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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이다<간서치의 둔한 서평(127)> 명진 스님의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간서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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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3  09: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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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자랑삼아 밝힌 바 있거니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 복은 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이는 정치인을 가장한 모리배들이나, 조폭들이 말하는 종류의 그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도, 존재 그 자체로 크나큰 위안과 용기를 주는 벗들이 있고, 삶 그 자체로 조용히 나를 깨우치는 죽비 같은 분들이 계시다. 정작 그런 이들이 곁에 있음에도, 여전히 되먹지 못하게 살아가는 내가 문제일 뿐이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벗들 중에는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 즉 내 직업의 변천사를 이야기하며, 그동안 사람 복이 많았는지는 몰라도 일복은 별로 없었던 것 아니냐고 평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 박봉이거나 꽤 많은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어떤 직업이 안 그렇겠냐만. 참고로 2003년 내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괜찮은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때 난 파릇파릇했다. 지금보다 순수했다는 말이다. 밤을 꼬박 새워 마감을 끝내도, 새벽녘 라면 한 그릇과 소주 한 잔에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돈보다 소중하고 체면이나 격식보다 중요한 것들이 지금보다 몇 배는 많았다. 때문에 풍족했다. 돌아보면 그때보다 지금 몇 배는 가진 것들이 많을 텐데, 그때 내가 더 여유롭고 풍족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스승님이나 선배들에게는 혼쭐이 날 말이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절실히 느낀다. 이젠 철야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글도 오래 집중해서 지어내기 힘들다. 아니,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최근(이라 말하고 벌써 일 년이 넘은 것 같다고 느낀다)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사람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즐거움으로 써내려갔던 서평마저 이렇게 쉽지 않다. 새삼 오랫동안 변치 않는 선배들이 그저 대단할 뿐이다.

   
▲ 명진,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다산초당, 2018. 5.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08년 즈음부터 2013년 초까지 ‘남북, 해외동포가 함께 만드는 통일 전문지’ 《민족21》에서 일을 하며 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당시 발행인이 바로 명진 스님이다. 당시 스님은 강남 노른자 땅에 위치한 봉은사의 주지로 계셨다. 마음먹기에 따라 엄청난 권력과 부를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지금은 비록 조계종 직할 사찰로 넘어갔지만, 봉은사 주지는 여전히 막강한 자리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처음으로 사찰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했고, 주지에게 주어지는 비싼 차량을 팔아 어려운 이웃돕기에 사용했다. 쓸데없이 이 명목 저 명목 대며 불자들에게 돈을 삥땅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정의와 정도를 지키기 위해 권력과 싸웠다. 당시 스님의 별명은 좌파 스님, 깡패 스님이었다. 곁에서 지켜 본 결과, 아주 틀린 별명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스님은 절 앞에 이렇게 써 붙이셨다. “불의한 권력 검찰은 사찰의 출입을 금합니다.”

스님은 바른 말을 하신다. 성직자가 바른 말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의 종교계를 보면, 쉽지 않은 것임을 아실 것이다. 지금 우리 종교는 민중을 걱정하고 위로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중이 종교를 걱정하는 판이다. 어떤 분의 말처럼 “세습, 도박, 성추행, 사기 같은 말이 종교와 동급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이명박 정권이 비밀리에 스님을 사찰한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 역시 스님을 겁박하기 일쑤였다. 스님이 봉은사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가신 후에도 현실 권력은 스님은 두려워했고, 때문에 경계했다. 하지만 스님은 거리낌이 없었다. 스님은 그렇게 타고 나신 분이었다. 스님의 첫 저서인 《스님은 사춘기》를 보면 스님의 살아온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오직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이가 바로 명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명박 정권의 명백한 언론 탄압으로 《민족21》이 정간한 후(나중에 결국 폐간되었다) 나는 다른 직장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살고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분들은 아실 테고, 알보다 작으신 분들은 모르실테다. 암튼 나의 인생을 두고 보자면 크게 벗어난 밥벌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더 이상 큰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온갖 모리배와 모사꾼들이 차고 넘친다. 사명감과 역사의식으로 똘똘 뭉친 상사나, 지극히 착하디착한 후배들은 물론 있지만, 진정 존경하고픈, 따르고픈, 그리고 이 어른을 위해서는 한 번 크게 사고를 쳐도 후회 없겠다는 분은 계시지 않는다. 동지도 간데없다. 때문에 난 여전히 명진이 그립다.

세상은 분명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당장 방아쇠를 당겨야 할 시대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평화가 곁에 있고, 조금씩 정의도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불의는 언제나 정의보다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한없이 나약할 뿐이다. 더러운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저 그 더러운 똥이 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똥이라면 귀한 거름으로 쓸 수나 있지만, 인간 자체가 더럽고 극악하다면 이는 재앙일 뿐이다.

이 책은 스님의 깊은 성찰이 다시 한 번 우리 마음 속 파문을 일으키게 만든다. 뇌물을 받은 박근혜는 구속인데, 정작 뇌물은 준 이재용은 말짱하다. 바로 그 이재용이 스님에게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그 역시, 사는 게 두려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내가 두려울 것이 뭐가 있을까. 저렇게 큰 세속적 부자도 걱정을 안고 사는 데 말이다. 적어도 난 이재용 보다는 벗이 많지 않을까. 아부하고 굴종하는 노예 아닌 벗 말이다.

스님의 말씀이 맞다. 제 머리로 살아가면 된다. 제 머리가 아닌 남의 대가리로, 남이 주입한 생각으로, 자본이 주입한 생각대로, 또 그것이 마치 제 생각인양 살아가는 것이 처량할 따름이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화나게 만드는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제 머리가 아닌 남의 대가리로 살아간다. 그리고 벗이 없다. 모리배와 아첨꾼들뿐이다.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내 마음과 마음의 전쟁, 내 몸과 술의 전쟁, 내 마지막 남은 자존감과 현실의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치열하고 또 무참하다. 언제 누가 승리를 거둘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벗이 있다. 그리고 명진 스님과 같은 매서운 죽비가 곁에 있다. 행복한 일이다.

그리 잘 하지도 못하면서, 글을 지어내는 것이 요사이 너무 힘들었다. 그야말로 죽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리 쉽게 무너질 나도 역시 아니다. 노회찬 의원님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새삼 결심한 것이 있다. 더 멋지게 더 치열하게 마지막을 준비하자고, 그래서 아주 조금만 후회를 남기자고.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아주 아주 늦었지만, 노회찬 의원님, 형님, 대표님, 후보님, 벗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겠다. 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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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8-09-04 11:40:34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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