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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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삶은 비천하고 추하다.〔......〕아무리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꿈이 있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거리를 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반성할 수 있다. 꿈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 거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 갇혀버려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 김현,『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을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삶의 목표를 세웠다. ‘장남으로서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해!’

동무들과 다툼이 있어도 주먹다짐은 피했다. ‘치료비 물려주면 안 돼!’ 남의 과수원이나 채소밭에서 서리도 하지 않았고, 시험 볼 때 컨닝 한 번 하지 않았다.

항상 근면성실하게 살던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으면 세상은 얼마나 살기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동생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사정없이 응징했다.

이렇게 살던 나는 30대 중반에 ‘중년의 위기’에 빠졌다. 도무지 사는 게 시들했다.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큰 병에 걸리거나 큰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뒷산의 절에 갔다. 대웅전에서 아내와 함께 참배한 뒤,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자기야, 나 직장 그만두고 그냥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 아내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후에 아내는 말했다. “내가 반대하면 자기가 뭔가 잘못될 것 같았어.”

그 이후는 긴 방황과 신명나는 삶이었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꼿꼿하던 나는 술에 취하면 울음을 터뜨렸다. 혼자 강가에 가서 목 놓아 울기도 했다.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 사람들과 패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문학 모임에 나가서는 자주 술주정을 했다. 한 문학 도반은 “네 안에 그리도 한이 많은가 보네”하고 한탄했다.

‘얌전한 내 안에 이런 내가 있었다니!’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내버려 두었다. 끝까지 가봐야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았다.

그러다 정신분석학, 심층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자주 빈집 꿈을 꿨다. 이집 저집 가 봐도 빈집이었다.

MBTI 성격 검사를 하고는 너무나 놀랐다. INFP- 낭만적 이상주의자, 마지막 돈키호테. 내가 ‘이상주의자’라니!

나는 어느 날 홀연히 깨달았다. ‘아, 모든 문제가 내가 돈키호테로 살지 않아서 벌어진 거로구나!’

서서히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술주정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마음은 평온해졌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하면서 동물에서 벗어났다. 인간은 스스로를 초극해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더 좋은 자신,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존재가 된 것이다. 성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인간은 가슴에 꿈을 품고 있다.

꿈꾸며 사는 삶은 부족함이 없다. ‘보리떡 하나로도 제우스와 행복을 겨룰 수 있다(에피쿠로스)’. 존재가 빛나니 소유는 점점 줄어든다.

꿈을 잃고 사는 인간은 소유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들은 소유의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세상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말한다. “꿈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 거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 갇혀버려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꿈은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대로 살 때 인간은 무한히 아름다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온갖 재앙이 뒤따르게 된다.

코로나 19는 꿈꾸지 않는 인류의 비극이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서경)’.

시인 보들레르는 노래한다.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그 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 놈이 바로 권태! 뜻 없이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여, -내 형제여!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독자에게》부분

 

자본의 증식이 지상 유일의 목표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 인간과 인간, 자연을 잇던 끈은 다 끊어져버린다.

모래알 하나가 되어버린 인간에게 이윽고 괴물이 찾아온다. 권태- 대지를 부수고, 세계를 집어삼키는 죽음의 사자. 우리는 담뱃대를 물고 교수대를 꿈꾼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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