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특별법 공동발의자중 한명인 서동용 의원을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특별법 추진 현황와 의미, 전망에 대해 들었다. [사진-조천현]

72년전인 1948년 10월 19일 새벽.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그날 밤 무장을 한 채 뛰쳐나와 20일부터 여수와 순천, 광양·구례·곡성·벌교·보성·고흥을 차례로 장악했다. 이들은 일주일만인 27일 토벌군에 의해 완전 진압되었다.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이다.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그들을 잡기 위해 군경은 산간마을을 이 잡듯이 뒤졌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1955년 4월까지 여순지역을 비롯해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대구 일부 지역에서 무력충돌과 진압이 이어졌다. 

다수의 민간인이 이 과정에 희생당했다.

제14연대의 진압을 위해 계엄법이 없는 상태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해 12월 1일에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한반도 남쪽에는 확고한 반공국가가 틀을 갖춰가게 되었다.

국군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반란'의 멍에가 들씌워졌지만 여순사건의 핵심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진실이 지금 힘을 얻고 있다. 

지난 7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앞서 지난 7월 28일 전남 동부지역 5개 지역구 의원인 소병철(순천·광양·곡성·구례갑)·서동용(순천·광양·곡성·구례 을)·주철현(여수 갑)·김승남(고흥·보성·장흥·강진)·김회재(여수 을) 의원을 비롯한 152명의 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한데다 야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는 기류여서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대 국회부터 18, 19, 20대 국회에서도 특별법은 계속 발의되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됐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입법공청회까지 거치는 등 절차도 순조롭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올해 정기국회가 9일 마무리되었고 내년 1월 10일까지 임시국회가 소집되어 있으나 여야 공방이 첨예한 상황에서 여순특별법 제정은 내년도 다음 회기로 넘어갈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 공동발의자중 한명인 서동용 국회의원을 공청회 이튿날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특별법 추진 현황과 의미,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여순사건의 피해 가족이기도 한 서 의원은 여순사건이 제주 4.3사건과 직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긴 안목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연결된 역사적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순특별법 입법공청회 거치며 기대감 커져
 

서 의원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서 의원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 통일뉴스 : 어제(12월 7일)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그 의미와 주요 내용에 대해 소개해 달라.

서동용 국회의원 : 법을 제정할 때는 입법공청회를 거치도록 법에 나와 있다. 상임위 내에서 법안을 전담하는 소위를 두고 또 결산을 담당하는 소위도 두는데, 상임위 의결로 법안소위 차원에서 공청회를 할 수도 있고 전체 공청회를 할 수도 있다. 어제는 상임위 차원에서 전체 공청회를 한 것이다. 

여순사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향토사학자인 주철희 박사와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최현주 소장 두 분이 나와 각 10분씩 진술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질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 법안을 공공발의한 소병철, 서동용, 김회재 등 세명의 국회의원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맨 마지막에 발언기회를 주어서 한마디씩 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정의당 이은주의원이 참가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사위 앞에서 농성하느라고 한명도 없었다.

전체적으로는 진술자들도 그렇지만 국회의원들도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을 했고, 왜 이 법이 이렇게 늦게 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이 문제를 특별법이 아니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기본법'(진화위법)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의사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철희 박사가 그러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을 했다.

제정 법의 경우 소위 의결로 공청회를 건너 뛸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다들 거치는 절차이다. 어제 공청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입법과 관련한 외부적 절차는 다 밟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구체적으로 조문을 들여다보는 '축조심사'를 하고, 국회의원들과 행정안전부가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뒤,  법안소위에서 원안 그대로 또는 수정안으로 통과시키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 다음 행안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본 회의에서 채택하면 법안이 만들어지게 된다.


□ 법 제정을 위해서는 행안위 법안소위 통과와 법제사법위원회 및 본 회의를 거치게 되는 데, 152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찬성의견을 낸 상황이어서 어느때보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높다. 특별법 제정 전망은?

■ 어제 입법공청회는 꼭 해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고 또 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외적 절차는 다 거친 것이다. 

다른 법률의 경우 상임위 공청회를 마쳐놓고도 안된 경우들도 있다. 지금은 공청회를 안하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데, 그 절차를 마쳤고 국회 행안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이 법의 통과에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법 통과는 충분히, 많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약간의 우려가 있는 것은 8~9일 사이에 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간 극한 갈등과 국회 공전과 같은 외적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여순사건은 발발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여순반란사건이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이것을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로 아직 남아 있다. 

