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제관계에서 갖는 원칙은 제국주의 침략세력에는 맞서고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와는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도 언급되어 있다.

선린우호관계를 다른 말로 바꾸면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이다. 그런데 북한에 [평화적공존]이라는 용어가 있기는 하지만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더라도 외국과의 관계용어로서 풀어서 쓰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는 평화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남한에서는 남북관계에도 평화공존 용어를 쓰고 있다.

북한이 평화공존 용어를 잘 쓰지 않는데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평화공존론의 첫 등장은 아시아였다. 시작은 1954년에 중국의 주은래 수상이 인도 네루 수상, 버마의 우 누 수상과 함께 선언한 평화공존 5원칙이었다. 그 내용은 ①주권과 영토의 상호존중, ②상호불가침, ③상호내정불간섭, ④호혜평등, ⑤평화공존 이었다.

영미식의 국제개입에 반대하는 이 평화공존론은 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평화 공존·비동맹·반식민주의·민족자결주의를 중심으로 한 [평화의 10원칙]으로 이어졌다. 2008년에 발효된 동남아시아연합의 아세안헌장에도 평화공존 5원칙이 반영되어 아세안방식(ASEAN Way)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55년 당시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평화공존론=친북사상으로 비난하고 평화공존은 공산주의가 사라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1992년 한중수교 공동성명에 평화공존 5원칙 내용이 명기되어 한국 정부도 평화공존을 외교의 원칙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 일각엔 이승만식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북한은 선린우호의 외교원칙으로서 평화공존 5원칙을 지지하고 이에 따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하면서, 1955년 2월 25일 남일 외무상의 성명을 통해 “상이한 사회제도를 가진 모든 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원칙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와 우호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모든 국가와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친북한계 재일동포 조직도 [조련(재일조선인연맹, 1945년 결성, 49년 해산명령)] 이후 설립한 [민전]이 당시 폭력노선경향을 띤 일본공산당의 외곽단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내부정리를 거쳐 55년에 해산하고 일본내 해외동포조직으로서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 새로 결성된 바도 있다.

일본에서 총련은 조직 목적에서도 반국가사회단체가 아니다. 북한에게 일본은 현실의 제국주의세력이 아니다. 일본이 북한에 대해 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우호적이 된다면 평화공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본이 미일동맹을 통해 북한에 대해 침략을 다시 일으킨다면 반제국주의 투쟁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56년에 당시 쏘련의 당서기장이었던 후르시쵸프가 또하나의 [평화공존]을 제기하였는데 이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적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힘의 균형상태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중국은 반제국주의 입장에서 후르시쵸프의 평화공존론을 바로 비난하였지만, 후르시쵸프로서는 미국과 핵전쟁을 하지 않고 미국과 평화공존을 통해 국방비를 줄임으로써 경제에 집중하자는 생각이었다. 경제는 중공업보다는 소비재생산을 중시하였는데, 후루시쵸프의 이러한 정책은 6.25 전쟁과 전후 복구 경제건설에 대한 지원영향력을 배경으로 북한에 대해 압력으로 나타났다.

쏘련은 당시 북한내 소련파인 박영빈(노동당 조직부장), 최종학(인민군 총정치국장) 등을 통해 반미 구호를 없애고자 하였다. 이들은 바로 숙청되었는데 당시 김일성 수상은 미제국주의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기본 장애물로 규정하고, 미제국주의를 축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북한은 1962년에는 쏘련 중심의 사회주의 국제분업체계인 코메콘(COMECON) 으로 모든 사회주의국가경제를 통합하려는 쏘련의 요구를 대국주의라고 거부하였다. 결국 미국 제국주의도 쏘련 대국주의도 반대한다는 북한은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 독자 노선을 추구한다.

주체사상은 조선(한)민족의 역사와 전통, 문화 등 민족자체의 것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타나, 독립운동에서 항일빨치산의 역할이 중심이 되었다. 북한은 평화공존이 쏘련의 [평화공존]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인해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필자는 2018년에 이루어지고 있는 북미간 교섭이 후루시쵸프식 [평화공존] 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북한이 만든 핵을 비핵화한다고 약속하고 미제국주의 용어와 반미구호가 안보이고 핵경제병진노선이 경제집중노선으로 변화한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반제투쟁은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이다.

북한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루시쵸프식 평화공존론은 현실의 제국주의와 약소국간의 모순을 무시하고 미쏘간의 힘의 균형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북한이 보기에는 대국주의이다. 북미 간에는 힘의 비대칭이 있고 2017년에야 핵무력을 완성해 가까스로 균형관계에 다가갔다. 그러나 미국이 국제사회를 움직여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경제적 압박을 강화한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현실에서 반미제국주의를 경직되게 적용하면 전쟁의 참화를 다시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반북정책 폐기를 서로 동시에 실시하는 것으로 우호적이 되는 미국과 평화공존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자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북한의 대답은 사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선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respect each other’s sovereignty), 평화적으로 공존하며(exist peacefully together) 쌍무적 정책들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하였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끝나 힘의 비대칭 상태를 이어가는 것이 유리한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드는 것이 유리한지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북한이 인식하는 제국주의적 태도를 버릴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이 미국에 대해 과거보다 더 유연해졌다는 점이 큰 변화이다. 북한이 먼저 한발 앞서 양보하면 그에 따라 미국이 양보하는 형태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교환하게 되면 관계를 정상화하고 선린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유연해졌다. 이렇게 북한이 유연해진 원인을 미국은 제재가 통해서라고 하고 북한은 핵을 가져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제는 미국이 유연해질 차례다.

미국이 유연해지면 일본도 다른 나라도 북한에 대해 유연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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