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절실함, 그러나 허약함

1. 친서 교환, 트럼프의 절실함

1) 트럼프의 파격적 답신 전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의 친서 수신 사실을 공개하며 “당신의 좋은 서한에 감사한다. 곧 보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와 관련, 8월 2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받은 서한에 답장을 썼으며 곧 북한에 전달될 예정”이라고 했다. 마침, 8월 3일부터 북과 미국의 외교 수장들이 <아세안지역 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싱가포르에 동시 체류하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친서가 전달되는 것이 격에 맞으면서 가장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당초 미측은 ARF를 계기로 미·북 외교장관 회담을 갖자는 뜻을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가능성에 대비해 미·북 정상회담 실무 협상을 이끌었던 성 김 대사를 대표단에 합류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이 받지 않아 외교장관 회담은 끝내 무산됐다(조선일보.8.6)” 그럼에도, 미국은 트럼프의 친서를 북에 전달했다. 어떻게 했을까?

8월 4일 각국 외교장관들 연설 직전 기념촬영 행사장에서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리용호 북 외무상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고, 둘은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 직후,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리용호에게 회색봉투를 전달했다. 봉투는 백악관 문양이 찍혀있지도, 밀봉되지도 않았다. 주고받는 양자의 격이 맞지 않았으며, 어수선한 행사장에서 순간적으로 이뤄졌다. 얼마나 갑작스런 상황이었으면 북측이 곧바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으랴.

이 모든 정황에 따라 “회색 봉투 안에 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일 가능성이 작다는 반론이 나왔었다(중앙일보.8.6)” 그러나 품페이오는 “김정은의 친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전달할 기회를 가졌다” 트위터를 통해 공개 확인했다. 이런 형식파괴, 돌출행동을 불사하면서까지 트럼프가 북에 신속히 답신을 보냈던 이유는 무엇일까?

2) 트럼프의 절실함

7월 30일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평양 인근 산음동 미사일 제조 공장에서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2기를 제조하고 있는 정황을 미 정보 당국이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했다”고 보도한다. 북미 정상회담 귀국길에 “이제 더 이상 핵 위협은 없다”고 선언한 트럼프에게 ‘북의 비핵화 약속 위반’은 커다란 정치적 손상이다. 또한, 북미 협상 진척을 통해 정치적 자산에 무게를 더하려는 그의 계획에 대한 타격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7월 31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북한 문제가 잘 되고 있다”면서, 그 근거로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들을 돌려받았고 북한의 핵실험도 없었으며 미사일 실험도 없었다”고 한다. 북의 핵, 미사일 동결, 이것이야말로 트럼프가 내부의 공격을 물리치며 자신이 안보, 평화 대통령임을 계속 주장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무기인 것이다.

그러니 중간선거까지 ‘핵, 미사일 동결’에 머물러 있으려 할 것 아닌가? 그럴 수 있다. 그런 입장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가 8월 2일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의 기자회견이다. 그는 미국의 북 전문매체 <38노스>가 7월 23일 보도한 북의 서해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를 부정한다. 검증이 없었기에 믿을 수 없단다. 또한, 미군 유해 송환(7.27)은 비핵화가 아니라서, 비핵화 진전과 무관하단다. 이처럼 북의 비핵화 조치들을 자의적으로 부정한 다음, 두 가지 결론을 내린다.

하나는 종전선언 거부다. ‘핵시설의 완전한 명단 제출’이 종전선언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단다. 명단을 제출하면 종전선언을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은 출발점”이란다. 또 하나는 남북 관계 차단이다. 북의 비핵화와 남북관계는 연동되어야 하고,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을 비롯한 남북 경제협력은 불가하단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의 핵, 미사일 동결 상태를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해리스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생산적인 협상이 계속되는 한 훈련을 중단한다고 했다. 나도 당분간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분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 비핵화를 실행할 의무는 북한에 있고, 이에 따라 어느 시점에 우리가 훈련을 재개할지를 결정하게 될 것(조선일보.8.3)”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그는, 미국의 주류 집단은 북의 비핵화 진전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그러니 ‘당분간’이 지나면 그들이 ‘훈련 재개’를 놓고 무엇을 결정할지는 너무나 뻔하다. 이처럼 그들은 ‘당분간’보다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당분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 11월 중간선거 전에 북의 핵, 미사일 동결이 풀리면 그는 지금껏 얻은 플러스 효과를 다 토해내고, 거기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럼, 선거 결과는 악몽 쪽으로 기운다. 지난 7월 7일, 벌써 북은 외무성 성명에서 “확고부동했던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국면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8월 9일,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하여 일부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대북 제재 압박이 계속되면 “어렵게 마련된 한반도 정세안정의 기류가 지속될 수 있다는 담보도 없다”고 했다. “나는 대북 제재, 압박에 치중하는 그들과 다르다.” 트럼프가 파격적 형식으로 북에 친서를 보낸 이유다.

