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수확철 사과나무. [사진제공 - 주미경]

 

사과농부 정현 아저씨

우리마을 정현 아저씨는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 2월, 그의 사과밭에서였다. 금방이라도 봄이 막 밀려올 듯이 햇빛이 눈부시게 맑은 날, 그는 혼자서 사과나무 전지를 하고 있었다. 전지가위 하나를 들고 일에 열중해 있는 그가 어쩐지 왜소해 보였던 것은 산등성이를 개간해 조성한 5천평 사과밭의 웅장한 넓이 때문이었을까? 줄지어 서있는 꽤나 관록이 느껴지는 사과나무들과 작은 전지가위의 대비 때문이었을까? 이 마을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으려 한다는 나를 그는 도무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돌멩이라도 툭 던지듯이 말했다. “돈도 안되는 농사는 멋허러 지을라 허요?”

정현아저씨는 자신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들어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4년째 농사에 매달려있는 나를 볼 때마다 그 말을 되풀이한다. 마치 자기가 깜빡 잊고 이 말을 안해줘서 이 사람이 이렇게 고생을 하게되기라도 했다는 듯이. 처음에는 어지간히 듣기싫던 그 말을 이제는 그저 인사말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그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하게되었기 때문이거니와, 그것은 정현아저씨에게 있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정현아저씨의 고향이다. 여기서 학교를 마치고 도시에 나가 잘나가는 사업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건, 그의 말에 의하면 순전히 계산착오 때문이란다. 어느 가을날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린 사과밭을 보고 그예 홀려버렸던 그는, 땅을 얻어 사과나무만 심어 놓으면 때가 되어 열리는 사과가 다 제 것이 되리라 타산하였다는 것이다. 웬걸, 사과농사는 1년 365일 사람 손을 필요로 했고 심어놓은 사과나무를 어쩔 수 없어 사과에 매달리다보니 자연히 주업이 되어버렸단다. 뭐 그런저런 연유로 그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해 농부가 되었다. 25년 전의 일이다.

그는 마을 건너편 산등성이의 사과밭 5천평과 강변에 사과밭 3천평, 모두 8천평의 사과농사를 혼자서 해제끼는 베테랑 농사꾼이다. 트랙터 두 대에 각종 장비를 고루 갖추고 웬만한 고장은 모두 제 손으로 수리할 만큼 기계 다루는데도 능숙한 일꾼이다. 그런데도, 사과농사 20년이라는 말을 듣고 사과박사 다 되었겠다고 감탄하는 나에게 그는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녀유, 사과 스무 번 따본겨유.”

매해 사과 수확 때면 그의 집은 잔칫집같이 흥성이었다. 집 아래 창고에는 빨간 사과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사과 선별하는 마을 아줌마들의 웃음소리와 사과 선별기 돌아가는 소리가 새벽부터 하루종일 끊이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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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섯 해가 또 지났으니 그는 스물 다섯번 사과를 딴 셈이다. 하지만 올해 정현아저씨네 집은 조용하다. 그는 작년에 자기가 가꾸던 사과나무를 절반 이상 뽑아버렸다. 오래된 사과농장들에선 수명이 다된 나무를 뽑고 새 묘목을 심지만 정현아저씨는 새 나무를 심지 않았다. 사과나무를 반으로 줄인 그가 올해를 살아가는 묘수는 일자리 얻기였다. 그는 봄이 막 시작될 때 3십몇대 1이라든가 하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군청에서 모집하는 계약직을 얻어냈다. 하천변과 야산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다.

정현아저씨는 태풍이나 ‘쎄게’ 불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쎈’ 태풍이 불어 사과나무가 다 뽑혀주면 보험 타고 사과농사 작파할 수 있으니 그게 딱 원하는 바라는 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나무를 쓰러뜨리는 태풍은 5년 내내 한번도 불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25년 동안 8천평의 사과농사를 땀흘려 지어온 농부가 마침내는 제 손으로 사과나무를 뽑아버리고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게 되었다.

25년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수입이 괜찮았던 해는 딱 두 해뿐이었다 한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아무것도 꿈꾸지 않고 누군가가 때때로 펼쳐놓는 내일의 설계도 믿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매달 갚아야 할 융자금의 이자와 다음 학기 아이들의 등록금이 되어줄 오늘의 현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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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군청 앞에 사과상자를 쌓아놓고 시위하는 농민들. 

그건 순전히 운이 나빠서였을 수도 있다. 아니 날씨가 나빠서였을까? 아니 절기가 맞아주지 않아서였을 게다. 그러면 기이하게도 모든 나쁜 일들이 우연하고도 공교롭게 겹쳐 사과값 80% 폭락이라는 어이없는 일이 생겨버린 것일까?

