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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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숨을 쉬는 생생한 인간에서 사물로 변형되어 버린다.〔......〕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푸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에서


 하루에 수십 명이 코로나로 죽어 가는데, 한쪽에서는 몰래 파티를 하고, 비밀 클럽을 연다고 한다. 코로나에 치명적인 나이든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타인의 고통에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데, 왜 우리는 이리도 남들의 아픔에 둔감해졌을까? 

 술판을 벌이는 젊은이들, 노인들은 그들의 부모님들인데. 그들은 왜 부모님들의 아픔을 함께하지 않는 걸까? 

 젊은이들은 속으로 말할 것이다. ‘우리가 힘겨워할 때 당신들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어요?’  

 고대의 현인 노자는 말한다. “잘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나는 어린 시절을 ‘주막듬’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보냈다. ‘에덴동산’이었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잘난 집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싸우다가도 금방 화해하고 신나게 놀았다. 

 그 뒤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나는 희멀건 얼굴의 읍내 아이들을 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잘난 아이’를 본 것이다. 한순간에 나와 우리 마을 아이들은 못난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나는 점점 말이 없는 아이가 되어갔다.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화가 펄펄 끓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분노의 폭발을 간신히 막았다. 
 
 나는 공부를 잘해 분단장이 되었을 때, 읍내 아이들과 어울리며 시골 아이들을 은근히 경멸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은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푸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연민을 넘어 공감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연민조차 사라진 세상이 아닌가! 
                                              
 자본주의는 돈을 가진 사람을 숭상한다. 모든 인간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잘난 인간 게임’을 한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

 세계가 코로나 19로 풍전등화인데, 우리는 서로 아웅다웅 싸우기에 바쁘다. ‘연민과 공감’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인류사는 종말을 향해 줄달음을 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류세(人類世)’라는 말을 쓴다.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췄던 인도의 종교가 오랜 전란을 겪으며 대승 불교를 낳았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서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비극 속에서 연민과 공감을 배우게 될까?     

 신경림 시인은 ‘파장’에서 눈물겹게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 신경림,《파장》부분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인류의 오래된 미래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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