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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재력이나 학력에 따라 나타나는 교육 격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내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수-정시 경로이다. 

2017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60만 6천 명 중 22.7%인 14만 6천 명이 졸업생이다. 무려 15만 명이 재수생이다.

그런데 재수에 대한 태도는 학생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대체로 비강남 학생들은 절대 재수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재수는 안 된다고 선을 긋기 때문이다. 반면 강남 학생들은 재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가는 경로는 주로 정시이다. 수능은 재수생에게 절대 유리한 시험이다. 수능은 아이 큐 시험이나 운전면허 시험과는 매우 다른 성격의 시험이다.

아이 큐 테스트는 열심히 공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 유리한 시험이다. 아이 큐 테스트라면 재수한다고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

반면 운전면허 시험은 기본 요건만 통과하면 그만이다. 신호등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가가 시험의 요소이다. 이런 종류의 시험이라면 특별히 재수할 이유가 없다.

수능은 운전면허 시험에 가까운 시험인데 시험 문제가 까다로운 편이다. 변별하기 위해 이상한 문제를 출제한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데 독일 자동차 역사를 묻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시간과 노력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재수를 할 수 있다면 정시를 통해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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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학생은 강남이나 비강남이나 비슷하다. 지방 소도시에 수업을 다녀보면 똑똑한 학생들은 어디나 비슷하다. 최상위권은 역시 머리가 말을 한다.

핵심은 중위권이다.

지금은 학교나 학원이나 수능에 대한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않는다. 조밀한 내신 수학이 대부분이다. 수능에 대한 본격적인 대비는 2학년 2학기 정도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 시작하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여기서 선택이 있다.

재수를 할 수 없다면 본인 점수에 맞춰 대학을 정해야 하는데 대부분 하향지원이다. 반면 재수를 할 수 있다면 수능 점수를 올려 상위 대학에 도전해 볼 수 있다.

2018년 수능의 경우 이과 학생들 24만 명 중 7만 명이 실제 수능에서 문과 시험을 봤다. 기준은 대체로 이과 3등급-인 서울 공대이다. 수능 3등급을 받을 수 있다면 이과 시험을 봐서 인 서울 하는 것이 좋다면 수능 3등급을 받을 수 없다면 문과 시험을 보는 것이 유리한데 이 경우는 하향 지원해야 한다.

나는 몇 년째 푸닥거리를 하고 있다. 고3 6월 모의고사까지 이과 시험 준비를 했는데 6월 이후 문과 시험으로 돌면서 하향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과 1~2등급은 몰라도 이과 3등급은 노력과 공부 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너무 많은 학생들이 때를 놓친다. 그리고 막판 궁지에 몰려 투매하듯 문과로 돈다.

지금 과외를 하는 학생 중에 강남권 학생과 지방 학생이 있다. 초점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전자의 목표는 인 서울 이상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경로로 정시와 논술을 생각하고 있다면 후자는 지방 대학을 가도 좋다이고 그 경로는 수시와 교과이다.

결론은 정시는 재수를 매개로 강남 부유층 중위권 학생들이 본인의 실력보다 높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유력한 경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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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동아대 강기수 교수에게 의뢰해 주요 사립대와 국립대 54곳 신입생을 분석한 ‘학생부전형 성과 분석 및 정책 제언’ 자료에 따르면

중소도시와 읍면기타 지역 고교생은 학생부 위주 전형, 대도시권은 수능과 논술에서 비교우위를 보였다.(밑줄 필자)

“이들 대학에 학종으로 입학한 인원 43.4%는 중소도시 출신이었으며 광역시 29.1%, 특별시 16.9%, 읍면기타 지역 10.6%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읍면기타 지역은 학생부 교과(7.6%), 수능(5.1%), 논술(2.8%)보다 학종 의존도가 컸다.”

반면 “수능 위주 전형은 특별시 21.8%, 광역시 30.9%, 중소도시 42.3%였다. 논술은 특별시 33.4%, 광역시 22.8%, 중소도시 41.0%였다.”

정시가 부유층에게 유리한 전형이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것은 황당한 거짓말이다. 쟁점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명백한 거짓말을 집요하게 전개하는 집단의 실체와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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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사교육 해소와 평준화 강화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학종이 강화되고 정시가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정시가 약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난데없이 정시 강화 방침이 발표되고 있다. 추정컨대 강남 부유층과 고학력 민주화 세대가 집요하게 로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거짓말을 흘리며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넘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금도는 다음과 같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더라도 미국이 전쟁을 감행할 경우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 싫더라도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아선 안 된다. 국가 재정의 문제가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는 확대되어야 한다.

내가 볼 때 수시 강화는 그런 문제들 중 하나이다. 미세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수시 강화가 추세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런데 정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추세를 흔들었다.

교육부 차관이 일선 대학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정시 확대를 요청했고 교육부는 4.11 교육 관련 쟁점을 모두 묶어 국가교육회의에 문제를 이관했다. 여기에는 정시 확대를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정부는 위험한 상자를 열었다. 자식 문제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학부모는 무슨 짓이라도 한다. 그들은 심지어 촛불을 통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정해진 룰을 통해 대학을 보내기보다는 룰 자체를 바꿔 자식에게 기회를 넓혀 주겠다는 것이다.

위험한 불장난이 시작되었고 정부가 여기에 길을 열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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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진보성향의 주부 커뮤니티를 넘겨다 보고 있다. 대부분 문재인 지지자들이다. 여기서는 이재명도 사이비고 문재인의 지지기반을 흔드는 모든 것이 음모이다.

문재인 지지그룹은 이 시대의 주역이다. 이는 매우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태도라면 이 시대의 주인일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황을 보다 넓게 보고 아량 있게 처신해야 하며 내부의 부정적 문제를 제어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정의당, 민주평화당을 넘어 바른미래당까지를 포괄하는 미래지향적인 협치를 추진하는 기조 위에서 자유한국당을 고립시켜야 한다. 그리고 청년, 여성 등 새로운 사회세력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안철수를 넘어 이재명조차 사이비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볼 때 김기식의 거취와 삼성과는 별 상관없다.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하층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고용동향이다.

2,3월 고용은 한국의 고용상황을 잘 보여준다. 공공 일자리가 5만 명 이상 증가한 대신 도소매업 등에서 10만 명 가량 줄었다.

명백한 것은 공공 일자리가 줄어든 대신 중고령 저학력층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고 있는 점이다. 최저임금제가 중고령 저학력층에 타격을 주고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박근혜 퇴출이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보수진영을 지지했던 중고령 저학력층이 박근혜 축출에 대해 동의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처럼 서민 생계가 위태롭다면 다시금 경제를 고리로 보수가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과 입시라면 학생부종합전형의 강화를 지지하고 그 개선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지금처럼 자식의 미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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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교육부는 몇 가지 주요 교육 쟁점을 국가교육회의에 회부했다. 이런 걸 교육부가 결정하지 않고 다른 기관에 넘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육부는 당연히 결단했어야 한다.

정부는 정시 확대라는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여론을 조작하고 룰 자체를 바꾸려는 철면피한 요구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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