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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기 사건 7대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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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1.2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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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987년 KAL기사건에 대한 다음의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와 국회차원에서의 재조사를 통한 진실규명을 촉구합니다.

1.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7년 11월 29일 14시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 방콕공항에 "45분 후 방콕에 도착하겠다. 비행 중 이상 없다"는 보고를 무선으로 보낸 것을 끝으로 소식이 끊어졌다. 이런 경우 기체의 결함에 의한 추락인지, 실종인지, 폭파인지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조사를 했어야 했다. 실제 KAL858기는 1987년 9월 2일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동체착륙을 하는 등 과거에도 두 번씩이나 기체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하였고 사고기 출항은 고장수리 후 첫 출항이었는데 이러한 기체결함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1-1 858기를 통해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15명 가운데 김현희 일행을 제외한 11명의 신원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졌는가? 그들 중 혹시 국제테러단체와 관련된 인물은 없었는가?

2. 비행기 사고 시 블랙박스에 대한 수색작업은 기본이다. 
 비행기의 블랙박스는 바닷 속에서 1천도의 온도와 중력의 1백 배를 견디면서 30일 동안 반경 2마일에 계속해서 발신음을 보낸다고 하는데 수색작업 초기에 블랙박스에 대한 수색을 소홀히 하였다. 또한 블랙박스 발신음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수중공명위치탐지기`가 필요한데 당시 우리 나라에 장비가 없었다면 보잉사에 장비를 요청했어야 했다. 장비 없이 블랙박스를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인가? 그리고 858기 격추되기 하루 전 인도양의 모리셔스해역에서 추락한 남아공의 점보기는 수심 4천미터에서 항공기의 잔해가 발견됐고, 소련의 미사일에 요격된 KAL007기의 경우도 1년여가 지나도 계속 부유물이 발견됐는데 858기의 경우 사고 발생 단 10일만에 현지조사단을 철수시키고 기체나 탑승객의 유품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업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2-1. 잔해나 유품 등 증거물이 나타나지 않다가 12월 13일 미얀마 서쪽바다에서 25인승 구명보트가 발견되었다. 구명보트 안에서는 13종 50여 가지의 물품이 나왔으나 이중 공기압축펌프의 파손을 이유로 이를 KAL기 잔해라고 주장하였다. 구명보트가 멀쩡한 상태에서 50종의 물품 중 공기압축펌프만 파손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가? 게다가 발견된 구명보트는 펼쳐지지 않고 말려있는 상태였다. 


3. 당시 안기부는 증거확보 및 확인을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수사발표에 따르면 115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형참사임에도 비행기 동체를 포함한 잔해 및 승객의 유류품 등의 직접 증거물은 없고 오직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비행기가 폭파되었다고 하였다. 왜 기체나 유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적으로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는가? 더구나 김현희의 진술과 자백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았음에도 당시 수사기관인 안기부는 현장조사를 게을리 하였다. 자백만으로는 증거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수사기관에서 왜 물증의 수집이나 증거의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김현희의 진술 외에 KAL 858기가 폭탄테러에 의한 공중폭발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은 무엇인가?

3-1 김현희는 평양에서 모스크바와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으로 들어갈 때 빈의 남역에서 내렸다고 자술서에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을 취재했던 프리랜서 작가 일본인 노다 미네오씨는 김현희가 남역이 아닌 서역에서 내렸다고 주장했다. 빈의 남역은 공산권에서 오스트리아로 들어갈 때, 그리고 서역은 서방권에서 들어갈 때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현희는 후에 자신의 수기에서 노다씨의 주장대로 진술을 뒤집었다.

3-2 김현희가 머물렀다는 호텔 호수도 당초 발표된 603호는 암파크링 호텔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한 안기부는 김현희의 아버지가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이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대표부가 없었으며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다고 북한은 공식 발표하였다. 유일한 증거가 될 지도 모르는 자백의 최소한의 신빙성조차 당시 안기부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3-3 김현희가 음독 후 최초로 진찰한 바레인 살마나야 병원의 야코비안 응급부장은 마유미에게서 위세척을 해도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며 음독설을 부인했다는데 안기부는 서울에 도착한 12월 15일까지 음독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있었다고 하였다.

4. 김현희 일행은 왜 탈출하지 않았는가?
아부다비에서 바레인에 도착한 11월 29일 오전 4시 34분부터 12월 1일 로마로 가기 직전 음독할 때까지 이틀이라는 탈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김현희 일행은 탈출하지 않았다. 11월 30일부터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호텔로 전화를 거는 등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됐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들은 12월 1일까지 하루동안 계속 호텔에 머물렀다. 이들을 극비지령을 수행하는 공작원이라고 볼 수 있는가?

4-1 동양인이 드문 당시 동유럽과 오스트리아에서 한가롭게 쇼핑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자취를 남겼고, 바레인에 호텔에는 소지품을 495점이나 남겼다. 폭탄을 놓고 내린 아부다비에서 곧바로 유럽으로 향하지 않고 섬나라 바레인으로 간 점이나, 바레인에 로마 행 비행기가 하루에 4편이나 있는데 한가하게 이틀 간 관광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들이 하루 전 858기 폭탄테러범의 모습인가?

5. 사진 속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었다.
마유미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의 어릴적 사진을 몇장 내놓았다. 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환영행사 때 당시 11살이던 김현희가 남측 장기영 대표에게 꽃을 전달하는 사진이었다. 또 다른 한 장은 일본 공산당잡지에 실린 꽃을 든 김현희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안기부가 사진 속의 인물로 지목했던 김현희는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정희선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정희선 자신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고 한다.

5-1 사람의 얼굴에서 귀는 성장해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사진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사진 속의 소녀들은 귓불이 도톰하지만 김현희는 귓불이 거의 없는 속칭 칼귀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분석 결과에서도 사진 속의 두 소녀는 정희선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다. 왜 안기부는 이런 오래된 사진까지 동원하며 김현희를 북한 공작원이라고 주장해야 했는가?

6. 정부는 법으로 제시된 기간까지 어기며 서둘러 사망처리 하였다. 
  실종자들의 호적이 실종유예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희생자 가족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괄 사망 처리했다. 법적으로 사체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일정기간(항공사고, 선박사고는 1년 이상)이 지나야 사망으로 간주하는데 서둘러 사망 처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7. 최근에 발표된 1987년의 `홍콩여간첩수지김피살사건`처럼 안기부가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진실을 알면서도 수사과정에 당시 대통령선거 국면이라는 특수한 시국의 정치적 변수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

7-1 수지김 사건도 858기와 같은 해인 1987년에 발생하였다. 살인을 한 윤씨가 범행사실을 안기부 직원에게 알렸음에도 윤씨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제대로 하지 않고 북한관련 간첩사건으로 둔갑시켰다. 다행히 유족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노력으로 14년이 지난 최근에야 검찰의 조사로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1987년은 `6월항쟁`으로 민주화의 열기가 드높았고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였다. 더구나 김현희는 대통령선거 하루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실제 대선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200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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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5-03-29 10:55:30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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