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드디어 한반도의 `온전한` 통일문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겸 군총정치국장인 조명록 인민군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이번달 9∼12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반도 평화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면서 이제 한반도문제의 두 축인 통일문제와 평화문제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통일문제는 이미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제기된 바 있다.

6.15선언 5개항에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군사문제 등 이른바 평화체제나 평화협정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 즉 6.15회담은 평화회담이 아니라 통일회담인 셈이다. 회담후 6.15선언을 두고 일부에서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없이 통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틀린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에서 남북간의 한계와 현실을 비켜나가는 부분적인 견해일 뿐이다.

6월 평양회담에서 `온전한` 한반도문제를 모두 건드리기는 어려웠다. 북이 주장해온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등 이른바 근본문제와 남이 제기하고자 했던 긴장완화와 핵 미사일문제 등이 그렇다. 이런 문제들이 빠진 이유는 자명하다. 미국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문제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6.15선언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군사문제가 빠져있음은 남북간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은 평화문제는 미국과 직접 풀고 남한과는 통일문제를 풀겠다는 것이고, 남한은 그동안 한반도문제를 북미간에 내주고 있던 참에 통일회담을 통해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로 진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의 두 지도자가 평양회담을 `온전한` 한반도회담이 아니라 통일회담으로 한정한 것은(즉 평화회담을 배제시킨 것은) 남북간 현실에 입각한 지혜로운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은 6.15선언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경의선 철도 복원과 더불어 6.15선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남북 군사회담이 열렸다. 경의선 철도 복원은 비무장지대(DMZ)와 군사분계선(MDL)을 관통하게 된다. 이 지역 관할 책임자인 유엔군(미군)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의 상징이다. 그 한 점이 뚫리는 것이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남북 군사회담이 열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한반도 평화문제는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언제든 돌출할 수 있는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문제의 한 축인 평화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최근 일련의 남북간 적십자회담, 장관급회담, 국방부장관회담 등의 합의문 모두(冒頭)에 붙는 `역사적인 6.15정신에 따라`에서 나타나듯 6.15선언에서 교훈점을 찾아야 한다. 남과 북의 두 최고지도자가 6.15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과 관련한 입장이 서로 달랐지만, 명확했기 때문이다.

6월 평양회담에서 통일원칙과 통일방안에 있어 두 지도자의 입장은 차이가 있었지만 명확했다. 통일원칙으로 천명된 `자주`의 개념을 놓고 두 지도자는 `외세의 간섭없이`와 `외세의 도움을 활용하여` 하며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나 그 차이가 `우리 민족의 힘으로`라는 공통점까지 훼손시킬 수는 없었다. 또한 통일방안에 있어서도 연합제와 연방제 등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공통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 교훈점을 한반도 평화문제에도 적용해야 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해 북미간 평화협정, 남북간 불가침선언을 주장해 왔다. 자신의 입장을 일관되게 명확히 해 온 것이다. 남한은 어떠한가. 이제까지 명확한 정부안이 없었다. 다만 일부 학자들에 의해 3자(남북미)니 4자(남북미중)니 6자(남북미중일소)니 7자(남북미중일소유엔)니 하는 견해만 무분별하게 나왔을 뿐이다.

이런 중에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이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장하는 2+2 방식을 천명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김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자간의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방식은 북의 방식과 다르다. 그러나 남한의 입장을 거듭 명확히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조명록 특사의 방미로 인해 한반도 평화문제를 둘러싼 남북미 3자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조특사는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다. 군사적 대치관계에 있는 적성국으로 군 책임자가 가는 것이다. 이는 남북정상회담 못지 않은 큰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북미간 고위급회담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주요 의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 봤다. 통일문제라는 `속도전`에 이어 평화문제가 추가됨으로써 가속도가 붙으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온전한` 한반도문제가 그 거대한 몸통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래 한반도 분단상태의 불안정성은 정전협정에 기인한다.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준(準)전시상태이기 때문이다. 1953년 정전협정 및 지금의 분단상태와 관련, 북한과 미국은 법적 현실적 당사자이고, 남한은 현실적 당사자이며, 중국은 법적 당사자이지만 한 발 빠져 있다. 따라서 남북미 3자가 한반도문제와 현실적인 관계가 있다. 여기에서 북은 북미를, 남은 남북을 강조한다. 서로 평화문제의 파트너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하고 또 다행스러운 점은 남과 북이 서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 나름의 방식이 명확히 있다는 점이다. 남북이 통일원칙과 통일방안이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을 찾아냈듯이, 그리고 6.15선언에 군사문제가 빠져 있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중에 군사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의제화 되었듯이, 서로 다른 해결방식의 한반도 평화문제 역시 남북간의 회담과 대화과정에서 차이가 해소되고 공통점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온전한` 한반도문제는 남북간의 2차 방정식에서 평화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개입하는 3차 방정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고차원의 방정식을 어떻게 풀 것인가는 남북의 두 주체에 달려 있다. 6.15선언의 교훈점에 바로 선다면 한반도 평화문제 역시 통일문제처럼 남북이 자주적으로 풀게 될 것이고, 그것이 또 6.15선언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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