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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무언가가 깨진 느낌이었어요”<응원기> 우리는 왜 평창에서 한반도기 들고 뛰고 있나
평창=이하나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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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0  14: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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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평창 일대에는 100여 명의 ‘남북공동응원단’이 활동 중입니다. 경기장 주변에 환영 현수막을 걸고 단일팀 경기를 찾아 한반도기를 나눠주며 경기장에서는 “우리는 하나다”를 외칩니다.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의 현장 이모저모 소식을 전합니다. /필자 주

 

 

   
▲ 남북단일팀 경기를 마치고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을 내걸고 환호하는 응원단. [사진제공 - 통일뉴스 함형재 통신원]

 

여기도 저기도 북한 사람, 우리 안의 벽이 깨지는 순간

경기장 여기저기서 “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북단일팀의 2차전 스웨덴전 경기장. 북측 응원단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바로 뒤에도, 옆에도. 응원단이 와서 앉는다. “반갑습니다”라고 외치니 손을 흔들어준다. 어떤 시민들은 악수해 달라 손을 내밀고, 어떤 사람들은 과감히 셀카를 시도한다.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난 응원단도 많았다.

   
▲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북측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관중이 악수를 청하자 손 잡아주는 북측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북측응원단과 ‘셀카’ 찍는 시민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내 안의 무언가가 깨진 느낌이었어요.” 김용(26, 서울)

“북측응원단 분들이 지나가면서 눈 마주치고 손을 흔들어 주시는데,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너무 반갑더라고요. 오래 떨어져 있어도 이런 게 민족인가보다. 이런 걸 느꼈어요.” 고윤혜(22, 부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근데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게 한국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심각하게는 처벌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정말 이게 뭐라고, 왜 인사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까. 사실 가슴이 아팠어요.” 김영욱(34, 서울)

“박자가 너무 빨라. 안 들려!”

우리의 목표는 경기장 안에서 ‘공동응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남북공동응원단’이다. 공동응원은 단지 남측 응원단, 북측 응원단만이 아니라 경기장 관중들 전체, 나아가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을 한 마음으로 만드는 응원이다.

그런데 공동응원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북측 응원단은 우리와 다른 빠른 박자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처음 들어보는 노래에 맞춘 율동을 펼치기도 했다. 예술적인 춤과 군무도 있었다. 북측 응원단과 미리 연락해 맞추거나 상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장에서 그때그때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새 우리의 박자는 맞춰지고 있었다. “우리는 (짝짝짝) 하나다 (짝짝짝)” 처음엔 속도가 다르던 ‘짝짝짝’의 박자가 같아졌다. 북측 응원단이 “우리는”을 외치고 손을 귀에 가져다 대면, 우리는 “하나다”를 외친다.

8대 0이라는 경기 결과가 말해주듯 단일팀은 스웨덴전 내내 밀리고 또 밀렸다. 우리 선수들이 골문 앞에서 아쉬운 기회를 놓칠 때면, 그 큰 경기장에서 모두가 한목소리로 “힘내라! 힘내라!”를 박자 맞춰 외쳤다.

경기장 내내 파도타기 응원, 그 앞에서 뛰어다닌 우리

북측 응원단은 이번에 ‘파도타기’ 응원도 시도했다. 그런데 파도가 번번이 중간에 끊기곤 했다. 남측 응원단은 자기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파도가 시작되자, 응원단은 관중들 앞을 손을 흔들고 달리며 파도를 이어갔다.

“자꾸 파도가 끊겨서 아쉽더라고요. 안 되겠어서 한번 뛰어봤어요. 처음엔 조금 쭈뼛했는데, 막상 구경하는 관중들이 호응해주시고 좋아하시더라고요.” 백태정(24, 울산)

   
▲ 파도타기 응원을 이어가기 위해, 달리는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함형재 통신원]

경기장 내내 한반도기가 휘날린 파도타기가 이어진 것에는 우리의 덕도 좀 있지 않았을까? 응원단은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장에서 이제 빠지면 어색할 것 같은 장면, 바로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이다.

이 현수막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걸고 남북 응원단이 마주 보고 응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경기 내내 열심히 응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북측 응원단이랑 빙상장을 사이에 두고 다 같이 ‘다시 만나요’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사실 이 가사가 마지막 헤어질 때 부르는 노래라 되게 슬플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가? 뭔가 기쁘고 다음에도 다시 꼭 만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응원단 김지희(25)

구하기 힘든 표, 응원단에도 '라인업'이 있다

응원단의 가장 큰 고충은 추위도 힘듦도 아니다. ‘표 구하기’가 가장 큰 난관이다. 응원단을 시작할 때부터 표를 구하려고 알아봤지만, 이미 여자 아이스하키는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돼 각 지자체 등에 분배, 판매된 이후였다.

