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19일까지 9박 10일 동안 평양에서 열린 '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참가를 위해 평양에 다녀왔다.

선수단과 기자단, 참관단 모두 합해 147명의 대표단은 남북 교류협력 역사상 처음으로 서해 육로, 평양개성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지난 10년간 가볼 수 없었던 평양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동안 간간히 전해지기도 했지만 초고층 건물 숲과 깨끗하게 정리된 도로, 전에 없던 택시와 교통체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결 여유있어 보이는 시민들의 모습속에 평양의 지난 10년이 비껴 있었다.

유례없이 무더웠던 올 여름. '공화국창건 70돌'을 앞두고 한낮 더위를 피해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연습에 분주한 와중에 들려온 9월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환영하는 평양시민들과 살짝 여름나기도 함께해 보았다.

2018년 8월 평양에서의 열흘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① 평양으로 가는 길, 서울로 가는 길...평양개성고속도로를 달리다
② 초고층건물 속 평양, 10년 새 어떻게 바뀌었나 
③ 2018 평양의 여름나기
④ 한발 더 들어가 본 평양의 이모저모

▲ 개성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송악산의 뒤태. 개성시를 벗어나 평양개성고속도로에 올라 조금 달리다 보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0일 오후 5시 개성공업지구 입구의 북측 통행검사소. 남측 147명의 대표단을 태운 6대의 버스가 평양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남북체육교류협회(이사장 김경성)와 북측 4.25체육단이 공동 주최해 8월 10일부터 18일까지 평양에서 진행한 '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려는 선수단, 기자단, 참관단 등 대표단을 태운 버스는 시동을 걸자마자 곧 개성공단과 개성시내를 지나나 싶더니 이내 총연장 170km의 왕복 4차선 평양개성고속도로에 올라섰다.

해질 무렵 평양의 관문이라고 할 낙랑구역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통과해 숙소인 양각도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 개성에서 평양까지 170km 이상을 평균시속 60km의 속도로 3시간만에 도착한 셈이다.

서울 기점에서 55.8km 거리에 있는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출발해 군사분계선을 지나 북측 통행검사소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걸 생각하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250km를 가는데는 4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 평양개성고속도로 구간. [편집-통일뉴스]

그러나 파주시 장단면과 개성시 사이에 있는 남과 북의 출입사무소, 통행검사소에서 실제 이동시간에 버금가는 3시간 동안 통관절차를 거치다보면 새삼 분단의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의 나라 다닐 때보다 훨씬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절차도 까다로운 통관절차를, 그것도 오며 가며 두번이나 겪고 보면 남북관계를 '국가간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끼리의 특수관계'라고 합의한 것도 물색없다는 생각이 든디.

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에 첩첩이 철망을 세우고 남북의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대치해 있는 모습은 여전히 보고 있기만 해도 상념에 빠지게 되는 스산한 풍경이다. 그걸 한쪽에선 사진찍지 말라고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기어코 사진을 찍겠다고 슬쩍 슬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은 답답하기 매한가지이다.

개성공단 북측 통행검사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니 여기까지 참가단을 태우고 온 버스는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고, 이제 일행을 태우고 평양으로 향할 6대의 북측 버스가 개성공단이 보이는 북측 통행검사소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통관검사를 마치고 앞으로 9박10일간 참가단의 발이 되어 줄 그 버스에 올라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9박10일간의 짧지 않은 일정 때문이기도 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용품이 많기도 했지만 통관검사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우즈베키스탄 선수단을 포함해 160여명의 참가단이 6대의 검색대에 줄을 섰는데, 모든 참가자들의 모든 가방이 다 열렸고 노트북과 카메라, USB 등 전자기기와 도서, 자료 등은 별도의 방으로 옮겨져 전수검사를 하는 절차가 문제였다.

찜통 더위 속에 통관절차를 기다리고 에어컨에서 더운 바람이 섞여 나오는 좁은 버스 안에서 기다리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평양에서의 나날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어느덧 5시가 되어서야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그에 앞서 도라산 CIQ에서 참가단의 모든 휴대폰을 보관하겠다며 수거한 것도 문제였다. 전날 일방적으로 통지한 이 일에 대해 참가단 중 이해하고 납득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돌아오는 날 도라산 CIQ에서는 제때 휴대폰을 돌려받지 못한 불만이 기어코 폭빌하는 사단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휴대폰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시계이자 카메라이기도 한 내 손안의 컴퓨터여서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필수품인데, 그걸 열흘 동안이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히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다.

