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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북경에 세운 백두산 정계비!<서평> 전형배 21세기민족주의포럼 기획위원
전형배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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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6  17: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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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평양에서 발행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가 이덕일의 역해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로 도서출판 말에서 57년 만에 재발행됐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말]

남쪽에서 57년 만에 발간된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리지린 지음/이덕일 역해, 도서출판 말 발행)는 내게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1958년 43세의 원숙한 학자 리지린은 단기필마로 누천년 지속되어 온 대국주의의 화신 중국의 한복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중국 고사변학파의 대표학자라 할 고힐강 교수와 한판 승부를 벌였다. 명목은 박사학위를 놓고 벌이는 것이지만, 그 내용인즉슨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동아시아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치열한 논전이었다. 과연 우리 역사 상 옛 조선의 지리와 국경은 어떠하며, 어떤 모습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곧 중국민족과 우리민족의 평화와 전쟁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였다.

리지린은 구체적으로 수많은 사료와 유물을 토대로, 옛 조선은 적어도 BC12세기 이전부터 큰 세력의 국가체제를 이뤘으며, BC5세기 이래 지금의 북경을 포함한 난하 일대까지도 옛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진개의 침략(BC300년경으로 추정), 위만의 쿠데타(BC194년), 한 유철(무제)의 침략(BC108년) 등 일련의 사태가 벌어진 뒤에야 지금의 대릉하까지 물러났음을 확인했다.

   
▲ 리지린은 수많은 사료와 유물을 토대로 옛 조선은 적어도 BC12세기 이전부터 큰 세력의 국가체제를 이뤘으며, BC5세기 이래 지금의 북경을 포함한 난하 일대까지도 옛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했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말]
   
▲ 많은 유물 중 무기(위)와 무덤(아래)의 분포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말]

고힐강 교수는 논문 심사서에 “리지린이 고대 조선족이 현재 중국 영토에 광범위하게 존재했고 그 중심을 요서와 요동 일대라고 주장”했다고 서술하며, “객관적 연구를 표방했으나 민족주의적 속박에 사로잡혔다”고 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리지린의 학문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료와 역대 학자들의 연구결과까지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과학과 이성’의 주장 앞에, 지금의 북경까지도 옛 조선의 품 안에 있었다는 논문을 그는 결국 승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기에 “오늘의 시험은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다. 국제적인 우호관계를 위해서 그 결점을 지적하지 않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써넣었다. 이것은 마치 안시성에 쳐들어왔던(645년, 고구려 보장 4년) 이세민(당 태종)이 사나운 고구려인들에게 철저히 패배당하고 마침내 화살에 맞아 눈까지 꿰이고 만 사실을 호도하며 “그대(성주 양만춘)가 성을 잘 지키고 임금에 충성하는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00필을 준다”라고 해놓았던 것과 진배없는 군더더기말이다. 한마디로 리지린의 논문은 북경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쾌거이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로 ‘낙랑군재평양설’ 종식!

이 책과 관련해 몇 가지 쟁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먼저 북한 쪽 사정이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남북한 모두 해방을 맞이했다. 식민지 시기 강도일본은 우리민족에게 ‘일본인의 눈으로 보는 조선사’를 강요했다. 그들은 우리민족의 시간을 잘라내고, 공간을 축소하고, 민족을 분열시켰다.

무슨 소리냐? 시간적으로는 단군을 허구의 인물로 만들어 옛 조선의 역사를 신화화해 버리고, 공간적으로는 반도에 가두어두고(한반도 안에 한나라의 4군이 들어섰고,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가라가 설치된 후 한국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 인간적으로는 온 겨레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책동을 부렸다. 당연히 남북한 모두 강도일본의 반도 타율성론을 극복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낙랑군의 위치 문제가 가장 첨예했다. 왜냐하면 중국민족과 우리민족 사이의 최대 격전지였던 낙랑군의 위치만 제대로 잡히면, 당시의 역사적 실체가 드러나는 ‘매듭 중의 매듭’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남한 사회는 아직도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는 설(樂浪在平壤說)을 정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의 리지린은 1961년8월~9월 평양에서 개최된 ‘고조선의 생산력과 국가형성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해, 북경대에서 통과된 박사학위 논문의 성과를 제시했다. 이로 말미암아 북한에서는 ‘낙량재평양설’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와중인 1962년에 이 책은 정식으로 북한 땅에서 출간된다. 책을 일람하면 바로 알아보겠지만, 리지린의 연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내에서 발굴된 여러 고고학적 유물까지도 섭렵했다.

