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L858기 사건을 87년 대통령선거에 이용한 '무지개 공작' 문건의 내용이 지난달 26일 <통일뉴스>에 의해 추가로 공개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가수 김광석은 그렇게 노래했다. 과거청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너무 늦은 정의도 정의인 걸까?’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된 과거청산을 새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빛을 못 보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를 되살리기 위한 법안이 2017년까지 통과되어야 했다. 하지만 2년이 되어가는 지금, 국회는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는다.

광주 5·18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의 경우, 법이 통과되었는데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못마땅해 하는 정치세력이 여러 형태로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일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늦은 정의라도, 전혀 ‘없는’ 정의보다는 낫지 않을까?

대법원 판결에 따른 문건 공개

▲ 국정원은 지난 8월 30일자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9월 19일자로 무지개 공작 추가 공개 부분 복사본을 원고인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에게 발송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무지개 공작’ 문건의 공개를 둘러싼 소송이 대법원에서 <통일뉴스>(김치관 기자)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무지개 공작은 1987년 당시 안기부가 KAL858기 사건을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데 활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판결이 있기까지 짧게는 2년, 길게는 12년이 걸렸다. ‘기자 정신’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늦은 승리지만, 값진 승리다. 전면공개는 아니지만, 비공개보다는 훨씬 낫다.

32년이 지나도록 해명되지 않은 문제들, 그 답을 찾으려는 실종자 가족들과 지지자들의 노력. 대법원 판결은 이 과정에서 나온 소중한 결실이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냐를 떠나, 정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타난 국정원의 모습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몇 개월 전, 국정원은 서울고등법원이 1심을 뒤집고 문건의 추가 공개 판결을 내렸을 때 항소했다. 담당 변호사가 말했듯, 외교부가 사건 관련 문건을 상당 부분 공개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이를 떠나, 그동안 가려졌던 무지개 공작 내용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닌 듯하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부분은 “하치야 신이치(김승일)와 하치야 마유미(김현희)의 체포경위 및 체포 전 행적에 관한 정보, 이들이 북한과 연계된 인물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로서 일본에 거주하는 실존 인물 ‘하치야 신이치’의 진술 및 관련 인물에 관한 신상정보”를 비롯해, “국제기구 및 북한 동맹국들에 대한 협조 요청 방안” 등이다.

이미 대부분 알려진 내용

나는 이 사항들이 2심 판결문을 통해 처음 드러났을 때부터, 이 부분들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근거는 세 가지였다. 올해 3월 말에 공개된 외교부 문건, 이 사건을 재조사했던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의 보고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열람했던 진실화해위원회 자료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로 공개된 기록은 이 추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주일대사가 외교부장관에게 1987년 12월 2일자로 '하찌야 신이찌 취조 결과' 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외교부의 30년 경과 공문서 공개 일환으로 지난 3월 31일자로 공개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무엇보다 김현희 일행과 북 연계의 근거 역할을 한 일본인 부분은, 외교부 문건에 대부분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이 작성한 문서에는, 일 공안 당국이 하치야 신이치(하찌야 신이찌)는 물론 마유미를 취조한 내용이 나와 있다(2016070039, 141-143쪽).

‘문서상으로만 본다면’, 안기부가 이를 1987년 12월 2일 이전에 일본 당국으로부터 직접 전달받았거나, 12월 2일 외교부를 통해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본 언론이 하치야 신이치를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이 내용도 외교부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132-133쪽).

해외 홍보와 관련된 국제기구 및 북 동맹국들 협조 사안 역시 외교부 자료에 일부 포함된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외무부와 안기부 사이에 긴밀한 협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무부는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규탄위한 특별 대책반”을 만들기도 했다(2016070043, 128쪽).

김현희 일행의 체포 경위 및 이전 행적에 대해서는, 국정원 발전위원회 보고서에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주요 의혹사건편 下권(III)>, 239-253쪽).

당시 안기부는 “사건 발생 前[전], ‘북한인 추정 인물이 비엔나, 베오그라드, 바그다드, 아부다비 등을 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었다(239쪽). 이를 바탕으로 11월 30일에 김현희 일행의 일정을 바로 알 수 있었고, 신속한 체포가 가능했다고 한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확인한 진실화해위원회 자료를 보더라도, “첩보 수준에서 유럽을 암약하는 부녀로 위장한 북한인이 있다는 정보가” 사전에 수집됐고, 체포 과정에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이 초기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DA0799647, 43쪽, 48쪽).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이 ‘첩보’의 정확한 출처와 입수 시기, 항공편 등의 구체적 정보 포함 여부로 지금으로서는 알기가 쉽지 않다.

국정원, 결국 달라진 게 없는가

무지개 공작을 기획하고 추진한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이 문건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판결에 따르면, 국정원은 “본부 상황반에 관한 정보 … 타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내용, 안기부 파견 직원 이름” 등은 끝까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더라도 국정원이 공개를 꺼려했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알려졌던 내용이고, 이는 국정원이 그만큼 시민의 알 권리를 존중해오지 않았다고 일러준다. 먼저 감추고 보자는 것이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보기관의 속성상 그렇기도 하지만, 군사정권 시기에 만들어져 공익과 시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억눌러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정원이 ‘프락치’를 활용해 민간인 사찰을 해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정원이 말로는 개혁을 내세우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너무 냉소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이것이 ‘국정원 정신’인가?

무지개 공작 문제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정원은 이 문건을 더 빨리 공개했어야 했다. 나아가 비공개하기로 한 부분 역시 (직원들의 개인정보는 빼더라도) 나중에 전향적으로 공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너무 순진한 바람일 수 있지만) 국정원이 달라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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