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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공업: 무기 개발의 동력에서 경제 건설의 밑천으로<2019년 북한 신년사 분석과 전망 2> 변학문 연구위원
변학문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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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3  13: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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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에서 북측 신년사 분석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첫 번째는 장창준 연구위원두 번째는 변학문 연구위원이 그리고 세 번째는 강호제 소장 순서로 이어집니다. / 편집자 주

 

‘경제 건설에 기여하는 군수공업’을 언급한 신년사 
 
2019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군수공업 부문이 “경제 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전투적 호소를 심장으로 받아안고 여러 가지 농기계와 건설기계, 협동품들과 인민소비품들을 생산하여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추동”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군수공업 부문의 올해 과제로 ‘국방공업의 주체화, 현대화를 통한 국가 방위력 향상’과 함께 “경제 건설을 적극 지원”을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인민군/군대가 인민과 힘을 합쳐 경제 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기여했다’는 언급은 거의 해마다 있었다. 그러나 ‘국방공업’ 또는 ‘군수공업’이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가 나온 적은 없었다. 대신 국방/군수공업의 성과로 꼽힌 건 (당연하겠지만) ‘다양한 군사적 타격수단들을 개발•완성하여 혁명무력의 질적 강화에 크게 이바지’(2015), ‘국가 핵 무력 완성’(2018)처럼 핵과 미사일 등 무기 개발을 통한 국방력 강화였다. 국방/군수공업의 새해 과제도 마찬가지여서 그동안 항상 제시되었던 ‘무기 개발을 통한 국방력 강화’에 더해 ‘경제 건설 적극 지원’이 등장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 노선과 군수공업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 건설을 위한 군수공업의 역할이 언급된 이유는 북의 전략적 노선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북은 지난해 4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종결하고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결정하였다. 말 그대로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경제 발전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북은 같은 해 5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개최하여 ‘혁명 발전의 요구와 인민군대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데 기초하여 국가 방위 사업 전반의 개선을 위한 조직적 대책들을 토의 결정’하였다. 북의 매체들은 이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군대가 경제 건설에서도 주력군의 본분을 다하고 있음’을 치하하고 앞으로도 임무를 수행하리라는 기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세부적인 내용이 보도되지는 않았으나 이 회의에서 북이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맞게 군이 해야 할 조치들을 결정했음은 분명하다. 앞서 인용한 신년사의 “경제 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전투적 호소”가 바로 이를 의미할 것이다.   

북의 인민군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해 다양한무기를 생산하는  군수공장들과, 군인의 복지•후생(‘후방사업’)에 필요한 물품과 식량을 생산하는 공장과 농장을 보유하고 있다. 내각이 관할하는 기계•금속•화학 부문 등의 대형공장들도 대부분 내부에 군수물자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직장을 두고 있다. 북은 이러한 생산단위들이 보유한 인적, 물적, 기술적 역량을 경제 발전의 밑천으로 삼으려 한다. 이것이  비록 신년사에서는 2019년에 처음 등장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표방했던 ‘선군시대 경제 건설 노선’에 이미 들어 있던 내용이다. 따라서 신년사의 군수공업 관련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간단하게나마 이와 관련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 건설을 위한 국방공업’은 김정일 집권기에 등장한 생각

잘 알려진 대로 ‘선군시대’,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정일 집권기 북은 경제에서도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 경제 노선을 표방했다. 당시 북이 내세운 선군 경제 노선의 첫째 명분이자 목표는 당연히 ‘안보’였다. 국제적 고립과 미국의 위협이 극심해진 환경에서 자력으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방공업 발전을 가장 중시해야 하며, 금속•기계•화학공업 등 연관 공업 부문들도 국방공업 발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북은 2006년 1차 핵 시험,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 2차 핵 시험 등을 실시했고, 각종 미사일의 시험발사도 여러 번 진행했다. 