북한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임나=가야설’까지도 폐기시켜, 역사에 관한 한 자주적인 입장에 서려고 한 태도가 한층 강화되었다. 아마도 친일 부역 혹은 반역의 무리에 대해 철퇴를 가하고자 한 분명한 입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가 대국주의에 물든 중국 학자나 침략적 제국주의에 광분하는 일본 학자 들에 대해 학문적, 역사적 단죄를 한 것이라고 본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 위대한 저작’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리지린의 연구는 맥맥한 역사적 흐름에서 봐야

이 책에는 눈여겨 볼 또 하나의 맥락이 있다. 그것은 단재 신채호라는 위대한 역사가의 존재이다. 일찍이 단재는 ‘진개(秦開)’라는 연나라 장수에 주목하며, 그가 침략한 동호(東胡)가 옛 조선임을 갈파했으며, 한4군이 반도내에 있었다는 설을 전면 부정했다. 우리민족의 활동 무대는 압록강 이남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며, ‘크지도 작지도 않아 임금노릇하기에 딱 알맞다’는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의 위축된 섬나라 사고방식을 비판했다.

만일 단재가 제대로 시대를 얻었다면 중국의 내로라하는 학자들 모두 입을 벌린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그가 쓴 『조선상고사』나 『조선사연구초』 등은 그저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그는 5천년 우리역사 전체를 놓고 포효했던 것이다. 일본은 그저 지나가는 강물에 지나지 않는다.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끝내 순국한 단재의 학문적 역할은 후대로 넘어갔다.

어떤 학자가 내게 말하길 “가끔 단재 신채호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차라리 역사에 관한 글을 더 많이 남겼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단재가 아니겠지?”라고 했다. 맞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앎과 삶이 하나가 된 단재의 글은 반드시 이 땅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리지린은 이런 단재의 사상과 시대적 역할을 계승했다. 곧 단재가 있었기에 리지린이 존재했고, 리지린이 존재했기에 훗날 러시아의 U.M.부틴이 태어났고 한국의 윤내현이 태어났다(두 사람 모두 리지린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연구에 매진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일군의 학자들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거대한 뿌리’에서 태동한 새로운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식함이 보다 역동적이지 않을까. 바위를 뚫는, 혹은 진창에 휘감긴 그 뿌리를 보라. 단단하다고 기죽지 않으며 더럽다고 회피하지 않는다. 그 모두를 휘감아내며 생명을 밀어 올린다.

인용된 원전 사료에 번역과 해제 담아

이번에 출간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인용된 사료에 번역을 달고, 필요한 곳에 해제를 달았다. 실로 재탄생이라 할 만하다. 20여년 전인가, 북한에서 나온 이 책의 복제본이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다. 그때 반가운 마음에 책을 구했지만, 낯선 인명과 지명을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은 장정도 산뜻하거니와, 번역문이 읽기 쉽고, 간략한 해제는 역사적 안목을 키워준다.

12세기에 『삼국사기』를 찬술한 김부식이 천하의 온갖 자료들을 구해다 놓고는 행여 남들이 볼새라 꼭꼼 숨겨 놓고는 자기 혼자만 보았다고 한다. 이건 학문의 독점 폐해다. 지금은 그 소중한 자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우리민족은 제대로 된 우리역사를 우리 손으로 남기지 못한 패착을 빚고 말았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민족의 통사가 겨우 천 년 전의 『삼국사기』만으로 남아 있다니,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아쉽기 짝이 없다. 역사를 뭇 사람들에게 건네주지 않고, 자신만 아는 ‘비장의 레시피’로 삼고자 했던 못난 성품에서 생겨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750쪽이 넘는 이 책을 다 소화하여 읽기란 버거워 그저 활자를 좇아가기 바빴다고 해야 하겠다. 그나마 나같은 사람도 읽어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시비판별을 상아탑에 갇힌 학자들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눈뜬 시민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 우리민족의 저력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이런 작업이 쌍방향 소통으로 이어져, 학자와 시민 간의 협력 작업이 이뤄지길 소망해본다.

중국에선 왕조가 바뀔 때마다 정통 사서를 다시 만들었다는데, 어찌하여 우리민족은 사대주의의 허물을 벗지 못한 『삼국사기』를 재편찬하지 않는 것일까? 고구려의 멸망을 서술하면서 “거대한 중화대국에 대들다가 망했으니 이제라도 늦었지만 다행이다”라는 취지로 적어놓은 책을 어찌 우리민족의 정사(正史)라며 후인들에게 내민다는 말인가?

