위해 관료조직으로 구성되어있다. 상명하복이다. 근면성실하게 상관의 명령을 수행하는 공무원이 모범공무원이다.

이 시대의 모든 조직이 효율성을 위해 관료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 상명하복에 적합한 몸이 되어 있다. 이 몸이 바로 홀로코스트의 발생에 적합한 몸이다. 상관의 명령이니까, 죄의식 없이 홀로코스트에 참여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이 시대의 일상은 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홀로코스트가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비상상황이다.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요양병원 전체를 격리했다. 확진자와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던 많은 노령의 환자들이 확진자가 되었다. 작은 홀로코스트가 아닌가? ‘우리와 다른 노인환자들’은 조용히 사라져가야 했다.

교도소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었다. ‘우리와 다른 죄수들’은 비명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유대인 학살 현장을 둘러 본 사람들은 경악한다.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다른 유대인’이라는 작은 생각이 차츰 커지며 그들을 격리시키고 끝내는 가스실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갈가리 찢어져 있다. 자본이라는 유일신이 우리를 분류했다. 금수저와 흙수저,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우리는 언제 홀로코스트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고정희 시인은 우리들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노래한다.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상한 영혼을 위하여》부분

 

우리는 무수한 홀로코스트들 앞에서 절망한다. ‘나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어?’ 하지만 나 하나가 중요하다.

중용에서 말한다. 나 한 사람이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면 인류가 제자리를 잡고 인류가 제자리를 잡으면 끝내는 천하가 제자리를 잡는다고.

시인은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고 한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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