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북의 신년사가 발표되었다. 이번의 신년사 발표는 먼저 형식적인 면에서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연단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어가던 과거의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 많은 의원들 혹은 국민들 앞에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저 앞선 두 지도자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는 집무실(?)에서 쇼파에 편안히 앉아 설명하듯 읽어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이러한 연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김정은 위원장의 국정 장악에 대한 표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그간 김정은 시대가 보여준 북의 변화된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간 김정은 시대 북의 변화가 당을 중심으로 국가와 군 체제를 정비하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세계 속의 북을 만들려고 했던 노력이라고 본다면, 이번의 신년사 발표 장면도 그러한 연장선상의 하나라 할 것이다. 앞선 김일성-김정일 시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또 하나의 모습인 것이다.

북의 신년사는 한 해의 자신들의 정책 방향과 의지를 내외적으로 표명하는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번의 신년사는 2018년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그리고 여전히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미관계를 반영하여 내외의 높은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세밑에는 미국과 남에 친서를 전달하면서 여전한 한반도 평화와 협상의 의지를 밝힌 터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이번에 발표되는 신년사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마침내 1월 1일 오전 9시 북의 방송을 통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원고를 손에 들고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 관심을 끄는 장면이 있다면, 우리 방송에서 이를 여과없이 그대로 화면으로 담아 내보냈다는 점이다. 이모저모로 변화된 남북관계를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번의 신년사가 말하고 있는 바이다. 신년사는 대체로 지난 한 해의 평가, 올해의 주된 과업, 그리고 대남, 대외관계를 담고 있다. 이번에도 이러한 형식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2018년을 자신들의 ‘전략적 결단’에 의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역사적인 해’로 평가한 이후, 올해의 과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경제건설 분야에서는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가자’라는 총적 구호를 제시한 이후, 각 분야의 과업을 설명하고 있다.

자력갱생, 김정은 시대에 자강력 제일주의가 주창된 이후, 일관되게 자력갱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내부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은 과거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자력갱생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실리추구의 자력갱생으로 방향을 전환하였고, 따라서 북이 주장하는 자력갱생을 단지 내부의 자원 동원만을 위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자력갱생의 주장의 이면에는 강력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국면에서 내부의 자원을 더욱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또한, 경제건설총집중 노선으로의 전환 이후, 북이 정작 국가적인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건설을 통한 ‘인민생활 향상’이라 할 것이다. 이번의 신년사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한 농업, 수산업, 축산업 등의 분야에서의 성과를 독려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올해 북의 신년사에서 밝힌 경제분야의 핵심은 자력갱생과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건설의 활로를 열어 젖혀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번의 신년사가 주목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북이 어떻게 읽고 있으며, 어떠한 방향의 정책을 내놓는가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신년사는 지난해의 남북관계를 활로를 열어젖힌 시기로 규정하고, 올해에는 더욱 적극적인 남북관계의 협력 사업을 벌여나갈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군사분야의 합의서 이행 등을 평가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이행을 요구하는 한편, “북남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며 온 겨레가 북남관계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라고 한 대목은 올해의 남북관계 개선을 딛고 더 높은 수준으로의 협력과 교류를 실행할 것으로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사업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아무런 조건없이 재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 두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마치 ‘국제법’처럼 버티고 있는 대북제재를 풀어나가야 하며, 우리 정부의 또 다른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다행히 북이 제안하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이미 유엔의 대북제재 국면에서도 진행되었던 사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의 관계개선 및 협력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거쳐야 할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사업의 재개는 우리에게도 국제사회에 최소한의 대북제재 면제 혹은 완화를 요구할 수 있는 지점이며, 미국에게는 전반적인 대북제재의 틀(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까지의 지속적인 대북제재)을 크게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적 노력의 부담을 안기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이번 신년사의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일부 외신에는 ‘가시가 든 올리브 가지를 선물’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명,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화상대방이 서로의 고질적인 주장에서 대범하게 벗어나 호상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내놓고 올바른 협상자세와 문제해결 의지를 가지고 임한다면 반드시 서로에게 유익한 종착점에 가닿게 될 것”이라고 한 것처럼, 쌍방의 노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에 있다.

즉, 북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문제해결을 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이 그에 맞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서로에게 좋은 유익한 결과를 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위의 구절에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제안을 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신년사의 한 부분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라는 구절은 미국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의 지속적인 핵무기 생산을 부정하면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취한 조치들을 계속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북미간 교착의 원인이 되었던 신고 혹은 북한의 선 조치 등의 분야에서 더욱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을 수 있고,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아무런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혹은 기존과 동일한 자세를 취할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권정근 외무성 미국연구소 소장이 ‘병진노선’의 부활을 언급한 것과 유사한 맥락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주변국들이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국제사회가 한반도 평화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 북의 주장이었던 ‘종전선언’을 건너뛰고 곧바로 ‘평화체제’ 논의로 들어갈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남북관게 분야에서 남북의 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 및 이행을 통해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을 채택했다고 인정하고, 이의 발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의 이번 신년사는 한마디로 자력갱생과 경제건설의 집중이라는 내부적 사업에 대한 지속과 대외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와 이행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몇 가지 의미있는 사업들의 재개와 주장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엇이 문제일까?

이번의 신년사는 그 이면에 우리 정부에게 또 다시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의 관계 개선과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사업, 북미 협상과 서로의 상응조치를 촉구해야 하는 촉진자,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주변국과의 적극적인 외교 등 북이 노력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짐을 안게 되었다. 이미 우리 정부가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믿지만, 다시금 신들메를 고쳐매야 한다.

당장 북이 요구한 합동군사훈련의 중단과 전략자산 반입의 문제에서 미국과 협의를 이어나가야 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입장과 이것이 대북제재의 국제적인 틀과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도 고민해야 한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북미간 교착상태를 풀어가기 위한 촉진자이자 설계자로서의 역할도 다시금 강화해야 한다. 북미가 다시 마주 앉기 위해서는 서로가 교환해야 할 ‘상응조치’의 무게가 최소한 교환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면, 북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이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것이다.

지난 1년 여 동안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전환과 북미관계의 진척을 위해 여러모로 힘을 써왔다. 그 기간 동안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성과를 내었고, 그 결과 남북간에는 ‘사실상의 불가침’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진전을 만들어내었다. 전쟁없는 한반도에 한 발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북의 신년사가 발표된 지금 이 순간부터 또 다시 많은 숙제를 안게 되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남북의 공존, 북미간 적대관계 해소 등이 결국은 우리 삶의 평화를 만들어내고 더욱 번영하는 한반도를 위한 것이기에 주어진 숙제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기꺼이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북의 신년사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할 것이다. 또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가야 하는 것.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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