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12일 싱가포르 ‘세기의 담판’이 끝난 지 사흘이 지나고 있지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70여 년 간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가 역사상 첫 만남을 가졌고 게다가 공동성명까지 발표했는데도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두 정상이 합의한 공동성명은 그 골자가 ‘완전한 비핵화 대 안전보장 제공’ 맞교환으로 되어있다. 북미공동성명 전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안보보장 제공을 약속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적시돼 있다. 단순하지만 명징한 이 합의로 양국은 70여년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새 시대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었다. 이 회담을 중재, 촉진시킨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6월 12일 센토사 합의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했다.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가시고 평화의 햇볕이 깃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미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위해 공동 노력, △북한은 판문점선언 재확인 및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향해 노력, △미군 전쟁포로 및 전쟁 실종자 유해발굴 및 즉각 송환 등 4개항으로 되어있다. 기름 떼고 살을 발라내 뼈만 남았다고나 할까, 군더더기가 없다. 과거 요란한 내용을 담은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나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 등과 비교해 볼 때 더 확연하다. 이걸 만들려고 북미가 70여 년 동안 생사를 다투는 적대관계에 있었고, 또 이번 회담을 앞두고 그렇게 숱한 기싸움과 취소 소동까지 벌였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특히 공동성명에는 일반 분석가들이나 미국 내 주류 측이 보기에는 구체적인 게 없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 측이 주장해왔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넣지 않고 ‘CD(완전한 비핵화)’라는 왜소하고 모호한 선언만 담겨있을 뿐이다. 회담 직전까지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CVID가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회담 결과라고 천명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했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 ‘빈손 회담’, ‘트럼프 외교 참사’ 등 혹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공동성명 안에 ‘CVID 대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의 맞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CVID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보다 정확하게는 CVID는 가능할 수 있지만 CVIG는 불가능했다. 그중에서도 북한은 ‘ID(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IG(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을 해 줄 수는 없었다. 북한이 ID를 했을 시 다시 핵무장화를 할 수 없지만, 미국이 IG를 선언했다고 해도 언제고 북한을 때릴 수 있으니까. 따라서 ‘CVID  대 CVIG’는 애초부터 상호 등가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트럼프 학습효과’라고나 할까? 북한과 만나면서 북한을 이해한 것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측을 변호했다. 특히,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 때는 마치 북한의 스피커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20%만 비핵화 과정이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비핵화가 즉각 시작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사실상의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가 조기에 가시화될 것이라는 강조다. 마치 북한 측의 입장을 대변해 준 것 같았다. 아울러, 14일 한국을 방문한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북미공동성명에 나오는 ‘완전한 비핵화(CD)’에는 ‘CVID’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거래의 달인’이 보기에 서약한 종잇장보다 상호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CVID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신뢰가 모든 관계의 출발이기도 하다. 과거 북미 간의 여러 합의문들이 백과전서 식으로 되어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양국 간에 신뢰구축이 안됐기에 약간의 이상기운이 싹트면 초기 단계부터 좌초되기 일쑤였다.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은 포괄적인 원칙만 담은 신뢰구축 회담이 된 셈이다. 나머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은 제2차, 3차 정상회담 또는 실무회담에서 진행하자는 것이다. 그러기에 북미공동성명 전문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시돼 있다. “상호 신뢰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 이제 한반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진행될 것이다. 새로운 북미관계가 수립된다면 이는 당연히 남북통일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북미의 새로운 여정, 새로운 관계 수립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