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브레히트)


 제대로 된 혁명
 - D.H.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영화 ‘도그빌’을 보았다. 로키 산맥의 한 작은 산골 마을에 어느 날 총소리와 함께 미모의 여인, 그레이스가 갱들을 피해 도망쳐 온다. 

 마을의 청년 톰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는 그녀를 마을에 숨겨주고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그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이 오고 마을 주민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현상 포스터가 나붙고 그레이스는 마을 주민들의 먹잇감이 되기 시작한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그녀의 목에 개 목사리까지 채운다. 여자들은 그녀를 가혹하게 부려먹고 남자들은 그녀를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왜 평화스러워 보이던 마을이 이리도 잔혹하게 바뀌었을까? 경찰과 갱으로 상징되는 외부의 큰 힘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동물 세계는 먹고 먹히는 세계다. 초식동물들은 자기들끼리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가 육식동물이 나타나면 초식동물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가장 약한 동물을 바치고서 나머지 동물들이 살아남는다.

 인간 동물도 약자들끼리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가도 강자가 나타나면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약한 자를 바친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이다.

 톰이 갱들이 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갱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들이닥친다. 갱 두목이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 그레이스는 갱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도망쳤던 것이다.

 그레이스는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양도받아 주민들을 모두 총으로 학살하고 마을을 불살라버린다. 잔혹한 복수극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 사회는 도그빌과 얼마나 다를까? 아마 대부분의 마을은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과정을 겪고 같은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우리 사회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상황은 무수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 직장, 단체, 지역 사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금방 생지옥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가득한 인간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 모두 '자유와 평등의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모든 특권을 대를 이어가며 누리던 기득권자들이 가만히 있을까?
  
 조국 법무부 장관의 하차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더니. 

 하지만 우리 안의 ‘생(生)의 의지’가 강자들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는 세상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파를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생의 의지를 모아야 한다.  
 
 ‘제대로 된 혁명’을 해야 한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촛불 집회에서 피어났던 ‘벅찬 가슴의 재미’로 하나하나 개혁해 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긴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한 싸움이니까 지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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