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구(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한국정치)


남북관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는 무엇인가? 좀 포괄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한반도정세와 남북관계의 실정을 파악하는데 있어 이러한 질문은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과 북한간의 대립이 강화되고 특히 핵문제나 미사일문제 또는 테러문제로 미북간 대립이 증대될 경우, 한반도정세나 남북관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반대로 미북간 대립이 이완된 경우, 상대적으로 남북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분명한 정책 차이를 보이고 있는 남한 내의 상황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정치·사회적으로 보혁 대결이 비교적 분명한 모습을 갖추고 있고 이를 반영한 여야간 입장 차이가 뚜렷한 국내정치적 현실이 남측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남대립의 국내적 현실에 의해 남북관계는 상당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여야 경쟁과 대립의 한 해가 될 올해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야 후보의 경쟁과 대결은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비교적 분명한 한편 그 경쟁의 결과가 향후 등장할 차기정권의 대북정책의 향방을 예측케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여야 후보간 대결의 내용과 모습은 어떠한가?

이 질문에 있어 우리가 먼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른바 `색깔론`의 문제이다. 남북한 분단 과정에서, 또한 그와 더불어 이루어졌던 남한국가 형성 과정에서 반공주의는 가장 강력한 체제 이데올로기로 등장했고 그 막강한 영향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이와 같은 반공주의의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 우리 사회의 보수적 수구정치세력이 그 도전세력 및 후보에게 색깔론을 뒤집어씌웠던, 그럼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반사이익을 꾀했던 정치행태는 과거 선거 때마다 우리가 경험했던 바다. 

그러나 올해 초반부터 이 같은 색깔론 공세는 더 이상 먹혀들기 어렵게 되었다. 민주당의 국민경선 과정에서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색깔론`으로 공격했는 바, 그러한 공격은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몰론 이 같은 `색깔론`의 무용화는 즉각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이를테면 뜬금 없이 김대중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공격했던 이회창 후보가 그 색깔론적 공격을 급히 거두어들였던 것은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색깔론`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여야 후보간 경쟁과 대결은 이념적인 성격보다는 보다 정책적인 모습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최근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남북관계의 원칙으로서 상호주의, 국민합의 및 투명성, 검증 등을 내세우는 한편 6·15 남북공동선언 내용 중 제2항의 문제, 즉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성을 가지며 이러한 방향에서 남북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합의를 "짚고 넘어갈" 것이라 밝혔다. 또한 금강산 관광문제에 대해서도 특구 지정과 육로관광 실현 등의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던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대해서도 6·25전쟁과 테러문제 등에 대한 사과나 해명이 있어야 됨을 분명히 했다.

반면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할 것을 분명히 하는 한편, 자주적 외교를 통해 한미관계를 보다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남북관계에 관한 이상과 같은 양 후보의 입장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것이 각각 보수적인 태도와 개혁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것일지라도, 그 경쟁과 대립은 색깔론적이라기보다는 정책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이 남북관계를 둘러싼 여야 대선후보의 태도가 비합리적인 이념 공세가 아니라 정책 경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선거에 임하는 유권자의 선택은 진정 중요하게 된다. 즉 매 개개의 유권자들은 양 정책적 입장에 대한 자신의 선호를 분명히 표명함으로써 그 집합적 결과가 차기 정권의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최근에 이르러서야 합리적인 정책 경쟁과 대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된 우리의 정치현실에 맞추어, 이제 유권자 역시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인 색깔론의 구태 정치의 수동적 대상에서 벗어나, 후보자가 내세우는 정책에 대해 자신의 합리적 선택을 분명히 하는 적극적인 주체로서 다시 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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