이와 함께 북이 내건 선군 경제 노선의 또 하나의 명분이 바로 ‘국방공업이 다른 공업 부문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를 현대 과학기술에 기초해 먼저 발전시킴으로써 향후 다른 경제 부문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북은 ‘국방 분야에서 최신 과학기술이 먼저 개발•도입된 다음 그 성과가 민수 부문에 파급’되는 것이 기술 발전의 시대적 추세이며, 이를 자신들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방공업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국 경제의 특수한 구조가 국방공업에 기초한 경제 발전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김일성 시대에 시작된 국방공업의 ‘비교우위’ 

북에서 국방공업의 비중이 급속하게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였다. 당시 북-소/중-소 관계 악화, 박정희의 쿠데타와 한미일 삼각동맹 현실화, 미국의 베트남전 확전과 핵/미사일의 남한 배치 증강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게 된 북은 1962년 12월 ‘경제와 국방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경제 발전에서 일부 제약을 받더라도 우선 국방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북은 병진노선 채택 당시 “보총이나 몇 자루 생산하는” 수준이었던 군수공업과 국방 과학기술을 단기간에 발전시키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늘렸다. 1960년대 말에는 전체 예산 중 국방비 비중이 30%를 넘기도 했다. 또한 북은 국방과학원과 국방대학을 설립하여 각각 대학과 중학교의 우수 졸업생들을 우선 배치하고 예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반대로 민간 경제/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자원 투입이 그만큼 줄어들었고, ‘자력갱생’을 강요받은 민간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병진노선 채택 이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할 때까지 북의 안보 환경은 1972년 일시적인 남북 대화 국면을 제외하면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따라서 국방 우선 기조도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국방 과학기술과 민간 과학기술, 군수공장과 민수공장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예컨대 1981년 김일성 주석은 ‘군수공장의 제품들이 높은 수준인 반면, 같은 시기에 건설한 다른 공장과 기업소들은 같은 원료와 자재를 가지고도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매몰 비용을 경제 건설의 종잣돈으로?

더욱 심각했던 문제는 1990년대 중반 당시 북의 국방 과학기술은 민간 부문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졌을 뿐, 북의 안보 우려를 해결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국방 과학기술 중시는 국가 경제가 거의 붕괴 상태였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결국 30년 넘게 국방에 우선 투입된 국가 자원은 국방공업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민간 경제 건설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한 매몰 비용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 경제 노선은 위와 같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보려는 시도였다. 40년 간 지속된 국방 우선 기조를 조금 더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그에 따라 더욱 커지게 될 국방공업/과학기술의 비교우위를 경제 건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이다.

경제 건설을 위해 국방공업을 먼저 발전시키겠다는 논리가 경제난 속에서도 국방에 대한 우선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핑계였다고 볼 수 있다. 필자도 2000년대 초 김정일 위원장을 포함한 북 지도부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2009년부터 국방공업의 성과를 민간 경제 발전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분명 드러나기 시작했다.  

CNC,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 이전’의 대표 사례

북은 2009년 4월 5일 인공위성 ‘광명성2호’ 발사 직후부터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컴퓨터 수치 제어) 기술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과 정밀기계기술을 결합한 CNC 공작기계는 장거리 로켓과 인공위성의 정밀 부품을 제작하는 데 필수적이다. 북은 자체 역량으로 개발한 CNC 기술이 선군 경제 노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최첨단을 돌파하는” 자국 과학기술 발전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북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강계뜨락또르종합공장, 압록강기계종합공장, 수풍베아링공장 등 주요 공장에 CNC에 기초한 생산체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도 2.8비날론련합기업소, 운산공구공장, 평양곡산공장, 룡성기계련합기업소, 금성뜨락또르공장 등 다양한 부문의 생산현장들에 CNC 설비가 확산되었다. 북은 이 해에 CNC 설비로 CNC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기계공업의 어머니공장”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을 건설했다.