옳은 것은 살리고 그른 것은 없애며, 누락된 중요한 사실은 보태며 터무니없는 망발은 거두어야 한다. 나는 리지린의 이 책을 계기로 이런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고대해본다.

기원전5~2세기의 대륙 고조선 재조명

리지린이 다룬 역사무대는 대략 BC 5세기부터 BC 2세기 초(BC400~BC100년)까지의 기간이다. 당시 유라시아 동부 지역은 크게 흉노 제국, 한 제국, 옛 조선 제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유방(한 고조)이 중국 전역을 제압한 전후의 시기(BC202년)부터 100여년간 흉노가 군사적 패권을 장악하면서, 한나라는 지속적으로 흉노에 수모를 당한다.

그러다 유철(한 무제, 재위 BC141~87년)이 등장하면서 현상타파를 위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고, 반면 그 시기에 옛 조선 제국은 고난에 찬 시기를 맞이한다. 건국 100여년을 맞이한 한나라로선 국가재정 및 인심은 흉흉해졌지만, 일단 흉노 패권체제를 뒤흔들어 새로운 판을 짜는 데 비교적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옛 조선은, 앞서 언급한 세 차례의 전화(戰禍)를 겪어야 했는데, 곧 진개전역, 위만침탈, 한과 위씨조선의 전쟁(이른바 한사군전역)이었다. 그 무대는 대략 오늘날의 산서성 태원으로부터 하북성의 영평부 및 창려현 일대까지였다. 결국 옛 조선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비껴가지 못해 넓은 영토를 상실한다. 리지린의 추정에 따르면, 오늘날 요하의 동편에 소재한 개평현에 수도를 둔 상태로 위축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지역을 무대로 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 20년(AD37년)에 “낙랑을 침습하여 멸망”시키고, 모본 2년(AD49년)에는 “(고구려의) 왕이 장수를 보내 한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습”하며, 다시 태조 3년(AD55년)에는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략을 방비”했다는 기록이 잇달아 나온다.

이로써 보면 이 지역이 한나라 침략 이후에도 100년이 넘도록 중국민족과 우리민족의 처절한 항쟁지였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곧 흉노의 힘이 주춤해지면서, 거침없이 성장한 중국과 기력을 회복해가는 옛 조선의 대결은 훗날 수.당 대 구고려의 대결로까지, 위만 때부터 9백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항쟁은 좁게 보면 황하 이동의 싸움판이요, 넓게 보면 유라시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민족과 우리민족이 충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남쪽에서 재탄생한『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왼쪽)와 2010년부터 북한이 출간 중에 있는 총38권으로 구성된 역사 시리즈물 『조선단대사』 중 고조선사가 나란히 놓여있다. [사진제공 - 도서출판 말]

역사는 일진일퇴한다. 하루살이가 춘하추동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옛 조선의 일시적 패퇴라는 사태를 견강부회해 우리민족을 압록 이남의 유사 섬나라 안으로 가두는 것은 온당치 않다. 2천 2,3백년 전에 발생한 파란은 그 전에도 있었고, 그 후로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려는 노력을 ‘상상의 공동체’요 ‘침략적인 민족주의’라고 비판하곤 한다. 물론 최근의 학문적 성과로는 ‘용감하게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 한 무리가 유라시아를 거쳐 아메리카로 퍼짐으로써 온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언젠가 모든 인류가 한 뿌리에서 나왔고, 그래서 평등하며, 공동의 평화를 위해 큰 걸음을 실제로 내디딜지도 모른다. 실로 70억 인류 누구나가 시대의 주인 되는 평등한 세상을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각 인류의 생존은 힘겨운 현실이며, 대략은 민족 단위로 그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우리는 세계에서 최강의 민족주의라 할 중국의 중화주의와 지칠 줄 모르는 일본의 황국사관을 대적해야 한다. 중국은 호모 사피엔스 공동조상설을 부인하며 ‘중국원인설’(中國原人說)을 주장하고,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 정통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우리를 압박하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우리의 ‘아이덴티티(주체성)’를 바로세우지 못하고,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되면, 필시 전세계 곳곳의 약소민족처럼 험한 핍박을 받거나 소멸되고 말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시간, 공간, 인간의 시야를 한껏 틔워줄 역사적 노력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그 연구결과를 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런 성과물에는 필연적으로 이설(異說)이 따르게 마련이며, 경우에 따라선 다시금 패러다임의 개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학문뿐 아니라, 모든 역사에서 필연이다. 달리 말해 그 성과물을 창조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못난 후학이요 못난 후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면에서 리지린의 고조선사는 위대한 성취지만, 필시 극복될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본다.

