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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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의 도는 나에게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앎은 마음의 본체이며, 마음은 자연히 알 수 있다. 부모를 뵈면 자연히 효도할 줄 알고, 형을 뵈면 자연히 공경할 줄 알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자연히 측은해할 줄 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본체인 양지(良知)이니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안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할 수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알면서도 행하지 않았다면 이는 진정으로 알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왕양명,『전습록』에서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고향에 있는 아들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한 제자가 안절부절 못하자 그에게 말했다. “지금은 공부할 때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말한다. “공부는 다음에 해도 돼. 건강이 최고야!”  

 우리는 공부할 내용이 어디에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에는 물질의 이치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고, 생물학에는 동식물의 이치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고, 심리학에는 사람의 마음의 이치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축적되어 있는 학문을 연구하여 학위를 딴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공부는 그런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 그러니 공부는 건강할 때 하는 것이다. 건강해야 기억력, 이해력이 좋을 테니까.

 이런 공부법을 익힌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까? 삼라만상의 이치를 익혀서 어떻게 써먹을까? 

 삼라만상을 자신의 이익에 이용하지 않을까? 이렇게 공부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 결과가 어떤가? 

 자연, 다른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구 약탈하고 착취하지 않는가? 그 결과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코로나 19가 전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위기마저 현대과학기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몇 년마다 출몰하는 바이러스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상생이 아닌 지배와 착취의 방식으로 인류가 생존, 번영할 수 있을까?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갈가리 찢어져 인간의 정신이 피폐해졌는데.    

 중국의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삶과 공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부법을 창안했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을 양지(良知)를 깨워 바로 잡으라.” 

 이런 공부법으로 살아가면 매순간이 공부가 되고, 앎과 실천이 하나가 된다. 마음은 점점 밝아진다. 

 이런 공부법을 익힌 사람은 자연과 다른 사람을 공경할 것이다. 삼라만상은 나눔과 사랑의 춤을 추게 될 것이다. 

 나는 크게 아프고 나서야 안절부절 못하는 제자에게 위로는커녕 공부하라고 다그친 왕양명의 깊은 뜻을 알았다.

 깊은 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 나는 담담했다. 죽음은 일상이었다. ‘죽음과 삶은 하나였구나!’

 이 하나가 모든 성현들이 깨달았다는 ‘중(中)’이다. 양극을 다 포함하는 것. 대극합일. 신성(神性)을 담고 있는 우리의 영혼이다. 

 위급하지 않을 때는 중의 마음이 되기가 어렵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사랑과 미움...... 항상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성현들은 공부할 때 고행을 하고 금식을 했다. 자신을 극단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얻는 것이다. 

 행복은 중의 마음에서 온다. ‘내가 있다 없다’가 사라진 몰아의 경지. 어느 한쪽에 치우친 마음은 항상 공허하다. 그래서 자극적인 쾌락을 원한다. 마음은 늘 즐거움과 불쾌감 사이를 반복한다. 삶이 고(苦)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며 견딘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풍전등화의 인류, 지금은 공부할 때다.

 기형도 시인은 ‘전문가’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 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곧 즐거워했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유리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 기형도, 《전문가》 부분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이 마음이 양지(良知)다. 세상은 이런 아이들을 즉시 추방시킨다.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어’도 모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나르는’ 노예가 된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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