2011년 북의 매체들은 경제 전 부문이 “경제의 현대화, CNC화를 앞장에서 이끌어나가는 국방공업의 위력”을 기초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도 CNC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이면서 새로운 CNC 기계를 개발하고, 이미 개발한 CNC 공작기계들의 계열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북은 이 공장 노동자, 과학자,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CNC 공업화에 이바지한 공을 치하하는 연회를 개최했다. 또한 이해 말부터 자신들이 이 공장을 필두로 하여 경제 전반을 지식기반 산업으로 빠르게 변화시키는 ‘새 세기 산업혁명’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후계자 김정은과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 이전 

북이 CNC를 강조하기 시작한 2009년은 ‘후계자 김정은’이 등장한 해이며, 따라서 후계자 김정은은 CNC를 필두로 한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 이전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북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도 ‘국방공업이 최첨단 과학기술을 적극 개발하면서 민수공업과 연계를 강화하여 경제 전반의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북이 2013년 3월 채택하여 5년 동안 유지한 경제-핵 병진노선의 명분도 논리상으로는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 이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북은 경제-핵 병진노선이 핵 억지력을 확보하여 최소 비용으로 안보를 강화하고 남는 재원을 경제 건설에 투입할 수 있게 해주는 노선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핵 억지력의 확보, 유지, 강화에 필수적이지 않은 군사기술들은 굳이 군대가 독점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김정은 시대의 북은 국방 과학기술을 활용한 경제 발전 시도를 김정일 집권기보다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무기 생산과 직결된 특정 기술이 경제 건설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여러 정황을 통해 북이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 경제 발전에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음은 알 수 있다. 

예컨대 북은 <1월18일기계종합공장>처럼 무기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자동차공업 등 경제 주요 부문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민간 공장보다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군수공장들의 생필품 생산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확대했다. 또한 인민군이 보유한 식품공장•농장•양묘장•양어장들을 높은 수준으로 현대화하고, 이를 민간 생산단위 현대화의 본보기로 삼고 있다. 군이 갖고 있던 군수공업에 대한 내각의 관할권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꾸준히 확대•강화했다.   

인민군 최고위직 교체와 군수공업의 민간 경제 투입 

2018년 5월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북은 인민군 서열 1~3위인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을 동시에 교체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결정에 대한 군부의 반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온건파를 임명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

필자는 이에 더해 ‘경제 건설에 국방공업/과학기술 활용 가속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신임 총정치국장 김수길은 인민군 중장이던 2014년 4월 평양시당 위원장에 임명되어 2018년 5월까지 직을 수행했는데, 그의 재임 중 평양시가 과학기술 중시 정책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평양 소재 공장과 농장의 통합생산체계 구축, 전국적인 과학기술보급망의 중심인 과학기술전당 건설과 과학기술보급실 확충, 초•중등•고등 과학기술 교육 강화를 위한 본보기 학교 육성, 과학자 우대정책의 상징인 미래과학자거리와 려명거리 건설 등이 김수길이 평양시를 총괄하고 있을 때 진행되었다. 

이처럼 현재 인민군 서열 1위는 과학기술 중시 정책의 집행 및 총괄 경험이 풍부하다. 서열 3위인 인민무력상 노광철은 이 인사 직전까지 군수공업을 총괄하는 ‘제2경제위원장’이었다고 알려져 있고, 따라서 북의 군수공업 현황을 아주 잘 알고 있을 만한 인사이다. 이 때문에 작년 5월의 인민군 수뇌부 인사에는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국방공업/과학기술을 경제 건설에 본격적으로 동원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다. 

‘평화’와 ‘경제’를 명확히 한 북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군수공업을 활용한 경제 건설,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 이전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김정일 시대에 등장한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구상에 그치지 않고 2009년 말 CNC 기술의 확산을 시작으로 조금씩 실행되었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더욱 활발해졌다.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 노선 채택, 과학기술 중시 정책과 군수공업에 정통한 인사의 군 수뇌부 임명, 올해 신년사의 내용 등을 볼 때 군수공업을 경제 건설에 활용하려는 북의 움직임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종전과 불가침만 약속하면 왜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대로 북은 오래 전부터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왔다. 이를 위해 북은 모든 역량을 경제 건설에 집중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자신들이 가진 가장 훌륭한 밑천인 군수공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2019년 신년사는 북이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데 주력해온 군수공업을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본격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즉, 자신들이 ‘평화’와 ‘경제’의 길을 선택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북의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될지, 그에 따라 북의 경제와 사회가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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