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질이 참된 실재를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종교는 인간 본질의 판타지적 현실화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반대하는 투쟁은 간접으로는, 그 영혼의 향기가 종교인 세계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다. 이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에게 있어서 환각적 행복인 종교를 버리라는 것은, 곧 현실의 행복을 지향하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환각을 버리라는 요구는, 환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비판은 곧 종교라는 후광을 업은 세상에 대한 비판이다.

                                                                - 칼 마르크스,『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교회를 통한 코로나 확진자 집단발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경악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를 믿는 교회가 어찌 저럴 수가 있지?” “목사들이 무슨 성직자야? 예수를 팔아 영업하는 거지.”

나는 한때 여러 종교를 전전한 적이 있다.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지?’ 너무나 목이 말랐다.

주변에 종교에 빠져 개인도 피폐해지고 가정도 풍비박산이 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길’을 가르치는데, 왜 많은 종교인들이 인간이 가지 말아야 할 길로 가는 걸까?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고 했다.  

아마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은 종교적 확신이 있기에 세상의 이목,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확고한 사람들의 눈에는 코로나를 두려워하며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잠시잠깐의 이승의 삶에 연연하다니! 죽으면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해도 이런 상황이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 의지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사상가 마르크스는 말한다. “인간의 본질이 참된 실재를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종교는 인간 본질의 판타지적 현실화이다.〔......〕이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에게 있어서 환각적 행복인 종교를 버리라는 것은, 곧 현실의 행복을 지향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비루한가? 종교는 거꾸로 선 현실을 보여준다. 죽음은 사라지고 영생이 있고, 배고픔은 사라지고 젖과 꿀이 흐르고, 모든 다툼은 사라지고 사랑만 가득하다.

마르크스는 ‘현실의 행복을 지향하라’고 한다.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는 아편, 환각적인 종교에 빠지지 말고.

현대의 종교가 등장한 것은 2500여 년 전 철기 시대다. 부족사회를 이루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던 인류에게 ‘철기’는 치명적이었다.

철기를 가진 부족은 다른 부족들을 점령하여 대제국을 이루려했다.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싸움터가 되었다. 세상은 생지옥이 되었고, 각자도생만이 살길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현대의 종교와 철학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부족사회는 신화에 의해 평화로운 공동체 사회를 이뤄왔다. 한 사람은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사회였다.

이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종교와 철학이 등장하여 답을 주었다. ‘인간의 내면에 답이 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살아라!’

기독교는 성령(聖靈)이, 불교는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프시케(영혼)에 신성(神性)이, 공자는 천명(天命)인 본성(本性)이 있다고 했다.

많은 위대한 성현들이 출현했지만, 종교는 지배세력과 결탁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고통의 근원은 지배세력의 폭압적인 통치구조에 있는데, 어용 성직자들이 ‘현실의 고통에 눈을 감고 천국의 영생에 눈을 떠라’고 가르쳤다. 종교가 아편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현대 종교의 등장은 인류사 전체로 보면 아주 짧다. 종교가 아편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 종교의 대표적인 창시자들, 예수는 삶은 축제라고 가르쳤고 석가는 삶의 실상을 보게 되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가르쳤다.

철기 시대 이후의 위대한 가르침들은 모든 우상을 거부하고 자신을 믿고 ‘인간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이 되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은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위대한 삶을 노래한다.

                                                    

 이제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아
 속 깊이 배운 것은 이 정도
 자신의 이 목
 자신의 두 다리로만 서 있다고
 뭐가 불편하단 말인가
 기대겠다면
 그것은
 의자 등에나 기댈 뿐

 

                                                       - 이바라기 노리코,《기대지 않고》부분

 

한 인간은 소우주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존재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인간의 조건이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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