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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을 넘어 속리산 자락에 발을 들이다<산행기> ‘통일뉴스 백두대간종주대’ 22구간
이지련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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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7  00: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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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련 / 종주대원

일자: 2018년 3월 25일
구간: 화령재-봉황산-비조령-못재-갈령삼거리-갈령
산행거리: 13.75km(접속구간 1.2km 포함)
산행시간: 9시간 12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16명(초등생 1명 포함)


봄이 오는 길목에 활기찬 대오를 이루고

봄을 시샘하듯 춘분날 중부 이남에 꽤 많은 눈이 왔다. 과연 춘분에 내린 눈이 남아 있을까 혹시나 봄날에 질퍽하게 산행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사당역으로 향한다. 2달 만에 참가하는 산행이다. 춘분이 지나니 같은 시간대임에도 이젠 희뿌옇게 아침을 열고 있다. 겨울 내내 종주대원 수가 줄어 마음이 심란했을 전용정 대장의 표정이 밝다.

종주대 참가자 수가 이번엔 무려 16명이나 되니 모두들 들뜬 분위기다. 청주에 거주하는 정규원 대원과 임종근 대원은 문의휴게소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새로 참가하는 이민우, 박명한 대원을 포함 14명이 반가운 인사를 하며 자리를 잡으니 버스가 꽉 찬다. 문의휴게소에서 두 대원을 싣고 화령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10분경.

백두대간 22구간은 중화지구의 끄트머리인 화령재에서 시작하여 속리산권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형제봉 아래 갈령 삼거리까지 대간길을 이어 걷고 갈령으로 하산한다.

   
▲ 봄 햇살이 내려앉는 화령재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그 옛날 전쟁이 끝일 날이 없어 화령(化嶺)에서 화령(火嶺)으로 지명이 바뀌었다는 화령재는 한가롭기 그지없다. 화령재에서 봉황산으로 올라서는 들머리는 백두대간을 자르고 도로가 나 있어 화령재 표지석 옆으로 난 숲길을 거쳐 다시 도로로 가야 한다. 그런데 숲길로 가는 길이 간혹 알바하기 쉬워 이번에도 초반에 발품을 살짝 들였다. 상주시와 보은군을 잇는 25번 국도변엔 산불방지 계도차량이 권태로울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며 방송을 하고 있고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길을 16명의 종주대원들은 따스한 아침 봄 햇살을 맞으며 수청삼거리를 가로질러 들머리로 들어선다.

화서면의 진산 봉황산에 오르다

봄 향기는 아직 아련하지만 봉황산을 오르는 숲길은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에 청량한 기운을 불어 넣어준다. 쭉쭉 뻗은 나무와 화려한 봄을 치장할 진달래 군락들이 칙칙한 긴 겨울에서 벗어나 물기가 오르는 듯 가지 곳곳에 몽우리를 달고 있고 대원들의 경쾌한 발걸음은 봄날처럼 가볍기만 하다.

   
▲ 들머리를 지나 숲길로 접어드는 부대장 민성이와 대원들.들머리를 지나 숲길로 접어드는 부대장 민성이와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봉황산을 향하는 임종근 대원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유채색의 향연’이다. 봉황산을 오르는 중간 중간 진달래 군락과 잡목들 가지에 돋아나는 새순 속에 연초록 맹아들이 터질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터트리고 싶지만 산신령의 개화 명령이라도 기다리는 듯 100m 출발선에 선 선수들처럼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온 천지는 노랑과 보라 그리고 온갖 유채색들이 저마다 절정의 명도를 드러내며 수놓을 것이다. 지금은 화사한 봄 난장 직전의 고요함이라고 할까?
 
봉황산에 오르는 길은 완만한 흙길에서 산불방지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서부터 된비알로 변한다. 며칠 전 눈 소식과 반짝 추위로 산의 날씨를 가늠하기 어려워 여전히 겨울 등산복으로 무장했던 대원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하나둘 맺히고, 두터운 겉옷을 미련 없이 벗는다. 기대와 달리 봉황산 주변엔 잔설만이 남아있는데 그 위세 등등하던 한 겨울의 적설도 한 귀퉁이 응달 주변에 옹색하게 밀려나 있다. 자연이나 인간사나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놓치면 측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 만물의 이치인가 보다.
 
