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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국회에서의 통일논의(1963.12~1967.6)<연재> 역대 국회와 통일문제 논의 (6)
노중선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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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6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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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민족자주문제와 통일문제에 천착해 온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의 ‘역대 국회와 통일문제 논의’를 연재한다. 필자는 제헌국회에서부터 20대 국회에 이르는 역대 국회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한 논의들을 ‘민족화해와 자주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필자는 향후 국회가 평화통일과 민족자주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거쳐 민족화해시대에서 분단 극복을 위해 자기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6. 제6대 국회에서의 통일논의(1963.12~1967.6)

제6대 국회는 1963년 11월 26일 총선을 통해 구성되었는데 이는 1961년 불법적인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국회가 강제로 해산 당한 후 국회가 없는 2년 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선거 결과 전체 의석 175석 중 공화당이 110석을 차지하였는데 그것은 총 투표의 32.4%밖에 얻지 못했는데도 실제 의석을 차지한 비율은 63%에 이르는 것이어서 선거 제도의 원천적 결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튼 군사쿠데타로 국가권력을 틀어쥔 군부세력이 공화당을 만들어 1963년 가을 소위 민정이양을 앞둔 시점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한 선거공약을 발표했다. 즉 ‘승공태세를 확립하고 이를 위해 국가기관으로써 국토통일연구 기구를 두어 통일문제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국토통일 후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분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 국토통일을 위한 범국민적 초당외교 정책을 수립하고 유엔을 통한 국토통일을 촉진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1964년 1월 14일 국회 각 교섭단체별 대표 질문에서 윤보선 의원은 “민정당의 통일방안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 기본원칙 하에서 남북한이 통일되어야 하며 그 방법으로는 유엔감시 하에 유엔의 권위와 기능이 존중되는 전제 하에서 인구비례를 따져서 남북한을 통한 총선거에 의하여 이룩하는 것”(주1)이라고 했다.

이어서 국회는 1964년 11월 23일 김동환 의원 외 84명이 제안한 <국토통일방안에 관한 결의안>을 원안대로,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는데 그 내용은 “… 우리는 한국문제에 관한 유엔결의를 존중하며 ①한국국민의 자유 평화 및 민주독립국가로서의 존립과 안전이 영구히 보장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위에서 유엔감시 하에 남북한 토착인구비례에 따라 자유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국토를 통일한다. ②진정한 자유선거를 보장하기 위하여 선거감시단은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국가 중에서 선임되어야 하며 북한에 있어서는 공산세력의 지배와 간섭이 종식되고 자유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③통일된 한국의 민주주의와 전 한국국민의 자유 민권보장을 위협하는 통일방안은 일체 배격한다”(주2)였다.

