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5일 시내 한 식당에서 진행된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집단지성의 힘으로 찾아가는 분단체제 극복'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담론하는 방식에 대한 공부를 권고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016~2017년 광장을 뒤덮은 촛불이 국정 농단 세력을 간단없이 물리치고 새 정부를 수립했을 때 이미 알아 차렸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우리 운명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따라서 더 많은 고민과 실천은 늘 우리 앞에 있다.

지난해 겪은 극도의 전쟁위기에 몸서리치던 때가 먼 옛날의 일로 느껴질만큼 한반도는 지금 대격변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한반도 대전환의 국면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실험적 공부모임이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되었다.

세교연구소와 창비학당, 계간『창작과비평』이 한반도와 한국사회의 번혁과 문명적 전환을 위한 담론을 더 심도 깊게 연구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창비담론 아카데미'가 그것.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3개월간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부문의 종사자, 다양한 인식 수준의 교수, 교사, 문인, 연구자, 시민운동가, 편집자 등 30여명이 참가했다.

공부는 △변화의 시대와 담론공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모색 △촛불이후 읽는 변혁적 중도주의 △한반도 대전환의 길목에서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함께 논문 등 '읽기자료'를 읽고 발표와 토론을 한 후 매회 정리를 하면 그 다음 공부시간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강평과 함께 '성실한' 질의 응답, 그리고 토론을 이끄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7회 종합토론까지 진행한 결과물이 최근 『변화의시대를 공부하다-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5일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창비담론 아카데미'를 기획한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고 한국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러한 변화의 시기일수록 우리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담론 아카데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창비담론아카데미는 7차례에 걸쳐 강도높게 진행되었는데, 그간 백낙청 교수의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분단체제론'과 그 실천적 태도를 의미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주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 (주)창비,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 표지. [사진제공-(주)창비]

책에서 소개한 정의에 따르면, 분단체제론은 '한반도 차원에서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정과 한국사회의 개혁이 결합될 때만 진정한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민족국가의 복원이라는 단순한 분단극복으로서의 통일과는 다른 개념이다.

또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을 뜻하는 '변혁'과 그리로 가기 위해서 남한 사회에서 취해야 할 실천노선인 '중도주의를 의미한다.

변혁적 중도주의 관점에서 보면 △분단체제의 근본적 변화에 무관심한 개혁주의 △전쟁에 의존하는 변혁 △한반도 전체가 아닌 북한만의 변화를 요구하는 노선 △남한만의 독자적 변혁이나 혁명에 치중하는 노선 △변혁을 민족해방으로 단순화하는 노선 △평화주의, 생태주의 등 전지구적 의제와 일상적 실천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 극복운동에 대한 인식을 결여한 경우 등 여섯가지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백낙청 교수는 "작년에는 그동안의 인터뷰와 기고글  등을 모아 펴낸『백낙청 회화록』과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모아 쓴 『대전환의 길을 묻다』를 냈는데, "이번엔 내 역할이 크지만 개인 저서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산물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담론아카데미가 시작되던 때 전쟁위기가 고조되던 상황부터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확정된 최근 상황까지 여러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남과 북에 각자의 헌법과 정부, 군대가 있는 상황에서 서로 자주 만나고 교류, 협력하면서 점차 국가연합을 형성해 가는 남북연합의 단계는 이미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남북 당국간 합의가 여러 방면에 걸쳐 이루어지더라도 남의 국민과 북의 인민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결과로 나타나는 평화협정이나 남북교류만으로 질적으로 더 나은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시민들이 그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과정이 있어야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북미관계가 잘 풀리면 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양국체제론'에 대해서는 "서로 독립국가로 지내면서 선린관계를 유지하자는 사실상 '통일포기론'"이라면서 "통일 의지를 명백히 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조선노동당 규약, 수많은 남북합의에 위반하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양국체제론이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와 통일인식을 단순화해 남과 북이 합의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조차 배척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미정상회담 진행 후 앞날에 대해서는 "첫 발을 떼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두 세걸음을 가고나면 그 다음엔 돌아갈 수가 없다"면서 "이미 예고된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사이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변덕이나 미국내 반발에 따라 부분적인 후퇴는 있을 지 모르지만 없었던 일로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내다봤다. 

▲ 지난 5일 열린『변화의시대를 공부하다-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 출간 기념회. 왼쪽 이남주 세교연구소 소장이자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부주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백 교수는 "책에 언급된 내용은 초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라도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담론의 내용을 학습하는 것보다 담론하는 방식을 공부하기를 바란다. 주고 받는 토론을 통해서 공부하는 방식도 의미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와 관련, 이남주 교수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던 작년 연말 창비담론아카데미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공허함'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고 언급했다. 

이때 백 교수가 "공허하다고 느껴질 때에, 그러면 공허하지 않은 어떤 것을 나는 알고 있고 또는 기대하는가, 이런 것을 점검하는데서 부터 시작하는 습성도 키워나가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지적한 내용을 '책을 펴내면서'에 적어 놓았다.

이 교수는 "더 중요하게는 객관적 상황이 아무리 부정적으로 전개되더라도 그 속에는 전환의 계기도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며,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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