민족주의 대국들 사이에서 치밀한 생존전략 필요

이 책을 일독하며 뜬금없이 ‘독도’ 생각이 났다. 우리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도는 결코 빼앗겨선 안 될 소중한 섬이다. 다만 독도는 누구의 땅이라고 정해져 있지 않다. 힘있는 집단이 오래도록 차지하고 살아온 증거가 있는 한에서만 소유를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당사자 혹은 관전자 들이 내놓으라 하는 ‘역사적 증거’이다.

보편적으로 한 민족 혹은 국가의 토지 관념은 일관돼야 한다. 즉 자기 집단이 역사적으로 오래도록 살아왔던, 그리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는 땅에 대해 철두철미한 관점을 지녀야 한다. 얼마 전 중국산 인삼을 들여와 파는 어느 조선족에게서 “중국에선 흙 묻은 인삼은 반출허가를 안 해준다. 왜냐면 흙은 소중한 중국의 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씻은 것만 가져온다”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중국은 토지(영토)에 대해 이렇게까지 철저한가 싶어서였다. 중국이 타이완이나 댜오위타오(일본명 센카쿠 제도), 남사군도 등에 보이는 집착은 굉장하다. 거기에 덧붙여 서남공정을 통해 티벳의 역사를,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옛 역사를 다 중국 역사에 붙이려 한다.

일본 또한 홋카이도 정복, 오키나와 합병 등을 이룬 뒤, 청일전쟁 뒤 차지한 센카쿠 제도를 지키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만일 중국에 티벳과 만주와 타이완을 제외한 ‘중국전도’를 유통시킨다고 하면, 공안당국이 가만 있을까? 일본에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독립시키고, 센카쿠 제도를 중국에 반환하라면 얼씨구나 할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텔레비전의 방송을 통해 남한 땅만을 그려놓은 ‘전국지도’를 공공연하게 화면에 송출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의 내용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그 이전에 민족과 통일에 대한 관점이 부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남북한으로 나뉜 한민족의 정치적 영토는 압록강 이남으로 국한되었을지 모르나, 수천년 역사적 영토는 결코 그렇지 않다. 『맨얼굴의 중국사』를 저술한 타이완의 저명한 역사가 백양(柏陽)은 “만주족이 중국을 차지했다. 그들은 중국에 만주라는 땅을 혼수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하며, 만주족 지배라는 굴종을 견뎌내고 비로소 중국이 만주를 차지했다고 평가했다. 그게 겨우 10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가끔 “중국이 동북공정을 수행하는 까닭은 북한 붕괴 시 북한을 차지하기 위한 역사적 명분을 쌓기 위해서다”라며 기염을 토하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중국이나 일본이 대격변을 치르는 상황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보지 못하는가?

혹시 우리나라의 일부 학자들이 총론으로는 독도 수호에 앞장선다면서도, 각론으로는 지도마다 독도를 빼놓는 행동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입으로는 식민사관과 사대사관을 극복하자며 거품을 물지만, 내면적으로는 우리민족으로선 용도폐기해야 할 ‘한사군재평양설’이나 ‘임나일본부설’ 따위에 목매고 있지는 않은가? 오히려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룡처럼 목숨을 걸고 지켜내려 한 역사의 ‘그 이채로운 보물들’을 파묻어 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섬나라 의식을 극복하고 세계를 꿈꿔야 한다

우리 민족의 머리 위에 마치 유리장막처럼 ‘압록강 이남 한민족설’이 놓여 있는 것은 비극이다. 그리고 이 비극은 근세에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공작이 끼어든 측면도 있지만, 우리민족 스스로가 ‘내재화한 잘못’이 큼을 인식해야 한다. 사대적 입장에서 우리역사를 쓴 김부식이나, 진보적이었지만 우리의 역사적 영토를 압록강 이남으로 규정한 정약용 모두 우리의 선인(先人)들이다.

우리는 선인들이 남긴 무수한 역사적 성과물을 창조적으로 도약시킬 책임이 있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밖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바로잡고, 안으로는 우리 안의 위축된 사고방식을 재검토하라 요구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대의 주역의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한번쯤 이 책에서 그가 무슨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눈길을 돌려봐 주었으면 한다. 분명 민족의 기원과 내력,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특별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수정, 29일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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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8-10-29 12:17:25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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