▲ 개성공단내 개성한누리호텔.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양 가는 길

아무튼 버스는 출발했고 기계음이 멈춘지 2년이 넘은 공장들과 송악프라자, 개성공단종합지원센터 등 폐쇄된 개성공단을 지났다.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차창에 비친 개성공단은 곧 남북연락사무소를 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관리인으로 짐작되는 몇몇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도로와 건물의 외관이 아주 흉하게 망가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곧장 개성시내로 접어들어 달리는 동안 개성시민들은 3~4층 살림집 안에서, 골목과 거리에서, 지나가는 버스 행렬을 다소 무표정하지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늦은 오후 개성 시내는 평온해 보이고 사람들이 느긋하게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는데, 나중에 평양에서 본 엄청난 자전거 행렬과 비교하면 개성의 자전거는 예고편이었던 것 같다.

교류협력 목적의 대규모 방북도 10여년 만의 일이지만, 서해육로를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년 전인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올라갔던 그 길이고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서둘러 내려온 그 길이다. 이날 오전엔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하는 북측 조선직업총동맹 선수단과 대표단 64명이 이 길을 통해 서울로 들어갔다.

▲ 평양개성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편안한 구릉. [사진출처-위키백과]
▲ 평양개성고속도로는 곧은 직선 주로에 가까웠고 대체로 평탄했다.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송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품고 있는 듯 안정감이 느껴지는 개성 시내를 벗어나 참가단을 태운 6대의 버스는 평양개성고속도로에 올라서 녹음이 무르익는 산하, 논벼가 푸르게 익고 강냉이(옥수수)가 쑥쑥 자라는 드넓은 논과 밭 옆을 달렸다.

고속도로에 올라서 한참을 달리자 개성시내를 감싸고 있는 길게 누운 흰 바위산(송악산)의 뒷 모습이 나타났다. 북측 관계자는 송악산의 뒤태를 두고 "달밤에 보면 대사가 누워있는 자태라는 말이 전해온다"고 소개했다.

개성을 출발해 금천, 평산, 서흥, 그리고 봉산탈춤으로 유명한 황해남도 봉산을 거쳐 황해북도 서부의 사리원시와 송림, 평양시 남서부의 강남군을 지나 평양시까지 연결되는 총연장 170km의 평양개성고속도로. 개성과 평양을 거의 직선으로 연결해 곡선 구간도 거의 없고 경사도 대단히 완만해 가끔 저 멀리서 차창 앞으로 다가오는 낮은 언덕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검은 색 아스팔트 중간 중간 패인 곳을 시멘트로 땜질을 한 흔적이 여기 저기 있어 매우 편안한 승차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차량 운행에 크게 지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평양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건너편 도로에는 가는 내내 거의 차를 볼 수 없었는데, 봉산을 지나 사리원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승객이 가득찬 승합차와 소형버스, 승용차, 짚차, 트럭 등 다양한 종류의 차량이 개성 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띄엄띄엄 보였다.

고속도로에 오른지 15분쯤 지나 처음으로 지난 터널이 '통일굴'이고 이어 이따금씩 산세가 험한 지형을 지나면서 례성굴, 옥천굴, 륭궁굴, 주포굴, 부흥굴 등 터널이 셀 수 없이 지나갔다.

위키백과는 평양개성고속도로가 1987년 2월 착공해 고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인 1992년 4월 15일 완공되었으며, 톨게이트가 12개소, 터널이 18개소, 교량이 84개소가 있고 최대 경사로가 4도 미만, 제한 속도는 110km라고 소개했다.

