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본 것에 비교해 볼 때, 내가 쓴 것이란 모두 한낱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토마스 아퀴나스)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소풍이 마냥 아름다웠을까? 내 뇌리에는 흑백 사진처럼 새겨진 학창 시절의 소풍 장면이 몇 개 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 인 것 같다. 양촌의 솔밭으로 소풍을 갔다. 고종 사촌 누나가 나의 보호자로 동행했고, 누나가 숭늉과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 가지고 갔다. 다른 아이들 몰래 목으로 넘기던 그 미지근하고 구수한 숭늉. 다른 아이들은 킬킬거리며 사이다나 콜라를 마셨다. 나의 오감은 다른 아이들, 학부모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인 것 같다. 소풍이 끝나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걸어서 집으로 왔다. 햇살이 마을 앞 시냇가의 모래밭에 눈부시게 빛났다. 내 눈시울에서 아롱거리던 그 경외스러운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의 소풍 장면들은 그리 강렬하게 남아 있지 않다. 

 소풍은 일상의 일탈이기에 일상의 세계가 경이로운 장면으로 바뀐다. 내가 뛰어난 화가라면 그 장면들을 명화로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장면들은 남들의 눈에는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고흐의 가난하고 누추한 사람들의 그림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처럼.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느 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본 것에 비교해 볼 때, 내가 쓴 것이란 모두 한낱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그리고는 ‘신학대전’의 집필을 중단했단다.

 그의 눈에 비치는 일상의 광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의 초라한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 하느님을 만났을 것이다. 그 눈부신 만남이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게 했던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의 눈부신 광경들을 본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왜 그의 눈에 이 세상이 그리도 눈부시게 보였을까? 그는 소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정보기관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는다. 그의 지옥의 경험이 이 세상을 낙원으로 보게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하고 노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한평생 힘들게 살다가 죽을 때 비로소 편안하고, 소인배는 한평생 즐겁게 살다가 죽을 때 힘들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달관한 듯한 ‘귀천’의 노래는 죽음이 왔을 때 비로소 고단한 삶을 쉴 수 있다는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여고생 두 명이 동반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어떤 끔찍한 경험을 했기에 이 세상이 자살해야만 하는 세상으로 보였을까? 옥상에서 떨어지며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고갱은 10여년의 주식중개인의 삶을 청산하고 문명의 도시를 떠나 야생의 섬, 타히티로 갔다. 그는 거기서 깊은 안식을 얻었다고 한다. 이 세상이 ‘타히티’가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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