장수는 사과 산지로 이름났지만 특히 홍로사과가 주 특산품이다. 홍로사과는 추석이 다가올 때 수확하는 조생종 품종이다. 대개의 조생종이 그렇듯이, 홍로사과도 저장성이 떨어져 수확한 즉시 다 팔아야 하지만, 매년 처음 나오는 햇사과인데다 추석 대목에 맞추어 나오니 꽤 괜찮은 수입을 보장하는 품목이었다. 그런데 올해 가을장마와 태풍과 이른 추석이 겹치면서 대목을 놓치고 시장에 나온 사과들이 그야말로 폭탄을 맞았다.

공판장에 나간 10키로 한 상자 가격이 3천~5천원이라는 소식에 사과농가들이 모두 불에 덴 듯이 뛰쳐나왔다. 상자 하나 값이 1,800원인데 사과 한 상자가 3천원이라니 기절초풍할 노릇이 아닌가. 그도 그럴것이, 사과농사는 온전히 한 해 농사다. 양파나 마늘처럼 뒷그루를 지을 수도 없고, 배추나 무처럼 통째로 갈아엎을 수도 없다. 인건비 안나온다고 따지 않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수확하고 정산하는 농약값, 비료값을 깔고 앉아 버틸 재간도 없다.

농민들이 군청 앞마당에 사과상자를 쌓아놓고 시위라도 한 덕분에 군수는 물론 온 군이 화들짝 놀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판로를 주선하여 위기를 겨우 넘기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것이 우연도 아니고 일회성 사건도 아니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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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겠다고 시골에 내려오면서 도시에서 일하는 아들과 떨어진 것이 큰 상실로 된 이유는 말벗을 잃은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훌륭한 대화상대를 잃은 허전함이 커져가지만 가끔씩 길게 이어지는 페이스톡 통화가 마음을 눅여주기도 한다. 정신없이 변화해가는 통신기술의 발달을 그리 달가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떨어져서도 얼굴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기술만큼은 후한 점수를 주고싶어지기도 한다.

지난 주 전화기 화면에 나온 아들의 얼굴이 몹시 어둡고 말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안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아들이 대답한다. “안좋은 일이 두가지 있지요. 하나는 돼지들을 너무나 많이 죽이고 있는 것이고 그것보다 더 안좋은 일은….” (침묵) 무어냐고 재촉하는 나에게 아들이 묻는다. “인터넷에서 돼지열병 검색하면 상위에 나오는 연관어가 뭔지 알아요?” “몰라, 뭔데?” “…. 돼지열병 수혜주…!”

잠시 둘 다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동안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우선은 처절하게 죽어나가는 돼지들과 그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하여 침울한 사람과 그런 비극을 이용하여 한 몫 챙기려는 사람들 간의 아득한 거리에 대해 생각했다.

또 그런 날벼락 같은 비극의 당사자가 된 농민들에 대해, 또 그런 끔찍한 도살을 ON 스위치가 눌러진 기계처럼 수행해야 하는 관계자들에 대해, 또 그렇게 전염병에 취약하고 비윤리적인 공장식 가축사육방식에 대해, 그리고 결국은 농가들의 어려움을 사업확장의 기회로 삼아 사료판매, 육가공, 유통 등을 장악하고있는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을 집어삼키듯 양돈농장을 먹어치울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돼지들의 끔찍한 운명으로부터 유추되는 우리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해서 우울한 사람보다 그 처절한 장면을 앞에 두고 아랑곳없이 주판알을 튕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 도덕감정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실종된 세상을 만들어놓은 것이 나자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들에게, 아들세대에게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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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2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백남기농민 정신계승! 농정개혁쟁취!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2,500여명의 농민들이 문재인정부 농정에 사망을 선고하는 상여와 영정들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월 25일 전국의 농민들이 여의도에 모여 상여를 들었다. 가슴 졸이며 기대를 갖고 지켜보던 문재인 정부의 2년 반 농정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상여였다. 2천5백여명이 모였다 하니 2백5십만도 되나마나한 온 나라 농민들의 대표가 죄다 나왔다고 볼 수 있는 숫자다.

식량주권을 포기하고 우리농업의 근간인 쌀생산을 내버리면서 무연하게 아름답던 논들은 비닐하우스와 유실수들로 잠식되었다. 거기에서 비롯되어 도미노처럼 모든 농작물의 가격폭락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90년대에 시작된 WTO체제의 가장 커다란 희생자로 견뎌왔던 피눈물나는 세월, 마침내 그 끝에서 마주친 ‘개도국 지위포기’라는 막장 앞에서 그들은 다시금 지친 육신을 일으킨 것이다.

