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의 계기가 된 거사가 위화도 회군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화도 회군을 생각할 때 낡은 왕조를 개혁하기 위한 의거와 야심에 찬 군사 반란이라는 두 가지 평가를 동시에 떠올리곤 합니다. 또 이 사건이 명나라의 부당한 간섭에 대한 응징인 요동 정벌을 둘러싸고 벌어졌기 때문에 애국과 매국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위화도 회군은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위화도 회군 이전에 먼저 권문세족을 몰아내는 쿠데타가 있었다는 점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최영과 이성계 및 신진 사대부들이 연합하여 권문세족을 정권에서 몰아내는 쿠데타가 위화도 회군 이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화도 회군은 권문세족을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위화도 회군은 어떤 세력들 사이에 벌어진 투쟁이었고, 그것은 어떤 결과를 낳은 것일까요? 또 민족사에서 위화도 회군이 차지하는 의의는 무엇이고,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공민왕의 개혁 정책 때문에 세력이 약해졌던 권문세족들은 공민왕이 죽은 뒤 다시 권력을 독차지하고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인임, 임견미, 염홍방을 비롯한 권문세족들은 공민왕 때 이루어졌던 모든 개혁 시책을 무효로 되돌렸습니다. 이들은 공민왕의 어린 아들인 우왕을 왕위에 앉히고 꼭두각시로 삼아 자신의 부와 권력을 늘리는 데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횡포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권문세족 출신 중에서 따돌림 받은 사람들에게도 불만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갔습니다. 말할 나위 없이 그 세력들의 중심은 그 무렵 실력을 바탕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던 신진 사대부들이었습니다.
 
신진 사대부들이 권문세족과 한판 힘을 겨뤄 볼 기회는 다소 급작스러운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권문세족의 한 사람으로서 권력의 핵심에 있던 염홍방이 조반이라는 지주를 잡아가두고 고문까지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염홍방의 노비인 이광이 조반의 땅을 빼앗은 데에서 발단이 되었습니다. 조반이 이광에게 자기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그 분풀이로 이광의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염홍방은 군사를 시켜 조반을 잡아 가둔 뒤 임견미와 함께 재판관이 되어 온갖 고문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신진 사대부는 권문세족을 공격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잡았습니다. 권문세족의 노비가 횡포를 부려 지주의 땅을 빼앗고, 그 주인인 염홍방이 노비 편을 들어 땅을 빼앗긴 지주를 잡아다 고문까지 했다는 사실은, 권력에서 따돌림 받은 많은 귀족 지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넉넉했습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우왕에게 염홍방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권문세족의 꼭두각시로만 행세하던 우왕은 이제 나이도 들어서 권문세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길 바라던 차에 이런 요구가 있으니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우왕은 군부의 실력자이던 최영에게 군대를 움직여 권문세족들을 제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염홍방 일파의 횡포에 불만을 갖고 있던 최영은 왕의 분부가 있자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권문세족을 제거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염홍방과 임견미가 처형되고, 이인임은 경산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권문세족들이 몰락한 뒤, 권력은 무신인 최영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최영은 권문세족 출신이긴 했으나, 권력에서는 따돌림받다가 홍건적이나 왜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실력을 갖추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연히 신진 사대부들과 가까웠습니다. 그는 권력을 움켜쥔 뒤 신진 사대부들과 손을 잡고 정권을 구성했습니다.

최영은 정부의 가장 높은 자리인 문하시중이 되고, 그 다음 자리인 문하부 수시중(守侍中)에 이성계를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색, 정도전, 조준, 정몽주 같은 신진 사대부들을 정부의 요직에 앉혔습니다. 이성계는 최영처럼 홍건적이나 왜구와의 전쟁을 통해 유명해진 무신이었지만, 권문세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영보다는 신진 사대부들과 좀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아무튼 최영과 이성계 및 사대부들은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한배를 탄 동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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