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 형성된 북미관계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이 끝난 뒤 북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은 것(ganster-like)’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라고 응수했다.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입에서 북미 양국 사이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미국이 북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선의의 주동적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 없이 북에 대해 비핵화 요구를 앞세운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으로서는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핵실험장 폐기, 구금 미국인 석방 등의 조치를 취한 데 비해 미국이 한 일이라고는 언제든지 재개가 가능한 한미연합연습을 중단한 것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고강도의 대북 경제·외교적 제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은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다방면적인 교류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우선 정전협정 65돌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문제 △비핵화 일환으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생산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한 엔진시험장 폐기 △미군 유골 발굴을 위한 실무협상 시작 등의 의제를 언급하면서 “(북미)공동성명의 모든 조항의 균형적인 이행을 위한 건설적인 방도들을 제기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미국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정신에 배치되게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고, “평화체제 구축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까지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으로서는 미국의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 의지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에 ‘강도적 요구’라는 수위 높은 비난을 쏟아내면서 미국의 태도에 대한 실망과 회담의 앞날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70여년의 적대관계를 뛰어넘어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의 물꼬를 트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영철-폼페이오의 협상 뒤에 나온 북미 양국 사이의 설전이기에 회담의 앞날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쟁점은 ‘동시행동 배열’ 입장 차이

그러나 북미 양국이 큰 틀에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북도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단계적으로 동시행동원칙에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고, 폼페이오 장관도 “정상회담 합의의 세 부분인 평화로운 북미관계 구축, 북한과 북한 국민에 대한 강화된 안전보장, 비핵화는 각각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경향, 2018. 7. 10)고 말한 것이 그 근거다.

이는 북미 양국 모두 ‘선 평화협정’ 대 ‘선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평행선을 달리던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재 북미 양국의 긴장의 성격은 동시행동 그 자체에 대한 입장 차이가 아니라 북미 양국이 취해야 할 동시행동의 배열(sequence)에 대한 입장 차이로 보인다.

북미 양국 사이에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후속협상과 조치가 이뤄지고 있고 비핵화 검증 등을 논의하기 위한 ‘워킹그룹’ 구성에 합의한 것도 회담의 파탄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이 북의 비핵화에 대한 상당 부분의 선행조치를 계속 고집하면서 자신의 의무를 지연 또는 회피하여 동시행동의 원칙이 훼손된다면 ‘상호신뢰 구축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중대한 합의를 해치게 될 것이다.

최근 북미 양국이 큰 틀에서 상호 선의에 기초한 주동적 조치의 선순환을 통한 신뢰구축과 이를 통한 관계의 진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격한 상호주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상호 조율된 균형있는 조치가 축적되지 않으면 그동안 쌓인 상호신뢰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과 엔진시험장 폐기 조율해야

따라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북미양국 사이에 이미 논의되고 공감대가 형성된 종전선언과 북의 ICBM 엔진시험장 폐기를 조율된 조치로 이뤄내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북미수교의 동시병행을 위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북미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훼손하고 파탄내려는 한미일의 반북-반트럼프 세력의 집요한 공격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김정은-트럼프를 비롯한 북미양국 정부의 협력과 문재인 정부의 중재와 조정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북미관계는 계속 진전되지 않으면 의회·언론·싱크탱크 등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방해세력의 막강한 영향력에 의해 얼마든지 좌초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전개되는 상황에서 보듯이 남북/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열린 평화의 시대는 살얼음판을 걷는 처지를 끝까지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자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북미 당국자들이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천신만고 끝에 열린 이 기회에 사드, 핵무기, 주한미군, 남북의 대규모 병력과 무기 등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병행, 북미수교와 그 이행과정에서 제거함으로써 한반도에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는 데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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