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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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쇠 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 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외형적으로 감옥이 현대화되고, 형벌이 완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죄수에 대한 권력의 인간적 처벌이나 처벌방법의 근대화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전략이 바뀐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육체적으로 잔인하게 처벌하는 방법보다 감시하는 방법에 의존한 권력의 전략으로 인간의 육체는 규율에 길들여진 것이다.

                                                       - 미셸 푸코,『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월 120만원 복지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분노가 들끓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이렇게 쓰인다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이러려고 열심히 산 것 아니다.”

‘조두순에게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주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수만 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아서’ 분노하고 허탈해 할 것이다. 용서(容恕)는 말 그대로 ‘같은 마음(恕-如+心)’을 ‘받아들이는 것(容)’이다. 피해자들이 그와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일반 국민들이 그와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온갖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서 형벌만 받으면 죄가 사라지는 걸까?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하는 걸까?

옛날 봉건 시대였다면 조두순은 공개적으로 참혹한 형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봉건시대의 잔인한 형 집행을 상세히 보여준다. 그리고는 말한다. “군주의 위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잔인한 형벌이 필요했다. 백성들이 고문의 형태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다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도래하며 외형적으로 감옥이 현대화되고, 형벌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푸코는 말한다. “죄수에 대한 권력의 인간적 처벌이나 처벌방법의 근대화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전략이 바뀐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감옥은 근대 이후 규율 권력이 개인을 예속화하고 노동자로 재개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전략이며 메커니즘이다.”

지배 권력이 왕에서 자본가로 바뀌어 형벌제도가 달라진 것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본가는 사람을 돈으로 본다. 돈을 불리는 노동자. 그래서 죄수를 교도소에서 노동자로 변신시킨다.

복지사회는 고도자본주의의 지배전략이다. 지배계급은 사회구성원의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해줘야 하니까.

그러다보니 ‘조두순 같은 악마’도 공개적인 잔인한 형벌도 받지 않고 결국엔 복지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떤 형벌제도가 만들어져야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며 죄수를 용서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길을 잃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류의 시원인 원시사회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피해를 갚게 했다고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보상을 충분히 하게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의 마음이 같아지고 더불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형벌제도는 근대의 자본가 계급의 인간관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대 사상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은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할까?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성장해간다. 세계가 하나가 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서로 용서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김종삼 시인은 스스로 형(刑)을 받고 있다.

 

길이 있다는
물이 있다는 그곳을 향하여
죄가 많다는 이 불구의 영혼을 이끌고 가보자
그치지 않는 전신의 고통이 하늘에 닿았다

                                                         - 김종삼,《형(刑)》부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죄를 짓는다. 그런데 누구에게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한단 말인가? 죄 많은 우리는 또 어떻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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