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관수(평화통일 시민연대 정책위원장, 고려대 객원교수)


재일본 조선인계 금융기관인 `조은동경신용조합(약칭 조은)`을 무대로 한 업무상 횡령혐의로 일본 동경경시청은 조총련 중앙본부의 상임위원이자 전 재정국장인 강영관(66세)씨를 11월28일 체포했다. 이어서 29일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시청수사2과는 조총련 중앙본부, 조총련 서동경본부, 조총련 동경도본부를 일제히 수색했다.

조총련 재정국은 조총련의 연간 예산을 결정하고, 자금을 각 부서에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부서이고, 강영관씨는 자금관리를 오랫동안 담당하여 조총련 수뇌부의 신뢰를 받고 있었던 인물이며, 재정국장은 모든 조은에 있는 조총련 관계의 계좌를 관리하고 조총련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공급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수색은 자금유용에 사용된 구좌나 자금의 흐름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서류압수에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경시청은 범법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에 조총련 중앙본부를 압수수색했겠지만 전후 이 건물에 일본경찰의 수색이 강행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재일동포사회에 던진 충격은 상당이 컸을 것이다. 이 사건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조은의 자금유용이라는 금융부정과 조총련 중앙본부 사이에 조직적 관련이 있는가의 여부이다.

1. 사건의 배경

1990년 초에 일본의 버블경제가 파탄하면서 부동산투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던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천문학적 부실채권을 껴안게 되었고, 금융시장의 개방과 함께 은행의 재무구조를 BIS기준에 맞추어 건전화시키지 않으면 파산할 수 밖에 없는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깨지게 되었고, 몇개의 도시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유수한 증권사들이 연이어 파산했고, 일본정부는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고려하여 막대한 공적부조를 제공함으로써 금융기관의 통합정리를 추진했다.

대형 도시은행이 개방된 국제금융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합병통합을 하게 되었고, 조은계통도 일본정부로부터 공적부조를 받으면서 합병을 추진해왔다. 한 때 전국에 38개 지부를 갖고 있었던 조은은 그동안 16개가 파산했고, 이번에 문제가 된 동경조은도 작년 봄에 경영파탄되었다. 파산한 조은에 대해서 약 1조앵의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산되지 않은 조은은 3개 지부로 크게 통합하기로 되어 진행중이다.

이번 자금유용사건은 파산된 조은에 투입되는 공적자금이 본래 예금자의 보장 등 파산은행의 부채처리를 위해 정확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데 부정유출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데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조총련과 조은은 독립된 관계가 아니라 일체화된 조직적 관계라는 것은 재일동포사회나 일본사회에서는 상식으로 되어있다. 한국의 관치금융에 있어서 정부 은행 기업 3자간 유착관계 이상으로 조총련과 조은은 조직적 상하관계로 운영되어왔다.

금융기관의 정상적 경영의 룰에서 볼 때 상당이 이질적으로 운영되어 온 조은은 실질적 부채가 누적되어 왔고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여 일본정부의 공적부조를 받을 수 있는 점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파산시켜서 투입되는 공적자금을 유용할려고 한다는 풍문이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돌고 있었다.

결국 재정국장 재직시에 강영관씨는 조총련의 직원이나 관련회사의 명의로 다수의 차명계좌를 개설, 이 중에서 20개 계좌를 이용하여 융자 또는 이자지불을 위한 추가대출을 한 것처럼 위장하여 8억4천만앵을 염출하여, 별도의 자금풀 계좌로 이체시켜서 횡령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2. 사건의 과정과 실체

횡령에 이용된 차명계좌의 명의인들은 경시청 수사2과의 임의청취에 응하면서 강씨의 이름을 대면서 `직접 명의를 빌려달라고 부탁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강씨는 명의인들에게 융자액이나 시기도 알리지 않고 인감과 통장도 직접 관리하고 있었던 점으로 봐서 강씨가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온 것으로 경시청은 보고, 추궁하고 있다.

 또한 강씨는 동경조은의 전 이사장인 정경생(64세)와 공모하여 차명계좌를 개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강씨가 조총련의 직원이나 관계자에게 명의차용을 부탁하면서 `총련에서 책임질 테니까 협력해달라. 계약서류에는 이름과 주소만 쓰면 된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조총련의 간부가 차명계좌를 만들어서 조은의 자금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것은 조총련 중앙본부가 조은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은은 조총련의 산하단체인 `재일본조선신용조합협회`에 가맹하고 있고, 이사장이나 이사가 전국의 조은 지부를 이동하면서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이런 조직적 관계 때문에 조총련 상공인이 조은에서 융자를 받고 싶을 때 조총련 간부를 대동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급행으로 융자를 받기 위해서 조총련 간부는 매우 유용한 압력수단이 되는 것이다. 평양에 보내는 `충성헌금`을 모을 때도 간부와 조은 상공인은 상부상조의 관계로 된다. 간부는 상공인에게 일정액의 헌금납부를 약속받고 융자를 알선해 주고, 조은은 융자의 업적이 형식상으로 나마 올라가기 때문에 이득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자금유용 내지 횡령사건은 이런 유착관계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강씨가 횡령했다는 자금이 개인적으로 유용되었는지, 아니면 조총련의 활동자금으로 사용되었는지가 앞으로 수사의 초점이 될 것이다. 경시청은 후자에 의혹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사실상 일본대사관` 역활을 하고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를 전후 처음으로 압수수색했다고 보여진다. 이전에도 일본경찰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총련 중앙본부를 수색할려고 노려왔다. 이번에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3.  어떻게 민족적 대응을 할 것인가.

일본은 전후 지금까지 재일동포들에 대해 갖가지 차별과 박해를 가해왔다. 일본은행은 좀처럼 재일동포들에게 융자해주지 않는다. 사업에 성공하여 자금기반이 튼튼한 경우에도 일본명을 쓰지 않으면 융자해줄 수 없다고 하면서 일본이름을 강요하거나 귀화를 종용하기도 한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일본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동포끼리 상부상조하면서 단결하는 길 밖에 없었다.

일본경제가 장기침체기로 빠지면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 재일동포들의 사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더구나 조은이 연이어 파산되고 축소 통합되면서 조총련 상공인의 자금공급의 젖줄이 말라가고 있으며 조그만 가계를 개업하여 유지해 나가는 것도 대단히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민단계는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새로운 도시은행을 만들려고 움직이고 있지만 조총련계는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고 자체의 힘만으로 새 은행을 만들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번 사건이 일본의 법에 위반되는 횡령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동포애적 입장에서 조총련계 동포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방향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길이 남북화해협력을 추구하는 방침에 합당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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