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반도에는 역사적인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4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세계 앞에 약속했습니다.

이어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간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북한은 핵실험장과 미사일실험장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들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유예 등 대북 군사적 압박을 해소하는 조치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북·미는 전쟁과 적대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 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하원 연설(2018. 06. 21)

▲『평화의 규칙』 표지. [자료사진-통일뉴스]

훗날 역사가들이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역사의 대전환점이었다고 기록할지는 알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늘 말하듯, 긴 프로세스가 이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남·북·미는 전쟁과 적대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 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평가에 토를 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지난해 9월 유엔총회를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17년 9월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은 엄청난 힘과 인내를 가졌으나, 자신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9월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9월 23일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전략폭격기 B-1B 편대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남동쪽 130km 떨어진 공해상까지 북상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9월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상식과 정서가 온전치 못한 데로부터 우리 국가의 최고 존엄을 로케트와 결부하여 모독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그로 하여 그는 전체 미국 땅이 우리 로케트의 방문을 더더욱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만회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반발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외무상이 유엔에서 말한 것을 방금 들었다. 그가 ‘리틀 로켓맨’의 생각을 되풀이한 것이라면, 그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9월 25일(현지시간) 리용호 외무상은 뉴욕의 한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트럼프는 지난 주말에 또다시 우리 지도부에 대해 ‘오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공언함으로써 끝내 선전포고를 하였다”면서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이상 앞으로는 미국 전략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계선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서 모든 자위적 대응 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시기 국가 기간 통신사를 자처하던 <연합뉴스>는 “휘발성이 최고조화 돼 있는 한반도에 자칫하면 불꽃을 던질 수 있는” 오보를 잇따라 날리고, 분쟁 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왔다.

극점까지 치솟았던 한반도 전쟁 위기를 가라앉히고, 서로 손가락질하던 북.미 정상을 마주 앉게 만든 장본인은 문 대통령이다. 12월 19일 평창행 고속열차에서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가 결정적이었다. “한‧미 양국은 올림픽 기간에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선언할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미가 ‘연합군사연습’을 중단(유예) 또는 축소함으로써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15년 1월 북한이 제안했으나 미국이 바로 차버렸고, 중국이 ‘쌍중단’이라는 구상으로 제출했으나 북.미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이 구상을 내놓기까지 많은 전사(前史)가 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지난해 6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우드로윌슨센터 주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강연이다. 이날 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두 가지 제안을 소개했다. 하나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에 대해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연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전자와 관련해 “(연합훈련 때)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축소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전쟁과 적대의 어두운 시간”에 갇힌 집단은 “문 특보의 발언은 지난 50여 년간 피로 지켜온 한미동맹을 한 방에 깨트릴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문 특보는 김정은의 외교안보 특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바른정당 김영우 의원)”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하지만, 대통령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의 제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으로 현실화되면서 한반도 위기의 돌파구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 문정인 교수가 한반도 위기 극복 과정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담은 대담집 『평화의 규칙』이 나왔다. 대담자는 지난해 6월 문 교수의 미국 방문에 동행했다가 ‘보수’ 매체들의 융단폭격을 함께 맞았던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통일뉴스> 김치관 편집국장이 질문자(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홍익표 의원은 “우리의 대담은 한반도 문제의 결론이 아니라, 다가오는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라며,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보다 풍부한 각론은 앞으로 시민들과 함께 써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정인, 홍익표, 김치관과 함께 평화 통일의 시대 ‘각론’을 쓰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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