2. 남북 차단, 트럼프의 허약함

1) 재개된 협상

트럼프가 외교사에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답신을 보낸(8.4) 사실은, 그 즈음 북미 협상 채널이 사실상 막혀 있었단 것을 반증한다. 그럼 언제 다시 열렸을까? 8월 6일 북 <노동신문>은 개인 필명 논평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과 달리 미국 국무부 등 행정부가 제재, 압박에 매달리며 과거로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말해, 트럼프와 주류 관료 집단을 구분한다. 또한, 현재의 교착국면에 대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부닥친 우여곡절”이라고 해석, 북미 협상 재개 가능성을 활짝 연다. 트럼프 답신의 효과 이외,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 직후, 미국 <CNN> 방송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서 친서 교환으로 북미 2차 정상회담 가능성이 “아주 강력해졌다”고 보도(8.6.현지시간)한다.

바로 이 시점에 볼턴이 다시 등장, 매일 한건씩 방아쇠를 당긴다. 8월 5일(현지 시간) “북한이 1년 안에 비핵화를 하기로 약속했다.” 다른 타협안은 없다는 것이며, 8월 6일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는 국제 참관단이 없었기에 유효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협상 동력에 바람을 뺐으며, 8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이 품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제안했는데, 대화 보다는 비핵화 실현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품페이오의 방북을 수용 말라는 것이다. 비상벨이 비상시에 울리는 것처럼, 볼턴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그가 막아야 할 일이 막 벌어지고 있단 증명이다.

8월 11일 <조선일보>는 “북핵 협상을 담당하는 미국의 핵심 당국자가 최근 방한해 판문점에서 북한 인사들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문제로 승부수를 걸 수 있다는 관측이다”고 한다. 이처럼, 북미 협상 재개 뉴스가 나온 바로 다음날 유엔군, 사실상 미군이 관할하는 휴전선이 열렸다. 남의 유소년 축구 방북단과 북의 직총 방남단이 그 선을 넘었다. 2011년 1월 이후 미군이 그 문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날 북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안하고 남이 수용한다. 이로써 남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 북미 2차 정상회담 가능성 등이 급속히 부상한다.

2) 남북고위급회담, 미국의 남북 차단 재확인

8월 13일 남북 고위급회담의 의제는 첫째 판문점 선언 이행 상황 점검, 둘째 남북정상회담 준비 논의 등 두 가지였다. 먼저, 판문점 선언 이행 점검을 보자. 이와 관련,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회담 직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 산림 협력 등은 남북 협력을 보다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으며,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상호 시범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 군사회담에서 논의된 사항 역시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진전이 없었고, 앞으로도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게다가, 8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개소하기로 합의(한겨레.8.6)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개소식을 “조만간 개최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이는 오히려 개소 시기가 연기됐음을 시인한 것이다.

정부는 왜 이럴까? 8월 3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금강산을 다녀오며 “올해 안에 금강산 관광이 재개됐으면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고, 북측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8월 4일 미 국무부는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까지 제재는 완전히 유지될 것”이라고 초를 쳤다. 미 국무부는 8월 8일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발언을 했고, 8월 9일 정부가 작년에 조성한 대북 인도적 지원금 800만 달러의 집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럼, 남북정상회담 날짜는 왜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못했을까? 남북 고위급회담 다음 날인 8월 14일 미 국무부의 “9월 안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한 논평에 답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은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 남북관계 진전을 대북 압박의 볼모로 잡은 것이다. 이런 제재, 압박 일변도가 트럼프의 뜻이 아님을 그는 어떻게 현실에서 입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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