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덕 (원불교 교무)

 

1960년대 농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너나없이 누구나 그렇게 가난했다. 300원 정도의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선생님께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수업료를 내는 시간, 유독 가난했던 나의 친구인 00이는 20원을 선생님 책상 위에 놓으며 흐르는 콧물을 닦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친구에게 스트레스를 받은 선생님은 어린 친구의 뺨을 때리시며 “야! 이 새끼야, 장난 하냐!” 하시더니 그 20원을 교실 바닥에 던져버렸다. 바닥에 뒹구는 노란색 1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줍던 사랑하는 친구의 등 뒤로 다시 화살처럼 박히는 폭언, “너 내일부터 학교 나오지마!!!”

그 폭력의 현장은 4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내게는 각인된 아픔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내게 영원한 화두인 함께 잘 사는 길, 상생의 씨앗이 뿌려진 날이기도 하였다.

▲ 가난한 친구와 손잡고 걸었던 따뜻한 동행의 길. 개인의 자력과 공동체의 정의로운 헌신과, 나눔으로 이어져야 하겠다. [사진제공-정상덕 교무]

가난은 모두에게 그렇게 폭력을 낳았고, 배움의 기회조차 빼앗아 버렸다.

어린이들의 그 아픔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그 누구도 없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알기에 다시는 수업료 달라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친구의 손을 한 번도 놓지 않고 보리밭 길을 따라 20 여분을 그렇게 걸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본주의는 왜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세계 최초 서민대출은행을 설립해 현대 자본주의 금융 산업의 차별적 관행에 저항한 무함마드 유누스는 세계적 빈곤퇴치 모델을 만들었다. 

27달러 소액대출로 시작한 서민 무보증, 무담보 소액대출 빈곤퇴치운동은 원불교를 창립한 소태산이 저축조합, 방언공사로 실현하고자 한 공동체 정신과 같은 운동이다.

농업 중심의 절대 가난을 넘어 이제 신자유주의는 상대적 빈곤으로 다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 평화를 향한 개인의 깨어난 자력의 삶과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인들의 정의로운 헌신과 경제인들의 정의로운 나눔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7년 12월 01일 정 상 덕 합장

 

 

원불교 교무로서 30여년 가깝게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함께해 왔으며, 원불교백년성업회 사무총장으로 원불교 100주년을 뜻 깊게 치러냈다.

사회 교화 활동에 주력하여 평화, 통일, 인권,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늘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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