혹시라도 이념대립의 양상이 벌어지면 이 법이 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럽다. 정말 유리구슬을 옮기듯이, 아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나 하나 풀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여순사건의 본질은 무엇인지, 여순사건을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나.

■ 그동안 제14연대 군인들의 소위 '반란', 그 봉기가 남로당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지역에서도 '반란사건'이라는 표현이 끊이지 않았던 측면이 있는데, 주철희 박사가 어제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백선엽 회고록에도 여순사건은 남로당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기록이 있고 처음부터 그런 의견이 많았었는데, 1967년에 처음으로 남로당 연관설이 나온 후 마치 그것이 정설인양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가짜가 진짜를 뒤덮어 버린 사례인 셈이다.

이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저로서도 여순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배우게 됐다.

가슴 아픈 일인데, 여순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저를 포함해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나서지 마라', '남앞에 서지 마라'는 이야기를 늘상 들으면서 커왔다.

1949년 전라남도 통계로 1만 1,1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통계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례들도 반영이 안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내가 들어 알고 있는 광양의 집단학살 사례만 해도 50~60명씩 끌어다 놓고 총살해 버린 경우가 여러 건 있다.

어제 주철희 박사는 1만5,000명~2만5,000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더라. 그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빨갱이, 반란군이었고 부역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아무 거리낌없던 세월이었기 때문에 그 자식의 인생이 어떻게 잘못될 지 몰라서 입다물고 숨기며 살았던 세월이 70년이었다.

육사 진학을 희망했던 제 친구도 아버지가 뚜렷한 설명없이 절대 안된다고 말리는 통에 꿈을 꺾었다가 최근에야 할아버지가 반란군으로 낙인찍혀 돌아가셨다는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얼마전 94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임종 직전에야 작은 아버지 한 분이 여순사건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해서 알게 된 사연도 있다. 이렇듯 여수·순천·광양 곳곳의 가정에는 진실을 숨기고 가슴속에 통한의 눈물을 안고 살아왔던 세월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런 세월에 대해 이제는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도 중요한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주철희 박사는 이 사건의 핵심은 국가권력기관인 군에서 촉발된 사건이며, 군의 잘못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왜 국가는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는지 △왜 그들이 이야기하는 반란군으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고 구하려고 하지 않고 반란군과 한편이라는 이유로 총을 쏘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높지만 이념의 덫에 넣어 해석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진-조천현]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높지만 이념의 덫에 넣어 해석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진-조천현]

□ 특별법이 제정되면 가장 먼저 할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이 사건과 관련해서 1949년 전라남도 통계에 1만1,173명의 희생자가 있다는 기록만 있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은 한편으론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은 살아계신 분들의 진술을 통해서 진실이 규명될 수 밖에 없는데, 72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치매가 온 경우 신빙성있는 진술을 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른 분들도 너무 많다. 

조속히 특별법을 제정해서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시급하다.


□ 특별법 제정이 아니라 진화위법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진화위)를 거치지 않고 왜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의 명예회복만 놓고보면 거길 통해서 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건의 성격상 국가기관내에서 촉발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피해자 조사를 주로하는 다른 조사위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면들이 있다. 

또 여순은 워낙 광범위한 사건인데 진화위 활동의 한 분야, 부분으로 다뤄지다 보니  지난 1기 진화위에서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서 충분한 조사가 되어야 한다는 개선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여러 사안 중의 하나로 처리하기에는 피해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전담해서 할 수 있는 위원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진화위법에 따라 구성된 1기 진화위가 제대로 홍보도 안된 상태에서 조사 신청도 미처 받지 못하고 부랴부랴 끝냈던 문제를 극복하고 폭넓은 진상규명을 하자면 조사위원회 직권으로 여수·순천·광양·구례·고흥·보성 등 6개 시·군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진술을 듣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또 다른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화위의 한 부문으로서 조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4.3이 있었기 때문에 여순이 있었고 여순은 4.3의 결과라는 점에서 개별 민간인 희생사건이 아닌 제주4.3, 광주5.18과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여순사건이 갖는 의미, 그 지위에 걸맞는 법적 체계를 갖추는 것도 국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일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4.3이 별도의 특별법을 통해서 '한국현대사를 여는 사건'이라는 규명을 얻은 것 처럼 여순도 당연히 별도의 특별법을 통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많기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지난 7일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입법청문회가 처음으로 열려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진제공-서동용 의원실]

□ 특별법 제정에 대한 야당쪽 태도나 반응은 어떤가.

