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1명의 노인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 (아프리카 속담)


 노인들
 - 기형도 

 감당하기 벅찬 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지난해 초겨울 새벽에 서울 마포대교에서 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강에 투신했다고 한다. 물에 빠진 그는 약 5분 뒤 물속에서 휴대전화로 119에 구조요청을 했단다.

이때 119 상황실 접수요원은 ‘강에서 수영하면서 전화하는 걸 보니 대단하다’며 그의 구조요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거듭 구조를 요청하자 소방서와 수난구조대에 출동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

 ‘헬조선’을 떠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얼마나 참담한가! 얼마나 희비극적인가! 

 어찌하여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119 접수요원에게는 ‘장난 전화’로 들렸을까? 아마 그 접수 요원은 엄청나게 많은 장난 전화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같이 ‘강에서 수영하면서 전화하는 걸 보니 대단하다’며 장난을 쳤을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저기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아! 그들은 나를 깔깔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날’의 일을 악몽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0여 년 전 어느 가을의 토요일, 우리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는 텃밭에 갔다. 오는 길에 ㅇ 마트에 들렀다. 아내와 작은 아이는 장을 보러가고 나는 너무 피곤해서 마트 밖의 전철역 의자에 앉아 쉬기로 했다.

 의자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몸이 이상해졌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내에게 빨리 연락해야 해!’ 나는 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도움을 청했다. 입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핸드폰 좀 빌려 달라는 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사람들은 나를 힐긋거리며 아래 위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아, 그들에게 내가 노숙자로 보이나 보다!’ 텃밭에서 일하느라 헌 옷에 흙탕물이 여기저기 튀겨져 있고 아마 얼굴 표정은 핏기 없이 일그러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바지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간신히 꺼내어 손에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며 거듭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애걸했다. 돈을 줄 테니 핸드폰 좀 빌려달라는 내 행위가 그들에겐 나를 영락없이 노숙자로 보이게 했을 것이다.

 ‘아, 이러다 죽고 말겠구나!’ 나는 500원짜리 동전을 손에 꼭 쥐고 어지러워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 자세로 간신히 기다시피 걸어서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마침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막 전화를 끝내고 100원짜리 동전을 몇 개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500원짜리 동전을 그에게 주며 100원짜리 동전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힐끔 보더니 줄행랑을 쳤다.  
       
 ‘오!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 나는 애타는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100원짜리 동전들을 들고 전화하러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500원짜리 동전을 주며 100원짜리 동전을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선선히 500원짜리 동전을 받더니 100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주었다. 나는 너무나 고마워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거듭 고마움을 표하며 100원짜리 동전 세 개만 받았다.

 앉은 채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빨리 이리와!’ 그렇게 해서 그 날 나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우리는 ‘언어(言語)’로 세상을 본다. ‘강에서 수영하면서 전화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언어가 죽어가는 대학생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한 인간을 ‘노숙자’라는 언어로 보면 그의 모든 절박한 목소리는 애처롭게 구걸하는 목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언어를 넘어선 통찰력이 있었다. 아마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언어도단(言語道斷 언어 바깥의 경지에 있는 도道)’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을 ‘감당하기 벅찬 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라는 언어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라는 언어로 보지 말아야 한다.

 오랫동안 인류는 모계사회(母系社會)였다. 대모신(大母神)이 세상을 다스렸다. 할머니에게는 대모신의 피가 맥맥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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