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조지 워싱턴 대학 시거센터 아시아연구소(The Sigur Center for Asian Studies)와 미 아태협의회(ACAPA, The American Council on Asian and Pacific Affairs) 공동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전략연구센터(Center for Strategic Studies) 소장인 전 해군제독 마이클 맥드빗(Michael McDevitt)이 `주한미군 위상의 점진적 변화(U.S. Forces in Korea: Status and Considerations Regarding Evolutionary Change)`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주제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이 학술회의는 `한반도: 화해와 통일로 가는 길(The Korean Peninsula: Paths to
Reconciliation and Reunification)`을 주제로 9월29일과 30일 이틀 동안 열렸다.)

한국에서의 군사 정세의 변화를 생각해볼 때 가장 핵심적인 가정은, 만약 그 변화가 북한의 기습전 위험을 결정적으로 감소시키는 것까지 포함할 경우, 남북한 양쪽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면 어떠한 정치적 변화가 있더라도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전략 상황에 커다란 영향을 주리라는 것이다.

본인은 학술회의와 여러 대화 자리에서 남북한 및 중국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미국은 아시아의 군사 정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남북한의 공존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미군이 사라질 경우 그 지역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상실을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이런 가정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고 있고, 그 때문에 한반도에서 어떤 결과가 빚어지더라고 미국의 영향력이 아시아에서 사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 전략 속의 주한미군

주한미군을 논할 때는 주한미군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필수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에서 보는 것이 향후 주한미군의 조건에 대해 논하는 생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난 10년 간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문제-이른바 `전진 배치(forward presence)`-는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안보 정책의 중심이었으며, 중심이 아니라 하더라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항상 이슈가 된 것은 두가지였다. 영구적으로 전진 배치를 해야 하느냐 하는 것과, 그래야 한다면 어떤 병력이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가 바로 미국의 지역 정책의 핵심이었고 동아시아 나라들과의 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었다.

전진 배치된 미군은 지역 안정군이자 제어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의 잠재적인 전쟁 가능성, 타이완 독립으로 야기될 수 있는 군사 분쟁, 남지나해의 영유권 분쟁 등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안보 불투명 지역 3곳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혼합된 다중 임무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동아시아 주둔 미군이다.

전진 배치된 병력은 나름대로 적절한 임무를 띄고 있다. 지역에서 발생할 모든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은 문제점들에 대처하기 위한 혼합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미군의 주요 요인들을 일별하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한국(육군)과 일본 오키나와(해병대)에 있는 동아시아 지상군의 대부분은 한국을 지향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해병대는 한국에서의 어떤 우발 사태에도 대처한다는 주요 임무 외에 일본 사세보에 있는 수륙양용 기동대(Amphibious Task Force)에 배치되어 지역 위기 대처 임무도 수행하게 된다.

요코수카에 있는 미 7함대의 기선과 비행단 역시 한국의 어떤 우발 사태에도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의 해상 조건 때문에 7함대의 고유한 기동력은 한반도 작전 위주라기보다는 지역 작전을 위한 것이다. 한국의 제7비행단과 일본의 제5비행단 등 동북아의 미 공군력 역시 한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 공군력 역시 고유의 기동력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에 기지를 둔 전략전투기들은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기동하고 있다.

미군은 한국에서의 전쟁 억제뿐만 아니라, 군 현대화를 추진중인 중국의 불확실성을 상쇄시키는 균형자의 역할과 언제든 무장을 하려는 일본을 원격 조종하는 방지책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지역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군의 존재를 환영하고 있다.

한편, 미군은 한국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책임도 지고 있기 때문에 행정과 지원 측면에서 융통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음이 주요한 범주들이다.

특수한 위기 시나리오에만 얽매여서는 안 되며, 동아시아 전체 지역을 상대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자국의 기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주둔국으로부터 주둔국 방어와 직접 관련이 없이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지역 어느 곳에서든 광범위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신속해야 한다. 이 신속성은 훈련 및 지휘권은 물론 군 자체가 어떤 성격을 띄고 있는가 하는 것과 짝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우발 사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군은 일본에도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키나와의 해군과 미 육군 특전단, 해병대 일부와 일부 공군력이 오늘날 `지역 안정`이라는 이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군사 현안: 기습 공격 또는 속전속결 공격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남한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열쇠는 두 가지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는, 침략을 즉각 중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미군과 한국군이 충분한 경고 시간을 가지고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미국에서 대규모의 공군과 지상군을 증강시키는 능력이다. 이 증강군은 전쟁을 재발한 북한에 가공할 응징을 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식` 제어의 핵심이다.

북한군은 비무장지대에 최근접해 있음으로 해서 공격을 탐지해낼 시간을 거의 주지 않고 바로 침공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어군이 준비를 할 경고 시간은 수시간이거나 기껏해야 몇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침공이나 공격의 위협을 군사적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비무장지대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물러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 충분히 뒤로 물러나 있게 되면 정보를 탐지해내는 요원들이 고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북한군의 침공 움직임과 준비 태세를 탐지해낼 수 있게 된다. 한국에 증강군을 보강하고 방어 태세를 갖출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바로 군사 능력 측면에서 `위협 감소`의 기본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다. 군 태세의 변화를 측정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이 접근법에는 평양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도 포함된다.