■ 현재로서는 특별히 반대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이미 1기 진화위를 구성하는데도 동의를 했고 또 제주 4.3특별법이 있기 때문에 단지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하는, 즉 배상과 보상규정을 포함하지 않는 여순법에 대해서 특별히 반대하는 기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만약 이념적인 문제가 정국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기제로 작동하는 시점이 오면 그걸 이유로 해서 여순법을 문제삼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긴 하다.


□ 현재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 특별법 제정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은 없어보이지만 이념적 갈등으로 표면화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나.

■ 앞으로 혹시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왜 진화위로 가지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갈등 또는 문제였는데, 거기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웬만한 문제들은 다 해소되어 있다.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고 지금 여야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이유는 배·보상 규정을 두자는 것과 관련된 것인데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주 4.3이나 여순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민간인 희생자가 확인되면 보상을 해 주긴 하는데 그 보상을 재판을 통해서 받아야 한다. 지급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으로 지급규정을 두면 국가가 조사를 해서 직접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어서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훨씬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런데 지금 국가폭력에 대한 배·보상 규정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정도 밖에 없다. 

거창양민학살사건과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제주4.3 모두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배·보상 규정은 없다. 

정부에서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산 문제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기준을 적용하면 전체적으로 최저 4조5천억원에서 최대 8조5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드는데, 어느 하나 물꼬가 터지만 모두 다 들어올 것이라는 것 때문에 꺼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더라도 끝까지 계속 무시하면서 보상하지 않고 가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두고 두고 계속 제기될 문제를 마냥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선도적으로 나서서 풀되, 재정이 문제가 된다면 분할지급을 한다든지, 지급 대상을 한정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 행정안전부는 특별법이라는 개별입법보다는 '진화위법'을 통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어떻게 보아야 하나?

■ 정부는 당초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일반법인 진화위법으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 피해자의 수 등에 비추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따르겠다는 것으로 선회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김태년 원내대표 주재하에 여순특별법을 발의한 소병철, 서동용 의원과 행안위 여당 간사인 함병도 의원, 그리고 행안부 차관과 담당 국장이 모여서 심도있게 토론을 거친 결과 행안부도 특별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이후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행안부 입장은 특별법 제정에 동의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다루는 특별법 중 여순사건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지 말해달라.

■ 한국전쟁 전후 시기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최초의 특별법이 만들어졌던 건 제주4.3 특별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거창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졌고 노근리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법을 비롯한 몇개의 법이 별도로 만들어졌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매번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일반법을 만들어서 포괄적으로 다뤄보자는 접근이 있어 '진화위법'을 만들었다. 진화위의 조사대상에 웬만한 사건은 다 포함되어 있었고 여순사건도 진화위 조사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순사건만 빠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사건의 성격, 피해자 규모 등에 비추어 특별법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순사건은 남아있는 유일한 특별법 대상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것들을 신원하고 풀어내야 비로소 공동체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 국회 입성 전인 지난 2019년 6월 서동용 변호사는 '스무살 도망자'가 불러낸 1948년 여순'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통해 70여년전 여순의 소용돌이에서 피해를 당한 아버지로부터 광주항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들로 이어지는 잔혹한 우리 현대사를 일깨운 바 있다. 국가와 시민들은 여순특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라는지 말해달라.

■ 만약에 국가의 주장대로 이 사건이 반란이었다면 국가는 나서서 반란군으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오히려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 

설령 적국 소속일지라도 총을 들지 않은 양민에게는 총을 쏘지 않는다는 것이 전쟁터에서도 지켜야 할 약속인데,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제 나라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쏘아 죽였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국가가 그래서는 안되지 않나.

어제 여순항쟁유족연합회 회장인 이규종 선생이 그러더라. 구례에서 토벌대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고난 뒤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빼지 말고 다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엄청난 양민들이 학살당했다는 거다. 국가가 그런 짓을 했다.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저는 그게 광주에서 또 한번의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가족사에서 대을 이어 그런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동네에서 한 사람은 가해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피해자인 그런 집들도 굉장히 많다. 광양·순천·구례 같은 곳에 가면...

어젯밤에 반란군(?)이 쌀을 한되 얻어갔다고 해서 다음 날 들어온 군경은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았다. 평소에 미워했던 동네사람들을 향해 '손가락 총질'이 가해지고 바로 총으로 쏘아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세월인데 이런 것들을 신원하고 풀어내는 계기를 만들어야 비로소 공동체가 복원될 것이다. 

이것이 개인과 개인사이에 벌어진 문제였다면 어떤 형태로든 풀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겠지만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국가가 나서서 풀지 않으면 해결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속에 더 큰 비극을 키워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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