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대륙 대 해양이라는 냉전시대 대립구도로 회귀한다면 남북관계개선은 멀어지고 만다. 한국에겐 북방지역도 남방지역도 중요하다. 그리고 한반도의 민족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민족의 생존문제이다. 그리고 남북 간에 있어 왔던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보아야 한다. 북은 없고 남은 있으니 주자거나, 북의 인건비가 싸니 투자이익이 난다거나 하는 남한사회에 깔린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을 지양해야 한다. 북한경제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남한사회의 현실에 입각한 민주적 접근방식이 필요한 이유이다.”(본문 7~8쪽)

인체에 영양소가 장기간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 즉 사람이 일정 기간 ‘굶게’ 되면, 신체의 세포 안에서는 자기소화(自己消化, autophagy)라는 세포과정이 진행된다고 한다. 스스로(auto) 먹는다(phagy)는 뜻의 이 과정은 당장 긴요하지 않은 낡은 단백질이나 손상된 세포 소기관을 처분하여 세포가 굶주림을 모면하는 행위를 가리킨단다.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난 1990년대 중반 북의 ‘고난의 행군’ 시기 우리 정부 및 국제사회의 태도나, 정전 이후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북에 ‘자기소화’를 강요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느낀다. 끝까지 북의 숨통을 조여 스스로 제 살을 깎아먹다 결국 굶어죽도록 강력한 공조를 해온 것이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역사와 현실은 더 끔찍하다.

하지만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를 책임지게 된 이후 지금까지 북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북은 또 다른 의미의 ‘자기소화’를 진행해 온 것 같다. 더욱 촘촘해진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은 경제성장을 지속해왔다. 물론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모습이 미약할 수도 있다. 또한 최근 식량수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정을 보면, 과연 북이 경제성장을 해온 것이 맞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북은 또 다른 의미의 ‘자기소화’를 이뤄냈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촘촘한, 또한 장기간의 제재 국면에서도 최대한 자체적으로 경제를 성장해온 북한의 저력을 의미한다. 물론 중국 등의 지원도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의 성장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북한은 반세기를 ‘자력갱생’해왔다. 아니 이젠 단순한 버티기가 아닌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 이찬우,『북한 경제와 협동하자』, 시대의창, 2019. 5.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 경제의 성장에는 ‘돈주’라는 세력의 역할도 한몫하고 있다. 책의 저자 이찬우 박사는 ‘10만 달러 이상의 사금융자금을 현금으로 유통할 수 있는 사람’을 돈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의 외화 유통자금을 30억~50억 달러로 추산한다. 북한에는 현재 5천 명 정도의 돈주가 있다고 한다. 이중 80% 이상이 여성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북한 경제 연구자들은 돈주의 성장이 북한 사회주의 시스템에 시장경제를 침투시키고 확대하는 역할에만 주로 주목해왔다. 어떤 식으로든 북한 체제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돈주는 북한 체제에 ‘자본주의 황색 바람’을 불어넣는 첨병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은 조금 다르다. 물론 돈주가 기존 국가가 맡았던 경제 부분을 일부 대신 담당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돈주의 역할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돈주의 사회적 경제 관점에서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것은 ‘사회적 금융’ ‘주택자금 또는 생활자금 대출’ ‘보건, 위생, 환경보호 분야의 기부’ ‘취약계층 원호, 교육 분야 기부’, ‘지방기업 생산자금 대출’ ‘협동단체 생산자금 대출’ 등이다.

이처럼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북한의 ‘사회적 경제’ 부분이다. 그는 사회주의 경제에서 국가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안적 기능의 하나가 시장 기능이고, 또 하나가 바로 사회적 경제 기능이라 설명한다. 즉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혹은 바라는 대로 사유화로 가는 시장이 아니라 공유경제를 보완하는 사회적 경제가 북한 사회주의 경제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북한의 협동조합이다.

“북한에서 사회주의경제로의 초기 전환기에는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경제가 북한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헌법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이 국가와 사회협동단체로 규정된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 사회주의 경제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국가가 주민들에게 식량 등 소비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소위 ‘미공급’ 사태가 나타났다. 국영경리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인 소비품시장이 그 기능을 대체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흐름 속에서 협동조합이 다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본문 33~34쪽)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지금 북한경제를 바라보는 여러 분석가들의 평가, 즉 개인소유의 증가와 시장화에 초점을 맞추어, 시장을 통해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가치관 형성과 자본주의적 요소가 북한주민의 의식에 확산되고 있다고 보는 것에 대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는 현재 북한 경제의 안정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시장기능의 활성화와 동시에 시장화라는 단순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북한의 ‘사회적 경제’ 기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경제 기능은 사람중심경제다. ‘경제발전의 목적과 결과가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생활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공공재의 양과 질을 증진하여, 자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일정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주민들의 자발적이며 호혜적인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중시하는 경제 기능’이다.

때문에 북한의 사회적 경제에 대해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고, 남북 간의 경제협력 역시 북한의 자생력과 자구력을 이해하면서 쌍방적인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사구시, 온고지신 그리고 상생협동. 저자는 “실사구시의 태도를 가지고 온고지신의 힘으로 민족경제 상생협동의 길을 찾자”고 강조한다. 인구 5,200만의 남한과 2,560만의 북한이 서로 자신의 구태에 안주하지 말고 새롭고 더 혁신적인 방법을 찾는 일에 함께 협동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민족경제가 같이 균형발전하고 번영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다시 오늘을 돌아본다. 무려 102년 만의 대가뭄이라 한다. 2019년 북한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선 ‘핵을 포기하기 전까지 식량지원을 해선 안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 속에서 우리만 이탈해선 안 된다’는 등 무참한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참혹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문제마저 정치화하는 이들이 여전히 살아간다.

우리는 분단 이후 북한을 온전히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북한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은근히 반겼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도 도움의 손길을 주저했다. 물론 대부분 우리 국민들은 북한 주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돕고자 했지만, 다양한 변수가 이를 막기도 했다. 그 와중에 북한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운영되는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의 경제가 성장하고 동시에 우리도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서로를 알아야 협력할 수 있고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북한이 아닌 그들의 속마음을 알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협동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와는 짧다고 할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북한 전문가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분이다. 아니, 그는 단순히 한반도 문제 전문가가 아닌 동북아 전체를 관통하는 전문가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이유 없이 고개 숙이지 않는 그 기개를 늘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좋은 글과 강연으로 많은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과 북 모든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그 마음도 늘 변함없으시길.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평양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북미 대화가 공전하고 있는 지금, 북중 정상의 만남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2018년 평창에서 시작된 한반도 평화가 이렇게 맥없이 끝날 수는 없다. 주체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굴종이나 체념이 아닌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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