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기자(kjw@yonhapnews.co.kr)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계기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논의되는 가운데 북한의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10월 9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북-미간 평화협정체결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이미 지난 27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김계관(金桂寬)-카트먼 회담을 진행, 양국 현안의 일괄타결 및 고위급회담 개최 합의 가능성이 대두됐으며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29일 성명을 통해 조 국장의 방미를 공식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또 조 총정치국장의 협상 파트너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며 조 국장의 방미가 "양국 관계 개선에 중요한 조치이며 한반도의 오랜 적대상태를 종식시키려는 목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군부를 대표하는 조 국장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한반도 적대상태 종식`을 논한다는 것은 곧 양국간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미 평화협정은 한반도 군사대결 구도의 기초인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으로 한반도 냉전구도의 기반인 불완전한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 전망이 강하게 대두된 것은 남북이 지난 25-26일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린 첫 국방장관회담에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문제가 논의되고 합의서 ④항에서 `정전협정`을 언급하면서부터이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주변의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를 개방해 남북 관할지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정전협정에 기초해 처리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이는 남북 분단체제 유지의 근본인 정전협정이 남북간 화해 협력 및 긴장완화가 진전되면서 서서히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것임을 예고하면서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가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또 회담에 앞서 주한 토머스 슈워츠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23일 조성태 국방장관에 서신을 보내 DMZ와 관련한 북측과의 협상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남북 분단체제 유지의 법적 권한이 유엔사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도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가 북-미 양국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경의선 철도 복원이나 도로 개설 등 MDL과 DMZ를 관통하는 각종의 남북 협력사업에 대해서는 유엔사를 대표하는 미국이 남측에 협상권을 위임할 수는 있지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까지 남측이 미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북-미 고위급회담 전망이 대두된 것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지난 5월말 재미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와의 대담에서 "김용순 비서 등 고위 인사를 미국에 곧 보낼 것"임을 밝히면서부터이다.

이어 지난 27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김계관(金桂寬)-카트먼 회담이 시작되자 현지 언론들은 지난 4월로 예정됐다 무산된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할 것이라고 전망을 내놨다.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곧바로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논의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미국 역시 작년 `페리보고서` 이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약속한 만큼 북한이 휴전 이후 줄기차게 요구해 오고 있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조명록 국장이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할 것이라는 미 국무부의 발표 역시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조만간 열릴 `북-미 고위급회담`은 정전협정 제4조 60항 `쌍방관계 정부들에의 건의`에 명시돼 있는 `고위 정치회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해 `고위의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체결되자마자 이 `고위 정치회의` 소집을 요구, 이듬해인 54년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 프랑스, 미국, 영국 등 각국이 `조선문제의 평화적 조정을 위한 회의`를 개최했으나 중국인민지원군과 유엔군 철수 문제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북측이 더이상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고 있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호전되고 있어 2000년내 열릴 북미 고위급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모종의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21일 중앙일보와의 회견에서 "내년 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때 남북한 `평화체제`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될 것"이라며 "(남북이) `평양 합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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