만약 서울과 워싱턴의 관리들이,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의도나 욕심이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 비무장지대로부터 북한군이 물러서기 이전이나 아니면 때를 같이 해 미군의 위상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1990년에 나온 국방부 최초의 동아시아 전략 보고서를 생각해보자. 이 문서는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위상 조정을 위한 계획의 윤곽을 그리고 있다. 이 조정안의 중심 개념은, 한국의 미 공군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미국으로부터의 증강 능력을 향상시키되 한국에서의 지상군 전투 병력은 감축시키는 것이다. 이 연구의 핵심 가정은 한국이 `자국 방어의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휘권의 변화

실직적인 주일미군의 변화도 야기시킬 주한미군의 변화는 동아시아의 모든 미군뿐만 아니라 한국 내 지휘 계통 변화도 촉진시키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지휘 구조는 연합사령부(CFC)로 알려진 장치를 통해 - 공식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연합(combined)을 통해 - 통합(integrated)되어 있다. 한미연합사의 지휘관은 미 육군 4성 장군으로, 한국군 및 미군 장교로 구성된 참모부의 수장이다. 이 구조는 유럽의 나토군과 유사하다.

이 통합된 지휘권의 배경에 깔려 있는 개념은 교리상 `단일 지휘권(unity of command)`을 행사하는 명령 체계이다. 이 단일 작전 지휘권은 모든 전투 참가 병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방식의 지휘 계통은 특히 방어 동맹군에 맞도록 설계된 것이며, 이 병력의 주 임무는 침공을 격퇴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만약 침공의 위협이 감소하고, 더불어 적군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적군의 위협 또한 뚜렷하지 않아 미군의 임무가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한반도 바깥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가 명확해지지 않을 경우, 통합된 CFC의 영구적인 지휘권 구조가 그때에도 먹힐 것인지는 의문이다.

미국 측에서는 그때에도 유용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지역 안정을 위해 한국의 통합 지휘권 구조 및 궁극적인 동북아 지휘권을 유지시키는 길밖에 없으며, 동북아 지역을 더욱 결속시키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군사 동맹체를 냉전의 `유산`으로 여겨 계속 반대하고 있으며, 어떤 식이 됐든 그런 형태의 지휘권 조정을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강한 반대에 부닥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감소되었을 때 한국군과 미군 양측을 통솔할 지휘권자를 미군 장교로 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CFC의 지휘권이 한국군 장군에게 이양될 경우 한국은 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국이라는 문제가 부차적으로 제기된다. 특히, 외국군 지휘관의 지휘를 맡는 미군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럴 경우, 간단하게 미군과 한국군 장교 모두를 한국의 CFC 지휘 계통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교묘하게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CFC는 하나의 기획사령부(planning headquarters)로 존속해 소속 참모와 시설들은 한국 방위와 관련된 우발 사태에만 전념하게 하는 것이다.

미군이 한국에 남아 지역 임무(한반도만이 아닌 동북아 지역: 역주)를 수행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1명의 주일미군 지휘관과 또 한 명의 별개의 주한미군 지휘관이 있는 현재의 스토브 파이프 식 지휘 계통은 수정이 가능하며, 그 결과 지역 안정을 책임지는 1명의 미군 장교가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미국식 용어를 빌리자면, 미 태평양사령부(CINCPAC)에 보고를 하는 하나의 하급 통합 지휘관(a sub-unified commander)인 셈이다.

대안도 있다. 현재의 스토브 파이프 식 지휘 계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각 지휘관은 합동기동대 지휘관(Joint Task Force commander)으로 바뀌어, 각 지휘관이 별도로 미 태평양사령부에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이런 배열을 하게 되면 한국 합동기동사령관(Commander Joint Task Force Korea)과 일본 합동기동사령관(Commander Joint Task Force Japan)이 생기게 된다.

주한 유엔군사령관(UNC)은 한국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또 하나의 주요 지휘관이다. 유엔사령관의 임무는 휴전 관리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일단 바뀌게 되면 UNC가 존속하기는 힘들어진다. UNC는 현재 유엔을 대신해 미국이 실질적인 대리인 노릇을 하고 있으며, 뉴욕의 유엔은 한국의 UNC를 가능하면 무시하고 싶어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유엔 권위의 재편성은 북한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 북한은 한국에 남아 있는 미군이 행동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도록 해 자신들이 안심할 수 있는 구도를 밀어붙이거나, 아니면 어떠한 형태든 유엔의 지속적인 개입을 모욕으로 여겨 철두철미하게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평화협정 체결 시 현재의 UNC는 존속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며, UNC를 계승할 구도가 분명히 오리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현재의 지휘 계통에 대한 여러 개의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다음의 세 가지 점이 분명해진다. 첫째는,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어떠한 지휘권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는 것, 둘째, 현재의 유엔사는 정치 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시킬 때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셋재, 어떤 구도가 형성되든 그때의 정치적 전략적 현실에 맞게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리라는 것 등이다.

결론

앞으로의 상황이 명료하게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간의 외교 기록을 살펴볼 때 한가지 분명한 점은 동아시아 지역의 모든 국가가 이웃과 관계를 개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주한미군을 고려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북한을 억제시킬 필요성이 있는 한, 동아시아 지역 미군의 전반적인 규모와 구성(육해공군 및 해병대 병력의 균형)에 대한 주요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상호 철수를 구체화시킬 평화협정과, 북한의 호전성을 감소시키고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신뢰구축 조치가 있어야만, 동아시아 미군의 역할과 임무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KISON200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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