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 국가를 상대로 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첫 손해배상 청구재판이 열린다. 일본 국가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이다. 한일관계 악화 일로에서 정부는 침묵을 지키면서도 기각을 바라는 눈치이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곽예남 할머니 등 20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지난 2016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2015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합의의 부당함에 맞서 일본을 상대로 1인당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인륜적 범죄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함과 아울러 역사기록을 남기고, △국제법적, 국내법적으로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반성을 새기고자 하며, △일본이 인류 보편적인 인권 국가가 아님을 고발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을 수 있음을 대한민국 법원에서 확인받고자 한다는 등의 이유이다.

일본, 국가주권면제 앞세워 재판 불가 주장

하지만 재판은 3년 가까이 열리지 않았다. 2015한일합의를 염두에 둔 한국 정부와 법원의 소극적인 행동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해 2015한일합의 재검토가 시작되자, 법원은 2017년 8월 일본 정부에 소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민사 또는 상사의 재판상 및 재판 외 문서의 해외송달에 관한 협약(헤이그송달협약) 13조를 언급하며, 서류를 반송했다.

이어 그해 법원은 10월 협약 해석문제 관련 사실 조회를 외교부에 요청했고, 법원행정처가 담당해야 할 사안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2018년 2월 법원행정처는 외교송달절차를 문의했고, 8월 법원행정처가 외교부에 외교경로를 통한 송달을 촉탁, 주일대사관이 일본 외무성에 촉탁서류를 전달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소송에 대한 공식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최종적으로 헤이그송달협약 13조 ‘피촉탁국은 이를 이행하는 것이 자국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하여서만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항목에 따라 반송했다. 한국 법원에 제기된 ‘위안부’ 소송이 ‘국가주권’에 해당해, 한국에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것.

즉, 이번 재판은 일본 국가를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있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국가는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일반적인 원칙 때문이다. 상업 활동 등에 있어서 국가주권 면제 예외가 인정되지만, 반인륜 국가범죄에 대한 재판은 흔치 않다.

“반인륜적 전쟁범죄에는 국가주권면제 인정 안 돼”

그러나 예외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이탈리아 ‘패리니 사건’. 강제노역을 당한 이탈리아인이 독일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탈리아 법원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독일은 국가주권면제를 받을 수 없다고 인정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2012년 독일은 해당 재판을 인정하지 않아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 주권면제에 해당한다고 승소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국가주권면제 논란은 여전하다.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에, 이탈리아 정부는 국가주권 면제와 관련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해당 법률은 위헌 판결을 받아, 현재까지도 이탈리아 법원은 독일을 법정에 세워 일부 승소, 일부 패소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 밖에도 2000년 디스토모 학살사건에 대한 그리스 법원의 판결, 2004년 알트만 사건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 등 한 국가를 다른 나라 법정에 세운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 ‘패리니 사건’의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국가를 상대로 다른 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번 ‘위안부’ 소송에 주는 시사점은 크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행위가 국제법상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므로, 한국 법원도 피해자들의 배상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탈리아 법원처럼, 국가면제이론에도 불구하고 판결할 수 있다”며 “법원이 적극적으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도 12일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한국 법원은 지금까지 반인도적 범죄이자 전쟁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 근거해 주권면제 적용 여부를 판단할 기회가 없었다”며 “이제 인권 예외의 성립에 선구적 역할을 할 역사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한일관계 악화 길어질라 ‘눈치’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국이 한국 재판부에 피고로 서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헤이그송달협약 13조를 언급하며 소송 서류 자체를 받지않은 것처럼, 이번 첫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 극우를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재판부가 ‘국가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지 않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가 이번 ‘위안부’ 재판으로 길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국가주권면제 사례를 나열하며, 이번 소송에서 재판부가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재판은 재판이다. 재판관련 사항은 전망하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면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을 피했다.

일본 국가가 피고로 재판정에 설 수 있느냐는 13일 오후 5시 열리는 첫 변론기일에서 결론이 날 수 있다. 소송을 제기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는 재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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