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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은 ‘배달하는 민족’이 아니다<칼럼>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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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23: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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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결정하는 주체는 언중(言衆)이다. 언중이란 같은 언어를 쓰는 사회 속의 대중을 뜻한다. 언중과 국민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다. 공교롭게도 우리사회는 언중과 국민 그리고 민족이 일치하는 흔치 않은 나라다.

언어란 생물과 같다. 언중에 의해 사어(死語)가 생기고 신생어도 나타난다. 말의 의미가 바뀌는 것도 그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 말의 사전적‧도덕적‧윤리적 가치는 차순위다. 그저 언중이 선택하여 선호하면 자리잡게 된다. 따라서 언중의 가치관이 언어의 질을 좌우한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근자에 들어 심심치 않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하는 광고 구호와 더불어, 음식(물건)배달의 의미를 풍기는 ’배달‘ 광고가 유행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이란 회사명으로 음식 배달 중개회사도 성업한다. 물론 여기서의 ’배달‘은 ’배달(配達, delivery)‘의 개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배다른[異腹] 민족‘이 배달민족입니까” 하는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우스운 듯,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근대에 들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용어로 ‘배달(倍達)’이라는 말만큼 그 영향력을 드러낸 단어도 없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말이 아니다. 예로부터 유구히 흘러온 것으로, 다만 소리로 전하여 온 것이 점차 문자로 가차되었다. 배달시대, 배달임금, 배달족, 배달겨레, 배달국, 배달강역, 배달민족, 배달얼, 배달족역사 등등,

우리민족과 관련한 여러 단어와 합성되면서 근대 이후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단어다. 특히 일제강점기 우리민족 정체성의 핵심어이자 독립투쟁을 위한 정신적 가치의 중심으로, 조국광복의 염원과 그 당위성을 한층 고무시켜준 단어가 배달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른다. 그것이 어떻게 흘러 왔고 어떠한 역동성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다.

근대 배달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시기는 대종교의 성립과 관련된다. 그 집단에 전해져오는 「단군교포명서」와 「단군교오대종지서」의 기록에서 구체화되었다. 단군조 때에 배달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과 함께, 후일 조선이라는 말도 배달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다. 즉 ‘배(倍)’는 ‘조부(祖父)’를 뜻하며 ‘달(達)‘은 ’광채 있는 물건(光輝之物)‘을 지칭한다는 내용으로, 배달의 의미는 곧 ’조광(祖光)‘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다만, 조광(祖光)이 조광(朝光)으로 나타남은, 중국의 다른 나라에 대한 멸시적 기록 관습이 그 원인임을 지적했다. 광(光)과 선(鮮)은 그 의미 새김으로는 ’빛남‘이라는 동일성으로 귀착된다. 따라서 배달이 곧 조광(祖光)이요 조선(朝鮮)이라는 연역이 가능해진다. 또한 단군조 지배자(儉神)의 성스러운 이름이 배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삼천단부를 칭하는 말이 배달이며, 그 강역 역시 배달강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배달이라는 용어는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첫째, 단군조로부터 연면히 이어져온 말이다. 둘째, 당 시대 임금의 명칭이며 나라 이름이기도 하였다. 셋째, 삼천단부나 조선과 같은 의미로도 쓰였다. 그러므로 배달은 단군조로부터 연면히 이어온 말로, 단군조 지배자의 명칭이자 국호이며 삼천단부나 조선 등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말로 갈무리할 수 있다.

배달은 단어의 의미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항일의식 확산의 중심어로도 자리 잡았다. 당시 국권이 무너진 민족사회에서 정체성 응집의 중요한 요소였던 동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동력원이었다. 이것이 배달의식이다. 이 의식은 계층과 이념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 표출되었다.

어문항쟁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 주시경이다. 그는 우리의 말과 글이 배달민족 우수성의 전형적 표상으로 확신한 인물이었다. 일제에 의해 '국어'란 말을 쓰지 못하게 되자 우리의 말과 글을 ‘배달말글’이라는 명명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1911년 학회의 이름을 '배달말글몯음'으로 고친 것도 그러한 의식의 발로였다.

배달의식의 고양은 일제강점기 역사항쟁에서도 한 몫을 한다. 『배달족역사』와 『배달족강역형세도』가 그 대표적인 흔적이다. 모두 대종교 인물들에 의해 저술되었다. 『배달족역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배달족교과서’로 엮어낸 것이다. 상고·중고·근고·근세역사로 구성하여, 소학생들의 역사인식 고양을 통한 배달민족의 독립의지를 한껏 고무시켰다. 또한 『배달족강역형세도』는 배달민족의 강역을 시대별 44장의 지도로 그려낸 역사지리서다. 특히 이 책은 신흥무관학교 교재로 사용되면서 독립군들에게 배달의식을 고무시킨 서적으로 유명하다.