그리고 1966년 7월 1일 제13차 국회 본 회의에서는 국무총리, 외무장관, 법무장관을 출석시켜 2일간 ‘통일문제와 반공법의 운용에 관한 질문’을 진행 하였다. 이 때 김대중 의원은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긴 시간에 걸쳐 여러 질문을 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은 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인데 이것이 헌법 부칙 제8조 ‘국토수복후의 국회의원 정수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 하는 이 국토수복의 개념과 상충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②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에 있어서 선거관리의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인가, 유엔인가?
③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에 있어서 공산당도 참가하는 것인가?
④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에 공산당을 참가 안 시키면 남북총선거는 이루어질 수 없고 참가시키면 공산당을 합법화시키게 되는데 이에 대한 총리의 견해를 밝혀라.    
⑤박대통령은 6월 8일 유성 발언에서 70년대 후반기에 가서 통일문제를 논의하자고 하였는데 그 때 가야만 통일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⑥북괴는 통일방안으로 남북연방안을 주장하고 있고 우리 헌법은 북한을 범죄집단시 하고 있으며, 국제정세는 다극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통일은 어떤 상황 아래 어떤 여건 속에 이루어진다고 보는가?
⑦현재의 우리 체제로 승공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⑧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이 투철하고 통일문제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사들로 통일문제에 대한 협의체를 즉시 구성할 용의는 없는가?
⑨유엔감시하의 총선거가 사실상 실현성이 있는 것인가?
⑩서독에서도 이제는 할슈타인 원칙(주3)을 포기하고 있는데 한국 외교에 있어서 실리추구를 위하여 ‘할슈타인’원칙을 포기할 용의는 없는가?
⑪한일조약이 체결된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조련계의 학교대책을 비롯하여 북한 민간인의입국을 계속허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⑫통일논의, 특히 남북교류논의를 일체를 반공법으로 다스리고 있는데 현행법 하에서도 정치적 학술적 논의에 관한 한 이를 허용할 용의는 없는가? 통일논의의 법적 한계를 밝혀라
⑬반공법조항을 마구 적용하여 관제공산당 조작의 태도를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가?
⑭명년 선거에 있어서 야당후보 또는 야당계 인사의 대 정부비난 규탄 발언에 대해 반공법을 계속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선거법, 형법 등의 공산주의자 아닌 사람에 대해서 공산당을 잡기 위한 법 아닌 법으로 다스릴 것인가?
⑮목적범이 아닌 결과범을 처벌하도록 한 반공법 제4조는 헌법 전문과 제8조의 정신에 위배되는 위헌적 조항이 아닌가?
⑯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하나로 묶어 완벽한 법률로 개정할 용의는 없는가?
⑰정부는 서민호 의원이 조련계 자금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구속하고 있는데 그 진상을 밝히고 만일 혐의가 희박하다면 석방할 용의가 없는가?
⑱이만섭 의원이 주장한 남북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주4) 주장이 반공법에 저촉되는가? 된다면 어떤 점에 위반되는가?
⑲자유민주 국가 여러 나라가 혁신정당의 존립을 허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를 허용치않고 있음은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것 아닌가?
(주5)”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국무총리, 외무장관, 법무장관들의 답변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국무총리(정일권) : ①대한민국은 유엔감시 하에 선거를 마친 한반도에 있어서 유일한 합법정부이므로 유엔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하더라도 선거의 주체는 대한민국이며 공산당은 우리 헌법을 비롯한 기타 법규에 불법화 되어 있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②총선거를 실시함에 있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총사퇴하고 남북한 동시 선거를 하든지 또는 북한 수복지역 내에서만 선거를 하든지 하는 문제는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③70년대 후반에 통일을 논의하자는 이야기는 그 때 쯤 가면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북괴를 능가하고 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승공통일을 기할 수 있고, 모든 상황이 북괴가 항복하든지 자멸하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올 것으로 판단한데서 나온 말이다.
④현재의 체제로서 승공통일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⑤통일문제는 현재 안전보장회의 사무국과 외무공무원훈련소에서 다루고 있으나 앞으로 범위를 넓혀 조야에서 많은 인사를 갖고 연구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이에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으나 현 단계는 그러한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⑥반공법은 정적 제압이나 선거 득승을 위하여 결코 악용할 수 없으며 하지도 않을 것이다.
⑦혁신정당의 조직이나 활동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당연히 보장되고 허용된다
.

외무장관(이동원) : ①북괴가 유엔의 권위와 결의문을 수락하기만 한다면 유엔감시하에 우리 헌법절차에 따른 총선거에 의한 통일은 가능하다고 본다.
②한국이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인정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으며 정부는 일본인이 개인적으로 북괴와 접촉하고 교류하는 데에도 일본정부에 강력히 이를 저지토록 요구하고 있으며,
③‘할슈타인’원칙은 포기할 수 없으며 기정정책으로 최대의 외교효과를 거두도록 노력하고 있는 이러한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④국제정세는 유동적이어서 공산권에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법무장관(민복기) : ①정치적 발언이라고 반공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며 반공법, 특히 제4조의 적용은 법률가로서의 경험과 법원의 판례 등을 기준으로 적용하겠으며
②반공법 제4조는 헌법 제32조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다.
③반공법을 개정한다면 동법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므로 정부로서는 동법의 개정을 반대한다.
④선거 시에 반공법의 적용은 선거법과 반공법의 정신을 존중하여 신중을 기할 것이며 수사당국의 양식에 의해서 이를 적용할 것이며
⑤서민호의원의 남북교류‧김일성담판 발언은 형식적 증거가 뚜렷하며 조총련계 자금수수 문제는 수사가 계속 중에 있고 법원의 제1심과 항소심에서 구속적부심사가 기각되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석방할 생각은 없다.
⑥이만섭 의원의 남북가족면회소 설치 주장은 반공법 제4조 및 제5조에 위반되며 일반이 이러한 주장을 할 것 같으면 단호히 처단되어야 한다
.(주6)

