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있어 스포츠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가 시합 자체의 승부 차원을 넘어 국가간 또는 민족간 대결로 곧잘 나타난다. 호사가들은 축구를 통한 양국의 대결을 역사적 사건과 일치시키며 흥미를 유발시키곤 한다. 이번 `2002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 세네갈의 개막전을 `식민지 종주국 대 식민지간 대결`로 불렀고, 영국 대 아르헨티나가 맞붙자 `포클랜드 전쟁`으로 압축했고,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이 붙자 `러-일 전쟁`이라 명명했다.

◆ 한국은 월드컵 최초 1승 소원을 넘어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성취했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를 꺾고 8강 진출이라는 이변을 낳았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키 어렵다. 꼭 짚고 싶은 것은 월드컵 경기를 통해 이 나라 역사의 한 단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통한 한반도 현대사의 상기(想起)라고나 할까. 거기에는 분단의 역사와 반미감정과 그리고 북한과의 상호관계 등이 어우러져 있다.

◆ 한국 축구는 12명이 뛴다고 한다. 12번째 선수는 다름아닌 응원단 `붉은 악마`이다. 이제  전 국민이 응원단이 되어버렸다. 붉은 악마화된 국민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붉은 옷을 입는다. 붉은 옷에는 비 더 레즈 (Be The Reds)라 쓰여 있다. `빨갱이(공산주의자)가 되자` 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 한국-미국전땐 반미시위가 일어날까봐 온 국민이 긴장했다. 한국민 대부분은 지난 솔트 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강탈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F15-K 건과 관련해서도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정부와 언론이 반미감정과 시위의 자제를 요청했고, 이례적으로 붉은 악마 대표는 순수응원만 하겠다고 공개선언까지 했다. 한국 선수들은 동점골을 넣자 골 세리모니로 `오노 액션`을 흉내냈다.

◆ 8강 진출을 다투는 대(對) 이탈리아전에서는 관중석 응원단에서 `어게인(again), 1966`이라는 카드섹션이 벌어졌다. 이탈리아로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끔직한 일이다. 다 알다시피,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북한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바 있다. 단군의 자손인 북한에 이어 남한도 이탈리아를 8강 진출의 제물로 삼아 `1966년의 영광이여 다시 오라`는 것이니 이탈리아로서는 기가 질릴만하다.

◆ 그런데 `비 더 레즈`라 쓰인 붉은 옷을 입는다 해서 이 나라 분단의 역사가 당장 파탄나거나, 빨갱이로 몰린 한이 풀리고 레드 콤플렉스가 모두 치유되는 건 아니다. 또한 이벤트성 스포츠를 통한 반미시위나 민족주의 고취는 자칫 국가주의로 호도되거나 국수주의로 내몰릴 수도 있다. 분단의 상처는 깊고 한 순간의 기분은 역풍을 맞기 쉬운 법이다. 분명 현대에 있어 스포츠는 스포츠 이상이지만 동시에 스포츠 그 자체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민은 놀라운 에너지와 국민통합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다. 국운융성의 길로 접어들었다고도 한다.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월드컵 이후`다. 어차피 잔치는 끝나기 마련이고, 끝난 잔치 자리는 흉물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축구를 통한 구심이 사라지면, 어두운 영화관에서 막 나온 것처럼 잠시 방향감각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의 경험은 소중하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비정상적인 민족의 현대사를 잠시 상기할 수 있었다. `월드컵 이후`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들 비정상적인 민족의 현대사를 바로 잡는데 구심을 모으고 에너지를 표출해야 한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민족의 진로는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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