농민들의 대규모 싸움은 일찍이 1923년 ‘암태도 소작쟁의’에서 시작되었다. 그 싸움은 일제 식민지 시기를 관통해 해방 후 3년간의 미군정 시기,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 시기는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정부 시기에도 멈춰지지 않았고, 이어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백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에 걸쳐 지속되고 계승되어온 싸움이다. 그것은 어떤 정부에서건 예외없이 1백년간 줄기차게 진행되어온 농업파탄과 농민희생 정책에 저항하는 싸움이었고, 빗나간 경제발전과 왜곡된 산업화의 그늘에 갇힌 외로운 싸움이었다.

우리는 모두 농민의 아들이요 딸이었다. 그러나 농민의 손주들은 농민을 모르고, 또 그 증손주들은 농민을 아예 백안시하는 세월로 접어들었다. 농민들의 대규모 여의도 집회를 보도한 언론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밖에 안되고, 온 나라 농민의 대표들이 모여 외친 함성에도 아무 메아리가 없다. 그리고는 또다시 경쟁력을 운운하며 소농포기정책을 역설하는 기획기사들이 쏟아지고, ‘자기들 책임이지 누구를 탓하느냐’는 포털뉴스 어떤 댓글에는 오히려 농민들을 비난하는 적의마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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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5백여명의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농촌에도 사람이 있다’고 목놓아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는 정부를 우리는 아직도 갖지 못했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두 달 동안 계속되는 ‘조국사태’에 매몰되어 있고, 덩달아 온 나라 사람들의 이목도 거기에 쏠려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 앞에서, 농민들은 2년 반의 기다림도 무색하게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어 민중을 내버리는 또 하나의 정부를 보고 있다.

‘적폐청산’이란 한 마디로 침몰한 도덕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불평등과 기회박탈로 위기에 몰린 민중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기대를 가졌던 정부는 왜 민중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고 조국이라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저토록 사생결단 싸우는 것인가. 그 사람에 대한 숱한 의혹을 뭉개기 위해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쟤네들도 똑같은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유치한 투정에는 그런 거 없애고 바로잡으라고 지지했지 똑같이 닮아도 된다고 지지한 게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도덕이 밥먹여주냐’거나, ‘자기들에게만 너무 높은 도덕수준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일반론으로 나아가면 할 말이 없어진다.

도덕과 윤리는 민중의 무기다. 도덕과 윤리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운동과 정치투쟁의 가치를 가늠하는 움직일 수 없는 잣대다. 그토록 엄혹한 항일무장투쟁의 전 과정에서 굶어죽어가면서도 민중의 감자 한 알에도 손대지 않는 원칙을 끝내 지켰던 것은 그것이 강대한 일제와의 싸움에서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세우고 민중의 이익을 지키는 싸움에서 도덕과 윤리가 무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구부러진 칼로 불의를 벨 수 없고 비뚤어진 입으로 정의를 세울 수 없다. 신영복 선생은 그와 관련하여 좋은 이야기를 남겼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가 바르지 않고 그 과정이 바를 수가 없으며, 반대로 그 과정이 바르지 않고 그 목표가 바르지 못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하나입니다.」

이 가을이 외로운 이들을 위하여

적폐청산을 한다는 그들은 왜, 무엇을 위하여, 무엇에 의거하여 싸우는가? 목표를 잃어버린 시대에 외로움만이 남았다. 과정이 흐트러진 시대에 허전함만이 남았다.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이 조국이라는 사람을 옹호하여 나서는데 동의할 수 없어 나는 외롭다. 115일째, 강남역 사거리 25m 철탑에서 처절한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도 외롭고,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26일째 도로공사 점거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도 외롭다.

단 한 명의 석방도 사면도 이루어지지 않아 지난 정부에 이어 오늘도 여전히 옥고를 치르고 있는 이 땅의 양심수들은 외롭다. 탈북 브로커에 속아 원치않는 대구시민이 되어 7년간 북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절규하는 김련희씨도 외롭고, 오곡과 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에 아스팔트 위에서 농업을 지키고 농민을 살리라고 외치는 농민들의 외로움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이전 정부에서의 싸움은 힘겨웠으나 외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얼굴이 바뀐 지금은 힘겨움에 더하여 외로움이 얹혀졌다. 광장을 채웠던 촛불처럼 가슴을 채우던 기대는 허전하게 접혔다. 조국이라는 사람이 지켜진다 해도 자기들의 기대가 가 닿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정현아저씨는 이번 태풍에 절반 남은 사과나무들마저 뽑혀주기를 바라고 있을까? 정부의 얼굴은 바뀌었어도 정현 아저씨에게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들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이야기하던 ‘사람사는 세상’이 무언지 정현 아저씨는 알지 못한다. 그는 오늘도 새벽같이 사과밭을 뒤로 하고 쓰레기를 주으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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