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9.22 일 15:30
홈 > 현장소식
장기수 서옥렬 선생 별세.. 향년 92세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9.09.11  12:35:11
페이스북 트위터

장기수 서옥렬 선생이 추석 명절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전 9시 30분, 광주 북구의 으뜸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징역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멀고 탈장에다 심장질환, 관절질환에 시달려왔다.

   
▲ 2001년 8월 경북대 총학생회 주최로 경북대 전자계산소 세미나실에서 열린 ‘주체사상 대토론회’에서 주제토론에 나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서옥렬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고인은 1927년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서 아버지 서계술 씨와 어머니 이경심 씨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주하여 미동초등학교, 경기상고를 마치고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수학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인민군에 편입된 뒤 북으로 가게 됐다.

고인은 북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교원이 되었고, 같은 교원이었던 강순성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두었다.

1961년 8월 공작원으로 남파해 고향집을 방문한 후 월북하다가 붙잡혔다.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30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1990년 출소했다.

출소 후 고인은 주로 광주에 기거하면서 생업으로 뜸 치료를 했으며, 지역 통일운동에도 참여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내 부친과 징역을 함께 살았기에 스스럼없이 지냈다”면서 “10일 전에도 광주에 내려가 생전의 고인을 만났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고인은 머리가 아주 비상하고 이론적 소양이 깊어 광주지역의 통일인사들에게 통일운동의 방향제시를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2차 송환 희망자였으며. 양심수후원회와 통일광장 등에서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해 힘써 왔다.

   
▲ [사진출처-통일애국열사 서옥렬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

빈소는 광주역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14일(토) 오전 8시 30분 장례식장에서 치른다. 고인의 장례식 명칭은 '통일애국열사 서옥렬 선생 민족통일장'으로 정했으며, 영결식은 14일(토) 낮 12시 문빈정사에서 거행된다.

(추가-오후 1시58분)

(추가2-12일 오후 10시 10분)

 

 

이계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트위터 뒤로가기 위로가기
댓글
아이디 비밀번호
(현재 0 byte/최대 500byte)
댓글보기(0)
통일뉴스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후원하기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3-2번지 삼덕빌딩 6층 | Tel 02-6272-0182 | 등록번호 : 서울아00126 | 등록일자 : 2000년 8월 3일 | 발행일자 : 8월 15일
발행·편집인 : 이계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계환
Copyright © 2000 - 2015 Tongil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ongil@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