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마당, 우리 시대의 껍데기와 알맹이

앞에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은 바로 현실적인 요구에 맞는 역사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요구에 맞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현실적인 요구는 바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과제를 잘 보여 주는 시를 한 편 볼까요?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라고 하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는 사월도 알맹이만 남으라고 하고,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라고 합니다. 또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합니다.

사월은 4.19 민주혁명을 일컫는 것이고,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은 동학농민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4.19 민주혁명의 참된 정신은 `민주`이고, 동학농민운동의 참된 정신은 `반외세 반봉건`입니다. 이 시는 바로 이 정신들이 우리가 실현해야 할 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시대가 변한 만큼 반봉건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요. 봉건 세력에 반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대다수 민중을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다수 민중을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독점 자본일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재벌이겠지요. 독점 자본과 재벌은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만, 우리 현실에서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 시에서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으라고 합니다. 그것은 민족을 분열시키는 분단 세력은 사라지고 통일이 이루어지길 염원하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이 시에서는 우리 시대의 과제가 바로 `민주, 반독점, 반외세, 통일`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점점 더 많은 인간들이 정치적 자유를 얻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이스에서 민주주의가 꽃 피웠다고 하지만, 그 때 민주주의를 누린 사람들은 소수의 시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예들이 억압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20세기가 되기 전까지 근대 민주주의의 선구자격인 영국에서도 노동자계급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에게도 선거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민주`를 이루기 위해 많은 피와 땀을 흘려 왔습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군사독재정권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망령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그들의 망령이 우리를 사로잡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은 물러 갔다고 해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민주적이지 못한 많은 법과 제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주`는 여전히 중요한 우리 시대의 과제입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는 경제적인 불평등이 점점 사라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역사의 발전이 무엇인지를 경제학적으로 말할 때 경제적 잉여가 한층 더 많이 직접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상황도 조금이나마 개선되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멀리 가보면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선구자로서의 노동자들의 투쟁과 좀더 가까이는 87년 이후 줄기차게 투쟁해 온 노동자들의 피와 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송두리째 빼앗길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의 책임은 따로 있는데 그 피해는 항상 노동자에게 돌아갑니다. 경제 위기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재벌 총수들은 망해도 여전히 호화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평생을 몸바친 일터에서 쫓겨난 실직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여전히 일터를 못 잡고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벌을 살리기 위한 정책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반독점 또는 재벌을 반대하는 시대적 과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모든 민족이 외세에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발전해 간다고 하는 세계화도 사실 민족 자주가 없는 한 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세에 의해서 분단이 되었고, 그 피해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 모순이 쌓여 있는 우리 민족에게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를 싫어하는 자들,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들, 그리고 민족 자주를 싫어하는 자들, 다시 말해서 외세에 빌붙어 사는 자들이 바로 통일을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반민주, 재벌 옹호, 반민족, 반통일은 거의 예외 없이 일치합니다. 신동엽 시인은 이런 자들을 `껍데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맞서서 민주, 민족 자주, 통일 그리고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이 바로 알맹이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올바른 역사관은 바로 껍데기가 누군인지를 가려 내고, 그들의 잘못 된 점을 만천하에 밝혀 내며,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는 지혜를 역사 속에서 찾아내는, 알맹이들의 역사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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