또한 1966년 7월 14일에는 정부 내에 국토통일문제 연구기구 설치문제와 국회 내에 통일문제 연구기구 설치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토통일연구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 제출되어 찬반 논의 끝에 이를 원안대로 가결하여 1966년 7월 25일 ‘국토통일연구특별위원회’(위원장 서인석)를 구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6.12. 6~7일 13명의 국회의원과 언론인, 학자 등 공술인 10명이 참여하여 ‘국토통일연구기구설치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공청회에서는 ①한국통일론에 대한 각종 도전(북한의 통일제의 포함)에 대한 비판 ②지금까지의 통일문제에 대한 태도 반성 ③지금까지와 앞으로 있을 각종 도전에 대한 대응책 ④통일문제에 관한 기구의 필요성 여부 및 기구의 형태와 기능 등을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는데 결론은 정부 내에 독립된 통일문제 전담기구로 국무위원을 장으로 하는 ‘국토통일원’ 설치를 건의하기로 하였다.(주7) 그리고 1967년 2월 27일 국회통일문제특별위원회는 ‘통일백서’를 채택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제6대 국회에서도 통일문제 논의 과정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들어 볼 수는 있었으나 정작 통일문제의 본질적 접근과는 동떨어진 내용들로 이어졌을 뿐이다. 또한 쿠데타 당시 선언했던 ‘반공 국시’에 걸맞게 북에 대한 반공적대적 입장만을 분명히 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오직 유엔을 통한, 유엔에 의한 논의만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박정희 정권 당국이 ‘승공’통일을 내세워 통일문제는 국력이 성장한 뒤 70년대 후반에 가서나 논의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국회도 그 어떤 비판이나 대안 없이 순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회에서의 통일문제 논의의 내용은 유엔감시 하 토착인구비례에 의한 자유선거, 승공통일, 유엔을 통한 국토통일, 국토통일연구기구 모색 이런 것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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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제39회, 國會會議錄,, 제12호(1964.1.14.) 9쪽

2.『國會史 제2권(제4대국회ㆍ제5대국회ㆍ제6대국회)』(1971.12), 756쪽

3. 1951년 서독 외무장관 할슈타인이 입안하여 당시 ‘소련을 제외하고, 동독을 승인하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매지 않는다’는 서독 외교의 기본원칙을 말하는데 박정희 정권이 원칙을 추종했다가 1971년 11월 폐기하게 되었다.

4. 1964년 10월 27일 이만섭 의원이 남북가족면회소를 설치하여 가족 명단의 정확한 조사, 면담 장소의 설정과 구체적인 면회 절차 등을 국제적십자사 주관 아래 한적과 북적이 논의 결정하자는 ‘남북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었으나 곧장 스스로 철회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맞게 되고 말았다.

5.『國會史 제2권(제4대국회ㆍ제5대국회ㆍ제6대국회)』(1971.12), 1183쪽

6.『國會史 제2권(제4대국회ㆍ제5대국회ㆍ제6대국회)』(1971.12), 1184쪽

7.『統一白書 -國會國土統一硏究特別委員會報告書-』(서울ㆍ1967) 참조

노중선 약력

   
 

고려대학교 노동교육과정 수료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간사 겸 연구원
고려대학교 노동교육원 강사 역임
평화통일연구회 상임연구원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통일뉴스 상임고문(현)

저서
『民族과 統一』(사계절 출판사, 1985)
『4·19와 통일논의』(사계절 출판사, 1989)
『現段階 統一方案』(공저, 한백사)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50년』(사계절 출판사, 1996)
『남북대화 백서 - 남북교류의 갈등과 성과』(한울아카데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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