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시간으로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시)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는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주최국인 싱가포르는 이 행사를 “DPRK-USA Singapore Summit”라고 표기하고 있다. 미국 측의 “US-DPRK SUMMIT”와 순서가 바뀌었다. 싱가포르 정부 측은 “알파벳 순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측 ‘회담’에서 ‘상봉’으로 명칭 변화, 입장의 변화인가?

관심을 끄는 것은 북한 측의 표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을 보도한 10일자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조미수뇌 상봉과 회담”이라고 명시했다. 지난달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가 “조미수뇌회담”, 25일자 위임에 따른 담화가 “조미수뇌상봉”이라고 각각 표기했던 것과 다르다.

단순한 표기 차이라기보다는 두 개의 담화와 조선중앙통신 보도 당시 북한 측의 입장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6일자 김계관 담화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선 핵폐기, 후 보상”, “리비아 모델” 주장을 비판하면서 “조미수뇌회담 재고려”를 지렛대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북핵 접근법은 “리비아 모델”이 아니라 “트럼프 모델”이고,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해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유연성을 보였다.

순항하는 듯 보였던 북미정상회담 준비작업은 5월 24일자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계기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최 부상은 “김정은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북한도) 리비아식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라고 경고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향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어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김정은 위원장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최선희 담화’를 문제 삼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취소’라는 강수를 던졌다. “정상회담 관련해 마음이 바뀐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를 쓰라”고 여지를 남겼지만.

그 몇 시간 후 북한은 위임에 따른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 형식으로, 문제가 된 ‘최선희 담화’는 “일방적인 핵폐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이라고 해명하고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며 손을 내밀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 호응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은 자기 궤도로 복귀했다.

흥미로운 점은 ‘취소 소동’ 이전과 이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측의 표현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데 있다.

5월 16일자 김계관 담화는 5차례에 걸쳐 일관되게 “조미수뇌회담”이라고 표기했다. 반면, ‘취소’ 서한 직후에 나온 5월 25일자 담화는 6차례에 걸쳐 “조미수뇌상봉” 또는 “수뇌상봉”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미국이 취소한 것은 “회담”이라고 명시했다.

미국이 취소한 것은 “회담”이고,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상봉”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기류였다. 지난 8일 <조선중앙통신>도 7일 리용호 외무상과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평양 회담 의제가 “조미수뇌상봉을 앞둔 정세”라고 보도했다.

명칭의 변화만이 아닌 실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접견한 후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은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구속력 있는 문서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치를 낮췄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들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던 것과 같은 모습을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5.25 김계관 담화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북한 측이 현실적인 기대치를 설정했음을 시사한다. 

지난달 27일부터 6차례에 걸쳐 판문점 통일각에서 진행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성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간 실무회담에서도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면서 큰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이 끝나고 숙소로 복귀하던 성김 대사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 시기, 고위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정상회담 발표문에 명시하길 원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2년 내에 같은 구체적인 후속협상의 시한,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일부 반출 같은 초기 조치들이나 전망이 밝지 않다”고 전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미정상회담이 우려된다”고 했다.

북한이 ‘취소 소동’ 이전에는 “회담” 수준에 맞는 합의문을 준비해왔다면, 그 이후에는 “상봉” 수준의 발표문을 내겠다고 태도를 바꾼 것 아닌가는 관측이 나돌 정도였다. 

김정은 위원장 싱가포르 도착, 다시 ‘회담’으로 변화?

▲ 김정은 위원장이 10일 저녁 싱가포르 대통령궁에서 리센룽 총리를 만났다. [사진제공-싱가포르 정보통신부]

지난 10일 김정은 위원장이 ‘첩보전’을 방불하게 하는 형태로 싱가포르에 도착하면서 기류 변화에 대한 희망이 다시 커지고 있다.

10일 저녁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를 만난 김정은 위원장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역사적 회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1일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행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은 “조미수뇌회담”의 의제는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이라고 명시했다. 11일 오전 싱가포르 리츠칼튼호텔에서 성김 대사를 만난 최선희 부상의 표정도 밝았다.

11일 리센룽 총리와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면서 “아주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회담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과 기대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최국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교장관도 11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지도자들”이라며, 기존 외교관들이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12일 북미 정상들이 “회담”에 걸맞는 합의문을 채택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징후들이다. 그 결과물이 과연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를 향한 명료하고 의미 있는 ‘로드맵’일까? 

(추가-오후 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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