봉황산에 오르니 상주 화서면의 진산답게 사방이 훤하다. ‘봉황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의 형세에 ‘1300년 전에 봉황새가 날아들어 30년을 살았다’는 봉황산의 전설이 얹혀있다. 서쪽으로는 충북알프스의 구병산이 솟구쳐 있고, 저 멀리 북서쪽 아스라이 속리산 주능선과 우측에 갈령 터널이 눈에 들어온다. 동북쪽으로는 청계산과 대궐터산이 갈령까지 우리의 시야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 봉황산 정상에서 이민우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봉황산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서쪽으로 저멀리 충북알프스 주봉 구병산이 보인다. 충북알프스는 구병산과 장고개를 지나 못재 부근에서 백두대간과 만난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좌측 맨뒤에 속리산 천왕봉이 흐릿하게 보이고 우측 도로 끝이 갈령 터널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중화지구는 잊으라는 듯 산세는 요동치고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이 수많은 용틀임과 용솟음을 거듭하며 속리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오다 다시금 힘을 비축하고 용솟음하기 위해 잠시 숨 고르는 구간이 ‘중화지구’이다. 느슨했던 중화지구를 지나 봉황산을 넘으면서 산세는 차츰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중화지구에 길들여진 몸은 갑자기 돌변한 산세에 적응이 쉽지 않고, 봉황산 된비알에 호된 속리산 신고식을 치른 터라 시장기가 더하다. 후미에 쳐져서 걷다보니 선두는 벌써 자리를 펼치고 점심이 한창이다.
 
오늘따라 김성국 대원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리 차분하다. 넉살좋은 후덕한 얼굴에 늘 웃음을 선사하던 그였기에 의아스러웠는데 부친께서 병환중이시란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 나무 줄기 위에 걸터 앉은 윤정일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다함께 즐거운 점심식사.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비재를 향하는 등로엔 조금씩 암릉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 산 아래 저 멀리로 49번 지방도가 봉황산에서부터 따라온다. 49번 지방도는 동관음 삼거리에서 갈라지는데 보은 방향 도로는 비재를 지나 충북알프스의 장고개와 만날 것이다.
 
내리막길에 낙엽송과 전나무 군락이 길 좌우에 도열하여 경쟁하듯 늘씬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낙엽송 군락 틈바구니에 구절초 이파리가 봄의 전령처럼 얼굴을 내민다. 정규원 대원은 구절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계환 대원이 멋모르고 구절초 위에 앉았다가 정규원 대원에게 핀잔 받았노라 귀경길에 카톡에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사이의 스스럼없는 정겨움이 흥겹게 다가온다.
 
비재로 내려서는 등로는 나무계단이 깔끔하게 놓여있다. 비재는 새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비조령이라 하는데 흔히 비재로 불린다. 밑으론 도로가 지나가고 비재는 생태통로로 대간 길을 잇는다.

   
▲ 낙엽송 군락이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비재로 내려와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비재에서 오르는 나무계단은 급경사 구간이다. 나무계단이 끝나니 낙엽이 몰린 등산로에 발목까지 빠진다. 오르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깊은 낙엽의 늪이다. 덕산재-해인리 구간을 지날 때 지긋지긋했던 늦가을 낙엽산행에 비할 바 아니지만 경사가 급해 체력소모가 많다.
 
높낮이가 심해지며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보니 쥐가 나려하는 조짐이 온다. 두 달 만에 산행이고 고도 높낮이가 심해 피로가 누적됐는지 심상치 않다. 다행히 박명한 대원이 근육이 경직됐을 때 응급약이라며 아스피린를 건네주고, 게다가 원기를 보충하라고 황도까지 나눠 주어서 별 탈 없이 견딜 만 했다.

   
▲ 비조령 설명판 앞에서 박명한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속리산 주능선의 기암괴석에 비할 바는 아니나 중화지구에선 볼 수 없었던 거대한 화강암들이 점점 크기를 더해간다. 못재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조망바위에 서니 지나온 능선이 길게 늘어서 있고 49번 도로와 청계산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아 갈령 삼거리가 멀지 않았으리라.

   
▲ 조망바위 위에서 정규원 대원이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오랜만에 산을 찾은 '산사나이' 유병창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백두대간에서 역사를 만나다 
 
백두대간을 지나면서 산세를 음미하는 것 못지않게 흥미롭게 와 닿는 것이 대간 곳곳에 서려있는 민족의 서사들이다. 지금은 작은 물웅덩이에 불과하지만 천여 년 전에는 이곳에 강수량이 많아 산속의 연못이었을지도 모를 못재에서  후삼국시대의 여러 장면과 비극의 주인공 견훤과 만난다.

