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


 그러나 나는
 - 김남주

그러나 나는 
면서기가 되어 
집안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했다 
황금을 갈퀴질한다는 금(金)판사가 되어 
문중의 자랑도 되어 주지 못했다 

나는 항상 이런 곳에 있고자 했다 
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인간적인 의무가 있는 곳에 
용기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근심 걱정 잠 안 오고 
춘하추동 사시장철 뼈 빠지게 일을 해도 
허리 펴 느긋하게 한 번 쉬어보지 못하고 
맘 놓고 허리 풀어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평생을 한숨으로 지새는 사람들과 함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납세고지서 징집영장 밖에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운영위원회가 처음으로 생겼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출마하자! 

 학교 측에서 후보자들에게 5분이라는 유세시간을 주었다. 나는 흥분한 상태로 ‘열변’을 토했다. 1등으로 당선되었다. 세상에 내가 1등을 하다니! 하지만 운영위원장은 나 같은 귀촌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퇴직 공무원출신의 지역 유지가 했다.
 
 하지만 운영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많은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안하여 개설했다. 학생과 학부모 대상의 글쓰기 강의도 하고 학교 신문도 발행했다. 도시에서 배운 모든 경험을 총 동원했다.

 큰 아이 졸업식 날 귀빈석에 점잖게 앉아 있었다. 시상식을 했다. ‘헉!’ 운영위원을 함께 했던 분의 딸이 상을 받는 게 아닌가! 졸업생 좌석을 둘러보니 큰 아이는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내 아들에게 아무것도 안 해 줬구나! 그 뒤로도 아이들 스스로 자라게 길렀다. 나는 그게 멀리 내다보면 아이들에게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다 자라 성인이 되어 야성의 힘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지역의 시장 선거를 도와 준 적도 있다. 도시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어깨 너머로 본 경험이 있어서 시장 후보자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그 후보자가 당선이 되고 시장 비서실장 제의를 받았다. 

 나는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역운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나의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받아들이기도 전에 여러 통로로 청탁이 들어왔다. 나 같이 심약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신 시 산하 문화단체의 사무국장으로 갔다. 가자마자 협박성 청탁의 전화를 몇 번 받았다. 그런 작은 단체에서도 검은 돈들이 오고 가나 보다. 나는 2주일 만에 그만뒀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유추해 본다. 우리의 정치권, 고위관료와 재벌을 위시한 재계, 사법기관과 언론, 학계는 어떻게 거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 그 고리는 너무나 단단해 아무도 깰 수 없는 거대한 성(城)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 고리의 어느 매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깨끗한 이미지의 명망가들이 참 많다. 나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학처럼 고결하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명망가들을 가까이서 볼 때마다 대체로 실망을 했다. 우리는 그들을 이 시대의 구원자, 메시아라는 허상으로 본다. 우리의 망상이다. 민주주의는 민(民)이 주(主)가 되어야 하는데, 민(民)이 아닌 주인을 섬기려는 우리의 노예의식의 발로다.

 박근혜 독재 권력을 무너뜨린 우리의 ‘촛불’은 얼마나 위대했던가! 그때 우리는 오로지 민(民)의 힘으로 해냈다. 명망가들이 집회에 와도 마이크도 주지 않았다. 지도부 없이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모아 천지개벽을 이뤘다.     

 그때 우리는 인즉천(人卽天 사람이 곧 하늘)의 세상을 봤다. 드라마 녹두꽃에서 한 동학농민군은 말한다. ‘나는 인즉천의 세상을 봤다. 이제 다시는 종살이하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사건’을 보며 생각한다. 왜 우리는 그에게서 ‘메시아’를 보는가? 그는 우리 사회의 최고 권력의 고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가 ‘청백리’이길 바라는가? 현대 정치에서 그런 봉건제의 이상적 정치인이 가능할까? 그보다 깨끗한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인즉천의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폭력’이 현실 정치를 지배할 것이다.

 조국 후보가 법무부 장관이 되면 국정 개혁, 검찰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해낼 것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민주당은 우리 사회의 보수, 수구에 기반을 갖고 있는 자유 한국당과는 지지기반이 다르니까. 그동안의 주류 기득권 세력을 어느 정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한 발짝 진보할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그의 당은 신흥 주류 세력을 형성해갈 것이다.  
 
 김남주 시인도 그런 기득권 고리의 맨 밑자락에라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의 출신 학교들을 보면). 하지만 그는 ‘면서기가 되어/집안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했다/황금을 갈퀴질한다는 금(金)판사가 되어/문중의 자랑도 되어 주지 못했다’

 ‘나는 항상 이런 곳에 있고자 했다/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인간적인 의무가 있는 곳에/용기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해가 뜨나 해가 지나 근심 걱정 잠 안 오고/춘하추동 사시장철 뼈 빠지게 일을 해도/허리 펴 느긋하게 한 번 쉬어보지 못하고/맘 놓고 허리 풀어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평생을 한숨으로 지새는 사람들과 함께/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납세고지서 징집영장 밖에 받아 본 적이 없는/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

 우리는 다시 ‘촛불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좋은 세상은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납세고지서 징집영장 밖에 받아 본 적이 없는/그런 사람’외에는 어느 누구도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