▲ 은정휴게소의 직원들이 매대를 펼치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봉산 인근에 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르도록 세워진 은정휴게소가 있다. 평양개성고속도로 유일의 휴게소인 이곳을 평양으로 가는 길엔 그냥 통과하고 아흐레가 지나 19일 서울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들렀다. 매대를 펼치고 나와 일행을 맞이한 은정휴게소에서 처음 보는 배사과와 수박을 사먹은 것도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차창 왼쪽편으로 보이지 않는 서해쪽 너머로는 재령평야가 펼쳐져 있을 터인데, 차창 옆 너른 벌판으로 보이는 논벼는 유난스러운 올 여름을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고 곳곳에 심어져 있는 강냉이(옥수수)도 탈없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공장 굴뚝은 송림을 지나면서 연기를 뿜고 있는 황해제철소와 평양시 강남군에 접어들면서 멀리 보이는 동평양화력발전소가 전부였다.

노을 지는 들판 저 멀리로 보이는 황해제철소를 지나 동평양화력발전소의 거대한 굴뚝과 연기, 낮고 넓게 보이는 평양시 윤곽이 눈에 들어온 것이 저녁 7시 30분께.

개성과 원산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지나자 고층아파트들이 경연을 벌이듯 펼쳐진 이곳이 평양시 낙랑구역이다. 3대헌장기념탑을 지나 조금 더 나가 대동강을 건너게 되는 충성의 다리가 있고 오른쪽으로 쭉 뻗은 길이 통일거리이다.

충성의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편 통일거리 모퉁이에는 지난 1993년 최초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리인모 선생의 흉상이 서 있고 다리 왼편으로는 쑥섬 과학기술전당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40~50층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 미래과학자거리 한복판으로 접어들었다. 평양이다.

▲ 은정휴게소 옆에서 본 들판. 유례없는 무더위를 잘 견뎌서 작황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양에 머무는 열흘 동안 참가단은 국제유소년축구대회가 열리는 김일성경기장을 비롯해 평양교원대학, 류원신발공장, 대동강수산물식당 등 20곳에 가까운 교육기관, 공장시설, 병원과 식당 등을 참관했다.

서울 오는 길

8월 19일 아침 8시 30분 양각도호텔을 출발해 평양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날. 분명 버스는 서울을 향하고 있었지만 오던 방향과 거꾸로 달리는 평양개성고속도로의 풍경은 올 때와 다르지 않았고 이미 평양에서 열흘을 지낸 몸과 마음은 그 길을 개성과 도라산을 참관하는 길로 착각하고 있었다.

은정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전 11시에 도착한 북측 통행검사소. 나갈 때는 들어올 때와 다를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다시 모든 가방이 열리고 노트북은 별도의 검사실로 갔다가 2시간쯤 뒤에 나왔다.

북측 통문을 벗어나 남쪽으로 향하는 10분 남짓의 짧은 시간에 '여기서부터 파주시 장단면입니다'라는 게시판이 눈에 띄어서 얼른 뒤를 돌아보자 같은 게시판의 뒷면에 '여기서부터 개성시입니다'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인다. 1시 30분. 그렇게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도라산 CIQ에서 열흘 전에 맡겨 둔 휴대폰을 찾느라 약간의 소동을 거치고 그동안 정들었던 참가단의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한 후 내려가는 통일대교, 임진각, 임진강과 한강하구에는 의연히 철조망이 서 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철조망과 함께 그렇게 또 싱숭생숭하다.

▲ 평양개성고속도로 주변의 완만한 풍경.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평양개성고속도로 주변 풍경.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평양개성고속도로 '주포굴'. 위키백과는 이 고속도로에 18개의 터널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출처-위키백과]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강변 도시.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강변 도시.[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목가적인 풍경.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농지.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농지.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농지.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고속도로 옆 정자.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 농지.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평양개성고속도로 옆에 세워진 대형 송전탑.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노을이 비낀 황해도 들판.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개성시 외곽.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주민들이 많았다.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개성시내. [사진제공-제4차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대회 대표단]
▲ 황해남도 봉산 인근에 있는 평양개성고속도로 유일의 '은정휴게소'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은정휴게소에서 판매하는 '배사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개성공단내 폐수처리장(왼쪽)과 2단계구역(오른쪽)이 갈리는 교차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개성공단내 왼쪽은 종합지원센터 방향, 오른쪽이 통행검사소 방향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단절된 10년을 반영하듯 가로등 위 한반도기 모양이 흐릿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가-23일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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