견훤은 상주 출신이며 시대의 라이벌인 왕건과 이 근방에서 큰 전투를 많이 치러 이곳엔 견훤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밤마다 외간 남자가 동침을 하고 아침이면 사라지곤 하여 실을 바늘에 꿰어 옷에 꽂았더니, 다음날 담벼락 밑에 바늘에 찔려 죽은 큰 지렁이가 있었고 열 달 후에 견훤이 태어났다’는 설화는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이른바 ‘야래자(夜來者) 설화’와 연관하여 이야기되는 것이 ‘못재 설화’일 것이다. 후삼국시대를 열었으며 왕건과 일생을 두고 경쟁하였던 견훤은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정적인 왕건에게 투항하여 비참한 말년을 보낸 인물이다. 시대의 흐름을 도외시하고 개인의 권력만을 탐한 지도자들의 몰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초라해 보이는 현재의 못재가 불운한 말년의 상징처럼 보여 애잔하기만 하다.

   
▲ 보은의 호족 황충이 지렁이의 후손인 견훤의 힘을 빼앗기 위해 소금을 풀었다는 못재. 견훤의 말년을 상징하듯 초라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험한 산세에 두 달 만에 준비 안 된 몸으로 하려니 자연스레 내내 후미담당이 되어 버렸다. 자칭 후미대장의 후미담당인 변광무 대원은 힘겨워 하면서도 구경할 것 다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유유자적이다. 요즘은 근력을 키우느라 실내 암벽도 한단다. 아마도 근력이 좋아지고 몸매가 날렵해져도 여전히 후미에서 우리들을 즐겁게 하리라 여겨진다.
 
어디나 마지막 고비는 있는 법. 갈령 삼거리에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암릉 지대가 연이어 두 군데 나온다. 암릉 앞엔 위험표지가 있어 좌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서야 한다. 암릉 구간 좌측으로 로프를 잡고 급경사를 따라 내려갔다가 암벽이 끝나는 지점까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오동진 후미대장과 윤정일 대원은 두 번째 암릉에서 과감하게 암벽 위로 오른다. 변광무 대원과 함께 또다시 밑으로 내려가고 바위 위의 오동진 대원을 바라보며 부러움의 한숨을 내쉰다.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변광무 대원의 모습을 보니 검은 옷에 몸집도 크고 헉헉대며 올라오는 형세가 그대로 성난(?) 흑곰이다. 엄청 힘들어 하며 허공에 대고 원성을 토해내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어찌하리! 억지로 웃음을 참고 힘내라고 갈령 삼거리가 요 너머라고 힘차게 외쳐줄 수밖에...

   
▲ 힘들어 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올라오는 변광무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형제봉을 뒤로하고 갈령에 내려서다
 
고대하던 갈령 삼거리는 칠흑의 암흑 뒤에 새벽이 오듯 힘겨운 암릉 구간을 넘으니 꿈결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후미를 가다보면 선두는 휘적휘적 산길을 잘 타는 것 같아 저질 체력에 은근히 열등감이 일기도 하는데 갈령 삼거리에 도착해 있는 대원들에게 물으니 한결같이  힘들었다고 한다. 조금은 위안이 된다.

   
▲ 갈령 삼거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조한덕 대원과 민성이.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여기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갈령이고 북쪽으로 가면 다음 구간인 형제봉이다. 갈령 너머로 청계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갈령 너머로 작약지맥의 청계산, 투구봉, 대궐터산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그동안 우두령에서부터 화령재까지는 접속구간이 없었다. 갈령 삼거리에서 갈령까지 오랜만에 걸어보는 접속구간이다. 1.2km의 하산 길은 그간의 접속구간에 비해 짧은 거리이지만 굴곡이 심한 산세를 넘나들어 허리는 결리고 허벅지 근육도 달달 떨려온다. 돌아보니 두 봉우리가 선명한 형제봉 위로 지는 해가 마지막 빛을 태우고 있고, 그 옆으로 천왕봉과 속리산 주능선이 굽이친다.

   
▲ 다음에 오를 형제봉위로 태양이 미세먼지 탓인지 희뿌옇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출렁이듯 굽이치는 속리산 천왕봉과 연봉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하산길 주변에 우리들을 배웅하는 기묘한 바위들이 여럿 나타난다. 속리산 주능선에선 이에 비할 수 없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니 기대가 된다.

   
▲ 하산 길에 입 벌린 물고기 바위 앞에서 오동진 후미대장.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어려운 구간을 잘 따라와 준 민성이를 오동진 후미대장이 손을 꼭 잡고 갈령으로 내려선다. 오랜만에 범상치 않은 산행 구간을 사고 없이 무사히 완주한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하다. 한동안 조망할 곳이 없어 답답했던 가슴도 속리산 권역에 들어서니 확 트이는 느낌이다. 높고 깊은 산은 땀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 이상의 선물을 준다. 단체사진을 찍고 돌아갈 차비를 하는 사이 어느새 갈령 주위엔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다.

   
▲ 날머리 갈령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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