밤새 온라인사이트를 클릭하며 취소표를 노리고, 중고나라에 ‘매복’했다가 표를 한 장씩 건지기도 했다. 여기저기 지인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혹시 경기 표가 있다면 달라는 독촉도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게 표를 구하다 보니 응원단 100여 명에 비해 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응원단에는 ‘라인업’이 있다. 응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매 경기 전날 라인업이 발표된다. 자신이 명단에 포함되면 기쁘고 또 그만큼 부담도 된다. 경기 전 선수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우리 스스로 응원단을 ‘함께 뛰는 12번째 선수’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런 식으로 선수들의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이야.

   
▲ 거리에서 응원연습 중인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얼마전 단일팀 아이스하키 경기장 좌석이 텅텅 비어있는 장면이 TV에 고스란히 방송됐을 때는 속상하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표를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대책을 세워야 하는게 아닐까?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응원을 준비한다. 응원단 라인업에 탈락하면,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

북측 응원단 얼굴 한번 보기 위해 거리에서 몇 시간 기다리며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 그리고 북측 응원단이나 예술단이 경기장과 공연장을 찾을 때. 우리는 거리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그들을 기다린다. 지나는 시민들이 우리가 뭐 하는지 궁금해 할까봐 친절히 설명도 한다. 삼지연 관현악단의 강릉공연장,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시민들에게 한반도기를 나눠주며 “우리 같이 인사하고 가요”라고 권했더니 함께 기다려준 시민분들도 있었다.

공연장 앞에서 마식령 스키장을 다녀왔다는 이지예, 임가을(고2, 스키선수) 학생들도 만났다.

   
▲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하고 온, 마식령 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마치고 온 이지예, 임가을 학생.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너무 멋있었어요”라고 엄지손가락을 들던 이들은 마식령에 다녀왔다며 먼저 자랑을 꺼낸다. 가장 좋았던 점을 묻자 “19가지 코스요리가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 응원단은 “마식령도, 공연 본 것도 너무 부럽다”며 한반도기를 건넸고, 학생들은 신나하며 함께 예술단을 기다렸다.

그렇게 밤까지 예술단을 기다리고, 우리는 결국 환하게 웃어주는 예술단을 만났다. “남쪽에서 이렇게 환영받아서 예술단 사람들 표정이 좋았나 봐요” 지나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의 말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어떻게 평창, 강릉까지 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에 묵호항에 만경봉호가 들어왔을 때 그 앞에서 인공기를 태우고 돌아가라고 소리친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손님을 초대해놓고 너무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어요. 우리라도 환영하는 걸 꼭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왔어요.” 권순영(36, 서울)

   
▲ 손에 한반도기를 가득 들고, 북측 삼지연 관현악단을 기다리던 순간.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만경봉호를 환영하러 간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창밖으로 내붙인 한반도기 "그 사람들도 우리가 보고 싶나 봐요"

추운 거리에 내내 서 있다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차 안에서 우리가 보이기는 할까? 걱정도 된다. 그렇게 단일팀의 첫 경기가 열렸던 관동하키센터 앞에서 응원단을 기다리던 때, 어두운 차량을 지나던 북측 응원단 차량 안에 불이 환하게 켜진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고속버스 차량 밖으로 한반도기를 바싹 붙여주고 있었다.

   
▲ 버스 안에 불을 켜고, 도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북측 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신성호 통신원]
   
▲ 버스 창문에 한반도기를 붙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북측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신성호 통신원]
   
▲ 북측 응원단이 저 멀리 건너편 경기장 안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우리도 환영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렇게 서 있는 건데, 그 사람들도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 고맙다는 표현을 보여주고 싶어서 버스에 불까지 켜고 그런 게 아닐까요. 그게 느껴져 감동적이었어요.” 신성호(24, 부산)

“버스 안에서 반대쪽 좌석에 앉은 분들까지 이쪽 창문에 붙어서 손을 막 흔들어 주더라고요. 이렇게 우리가 환영한다는 걸 표현하고 나니까, 거리에서 있던 시간이 아깝지 않네요.” 신상현(33, 서울)

추운 겨울,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한다

“내복 두 개 입어본 건 처음이야.”
“양말도 두 개씩 신으세요.”

며칠 전 10일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는 뉴스를 보며 우리는 용평 스키장으로 향했다. 북측 김련향 알파인스키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잠시만 밖에 서 있어도 머릿속까지 찬바람이 들어오는 날씨였다. 인터넷에 한국 선수를 응원하는 북측 코치들의 사진이 화제가 된 그 날이었다.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 날이기도 하다.

단일팀 경기장 앞에서 너도나도 한반도기를 받아가는 시민들(물론 ‘독도’도 정확히 표기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다” 구호를 자연스럽게 외치는 관중들. 바로 여기가 평화올림픽이 만들어지는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생각으로, 응원단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활동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데 기여할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 재일조선총련 동포들과 만나 함께 사진찍은 남측 응원단. ‘남북해외’가 하나되어 만난 공동응원이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을 향해 한반도기를 흔들어주는 북측응원단.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이 기사는 필자의 요청으로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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