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을 봉합한다는 취지로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다음 주 발의될 예정이다. 1년 6개월 이내에 2억 원의 위자료를 받으면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는 대위변제를 강조하고 있다.

최광필 국회 정책수석비서관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강제징용 동원 해법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 구상에 대해 언론설명회를 열었다.

최광필 수석은 “문희상 의장은 현재의 한일관계 악화로 의도치 않게 커져가는 경제적 피해도 크게 염려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한일 양국 국민들의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까지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문희상 안’을 설명했다.

‘기억.화해.미래재단’ 통해 ‘위자료’ 받으면 강제징용 문제 제기 못 해

그가 내놓은 ‘문희상 안’의 원칙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의 근본적이고 포괄적 해소, △위자료 지급을 통한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로 대위변제, △배상문제는 일정한 시한을 정해 일괄 해결이다.

지난달 공개된 ‘문희상 법안’ 초안에도 ‘기억인권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1인 당 2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1년 6개월 이내에 지급되는 위자료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대위변제되는 것으로,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

다만, 여기에는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는 제외됐고, 논란이 된 화해치유재단 잔여금 약 60억여 원도 재단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인권재단’은 ‘기억.화해.미래재단’으로 명칭을 바꿨다.

1년 6개월 내 지급되는 위자료로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된다는 취지의 ‘문희상 안’은 문재인 정부가 무효화시킨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재단과 성격이 같다. 위자료를 받는 대신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과거사 문제는 끝낸다는 점에서다.

또한, 지난해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했음에도, ‘문희상 안’은 법률로 개인청구권을 사실상 소멸시킨다는 문제도 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이 5일 국회 앞에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는 “기간을 정해두고 피해자들 권리를 소멸시키고 다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되고 있는데, 이는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마치 골칫거리와 걸림돌인 양 취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억.화해.미래재단’을 통한 위자료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한일 갈등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한민수 국회 대변인은 “이쪽(재단)을 통해서 (위자료 수급을) 하신 분들은 따로 (소송을) 할 수 없다”며 “여기는(위자료는) 받지 않고 (소송은) 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령이고 소송을 길어지기 때문에, 지난해 승소한 피해자들을 포함해 소송을 제기할 피해자들 모두 재단을 통해 위자료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최 수석은 “미쓰비시 강제동원 판결 원고가 아홉분이다. 그중 여덟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만 생존해 계신다. 그분의 연령이 한계상황에 와계신다”며 “재판은 시간적으로도 굉장히 길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대변인도 “굳이 (소송을)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시간과 재판상 비용이 들어간다. 굳이 (소송을) 하실 이유가 없다고 본다” 위자료 지급을 통한 대위변제를 강조했다.

‘문희상 안’, 다음 주 발의..“한.일, 화해 계기 만들겠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다음 주에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겠다는 의지이다. 이달 말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계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강제징용문제를 풀어 한일 간 화해선언을 꾀한다는 것.

최 수석은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로 가자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한일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화해의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취지가 문재인-아베 선언으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희상 의장의 기대만큼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문제에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할지는 미지수다. 일본 측이 ‘문희상 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하지만, ‘군함도’로 대표되는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과 관련해 강제징용자를 ‘일본의 산업을 지원한 한반도 출신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도 아베 총리의 사죄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문희상 안’은 외교당국과 협의도 필요하지만, 국회는 법안 통과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 대변인은 “(청와대나 정부와) 세세하게 협의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협의할 것이다. 협의라는 게 법안 만드는 건 국회의원 고유권한이니 큰 틀에서만 협의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법안이 위원회에 배당되면 소관부처에 의견을 문의한다. 의견을 문의하지 않고 법안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강조하지만, 속내는 한.미.일 동맹 우선

‘문희상 안’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은 한.미.일 동맹이 우선이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최 수석은 “어디까지나 피해자 중심의 지원 방안을 모색하면서도 최근 한일 갈등을 푸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담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위자료를 지급해달라고 한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와 지원단체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문희상 안을 소송 원고들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다른 피해자 유족은 “일부 피해자들이 문희상 의장을 만나 ‘문희상 안’을 지지한다며 사인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문희상 안이 뭔지도 모르고 사인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일부는 사인한 명단에서 빼달라고 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문희상 의장 측은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주장했지만 한.미.일 동맹이 중요하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한충희 외교특임대사는 “일본에서도 이 법안에 대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는 한일 양자 간만의 이슈가 아니라 한미일 공조를 회복하고 북핵문제 등과 연결돼 있어, 우리가 다양한 외교적 레버리지를 가지려면 이 문제를 대승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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