배달의식의 확산은 이념까지도 넘어섰다. 1920년대 동북만주지역의 항일전선 총동원을 격려하는 노래가 눈에 띤다. 이 노래는 1930년대 사회주의진영에서도 <통일전선가>라는 제목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항일전선가(통일전선가)>라는 제목의 이 노래에는 “착취받고 억압받는 배달민족아/항일의 전선에 달려 나오라/다달았네 다달았네 우리나라의/독립의 활동시대 다달았네”라는 내용으로, 배달민족의식을 고무하고 있다.

종교의 벽도 배달의식보다는 높지 않았다. 비록 대종교 성립과 더불어 확산된 의식이었으나 기독교, 천도교를 아랑곳 않고 외쳐진 가치였다. 기독교의 이승만이 「어천절찬송사(1922년)」를 통해 “우리 황조는 거룩하시사 크시며 지혜로우시며 힘지시사 이를 쫓아 베푸시니 인류의 한배시며, 임검이시며, 스승이샷다. 허물며 그 핏줄을 이으며 그 가르침을 받아 온 우리 배달민족이리오”라고 경외한 글이 있다.

광복군들은 광복군가를 통해 이러한 의식을 더욱 확산시켰다. “장하도다 한배님 아들딸들은 배달겨레며/백두산 동해물과 한반도는 우리집일세”(<앞으로 행진곡>)라는 노래가 그 대표적 사례다. 더욱이 우리 독립군들이 목놓아 불렀을 다음 <애국가>(희산 김승학 선생 소장자료)에서는 배달족‧배달국을 향한 의식 고양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1절) 백두산하 삼천단부 한데 모여/한배님이 건국하신 우리나라 만세
(2절) 높고 둥근 백두산은 우리 민족 기상이며/맑고 깊은 천지물은 우리겨레 정신일세
(3절) 우랄산부터 대마도까지 수륙 수만리/우리의 선조들이 사르시던 보금자리라
(4절) 이 기상과 이 정신을 모두 합하여/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각 절 후렴) 무궁화 화려한 금수강산/배달민족 배달나라 기리 사랑하세

어디 이 뿐인가. 흑룡강변 오지(奧地)에 펼쳐졌던 배달촌, 내몽고 수원성(綏遠省) 포두(包頭)에 웅거했던 배달농장, 중국‧내몽고‧만주 지역 곳곳에 세워졌던 배달학교, 대종교계 독립운동가들이 조국광복을 넘어 꿈꾸었던 배달국이상향, 이밖에도 배달학회, 배달청년회, 잡지 『배달공론』 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것들이 배달의식을 통해 조국광복을 열망했던 흔적들이다.

한마디로 배달은 민족정체성의 소중한 가치 용어다. 배달은 상고로부터 우리 집단이 품어온 문화적 자부심이 응결된 말로, 근대격변기를 지탱하게 한 정체성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저항의 중심어로 자리하면서 민족의식 혹은 독립의식 고양의 동력원이었다. 중국의 ‘중화혼’과 일본의 ‘대화혼’에 견줄만한 우리의 정신적 구호로 ‘배달혼’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말도 언중이 버리면 사그라진다. 어의(語義)가 타락하고 소멸해 버리기 십상이다. 해방 이후 우리를 상징하는 고귀한 말들이 언중들의 무가치와 함께 찌그러들었다. ‘한’은 한(恨)많은 민족의 상징처럼 치부되고 ‘단군’은 동물원 곰새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민족’은 버려야 할 관념어로 몰락하는가 하면 ‘국학(國學)’은 폐쇄와 단절의 멍에를 쓰고 구축되었다. ‘홍익인간’‧‘팔관’‧‘선비’‧‘선랑’ 등과 같은 단어 역시 타락과 곡해 속에 묻혀진 단어들이다. 모두 우리의 정체성과 뗄 수 없는 용어들이란 점에서 가슴이 저민다.

영리사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배달(配達)을 구호로 외치는 사업체들 역시 영업 확장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할 것이다. 그 확장을 위해 배달이란 말의 형식을 빌려 ‘물건 배달’의 개념으로 광고한다 해서 법에 걸릴 것도 없다. 다만 무개념으로 살아가는 언중들의 뇌리 속에, 배달의 본질적 의미를 더더욱 파묻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는 지울 수 없다.

아무튼 그 뜻만 바로 새긴다면 ‘배달하는 민족’이건 ‘배다른 민족’이건 무엇이 문제랴. 오히려 이러한 가십(gossip)으로 힘들고 삭막한 세상에 작은 웃음을 던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더욱이 배달의 본 뜻을 통해 우리 사회에 화합을 배달하고, 분단 조국에 통일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면 얼마가 좋을까. 나아가 인류사회에 평화를 배달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라면 참으로 감격적일 것이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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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6-20 09:49:19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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