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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이 한국 소설 창작 공간 좁혀-자기 검열 속 작가나 독자 모두 피해자
고승우  |  konews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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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9  20: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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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 언론사회학 박사

 

오늘날 한국 소설이 다루고 있는 공간은 어떤 것일까? 한국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상상력의 공간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하지만 통사적으로 살필 때 몇 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즉 일제치하의 검열 제도에서 시작된 외부의 통제와 거기에 익숙해진 자기 검열의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닐까. 친일적폐 청산을 거론할 때 가장 심각한 분야의 하나가 문학, 특히 소설 분야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되돌아보면, 일본 침략자들은 식민지 소설가들이 쓸 수 있는 소설의 주제를 축소해서 외세의 지배라는 사회구조적인 것은 제외하는 문화통제를 가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 신변잡기식 작품만이 허용되었다. 문학적 열정이 강한 소설가들이 창작의 욕구를 분출하려 할 경우 일제 검열 통과를 의식해야 했고 그런 작품만이 활자화 된 것이다.

해방이후 문학, 특히 소설에서도 친일 잔재의 발효는 집요해서 교과서에 실린 근대의 대표적 소설들은 대부분 일제 관헌이 허가한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참혹한 현실은 정부수립 이후 청산되거나 바로잡히는 계기를 맞지 못했다. 친일세력이 권력집단이 되면서 그들의 과거를 덮거나 미화시키는 소설과 그와 유사한 소설이 대중화되면서 소설 창작의 공간은 정상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특히 분단과 6.25 전쟁, 긴 냉전,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필화사건 등으로 자기 검열이 여전히 일상화되면서 소설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의 공간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구적 개념의 진보는 상상력의 자유가 기본이라는 점에서 검열이 일상화된 시대의 일부 소설에서 표현된 공간은 매우 기형적이었다. 사실 국가보안법이 일제 치안유지법의 내용과 유사했고 일제의 강압정치의 방법론이 독재정권에서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해방이후 소설이 어떤 내용으로 국한된 것인가 하는 것은 상상키 어렵지 않다.

일제강점과 독재정권의 폐해가운데 하나는 소설을 포함한 정신적 노동의 상상력을 제한했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사회의 민주주의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일제 강점과 독재정권하에서 우리 소설가나 소설 소비자들이 모두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질적인 것은 보거나 만지면서 그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특히 전체 사회가 동일한 시스템에 의해 조정될 경우 그 특성이나 폐해가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문제가 될 때는 교묘하게 은폐되거나 분식되어 실상이 감춰지기도 한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 소설가가 누리는 상상력의 공간은 어떤 상황일까? 그것은 매년 실시되는 신춘문예나 문학작품 공모를 통해 추정이 가능하다. 당선이나 등단의 빛을 보는 소설의 주제를 보면 문학적 상상력이 매우 제한적이고 그것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흔히 말하는 거대 담론 소설이나 정치소설 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등용문에서 작동되는 심사 기준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소설의 상상력이 어떤 이유에서건 제한적이 되면 소설가 지망생들은 대부분 그 영향을 받게 되고 그 결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에서 팔리는 작품은 총체적인 면에서 흥미 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고 이런 기준에 맞는 작품이 선택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시장도 공급자에 의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과 생산자는 숙명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오늘날 전반적으로 소설이 외면 받는 이유의 하나가 그 생산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소비자들의 입맛이 변한 것도 분명한 이유이겠지만 시장에 공급되는 소설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살펴야 한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비좁은 상상력의 영역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큰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한국 소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큰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것은 상상력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세계를 감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속담에 보면, 물의 흐름이나 그 속도를 알려면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한국소설의 현주소를 알려면 소설세계 밖으로 나가서 보는 시각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 허용되는 세계를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될까? 이를 추정할 때 오늘날 70억 인구는 20만 년 전 한 어머니의 후손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과 같은 종족이라는 개념은 존재치 않으며 현존 인류는 형제자매라는 것이다. 인류는 5대양 6대주에서 각양각색의 문화와 전통 등을 만들어냈고 오늘날도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는 물론 의상, 주택 형태 등 인간 생활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다양한 흐름으로 발전해왔고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것은 인간의 상상하는 유전적 능력이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점은 소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 점을 전제로 했을 때 소설 또한 그 창작영역이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물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적 상상력이 무한하다면 소비자들에게도 그런 작품이 공급되어야 한다. 신변잡기식 좁은 영역 속에서 ‘문학적인 것’, ‘문학성이 있는 것’을 천착하는 현실을 되돌아 볼 일이다.

인간이 느끼는 흥미, 재미라는 것은 세계 각지의 민족들의 경우처럼 다양하기 짝이 없는데 그런 차이는 후천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민이나 귀화 등에서 확인된다. 인간의 상상력은 동서고금의 인류 문화를 살피면 그 깊이와 폭을 헤어리가 어렵다. 오늘날에도 그 상상력은 계속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총체적인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할 때 한국적 소설의 창작 공간이 확대되면 그 소비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상상을 해본다.

(이 글은 한국문인협회가 발행하는 <한국문학인> 52호와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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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20-09-10 08:37:51
세 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식민시대의 습관이 세습화되어 상상의 나래를 꺽은 것은 아닐까..........이런 생각을 해봅니다.................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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