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장원(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장)

 

유럽과 아시아를 합친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이 있고 동쪽 끝에는 한반도가 있다. 불과 70년 전만 해도 서울역에서 조-러 국제열차에 몸을 실으면 이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모스크바까지 데려다 주었다. 거기서 다시 유럽행 열차를 타면 베를린, 파리를 거쳐 지중해 연안 도시 리스본까지도 갈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도 철도를 이용해 유럽으로 가고 싶으면 부산항을 거쳐 서울역까지 와서 국제열차로 갈아타고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이용해야 했다. 그만큼 한반도는 정치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였고 이에 대륙 침탈의 허망한 꿈을 꾸었던 섬나라 일제는 한반도를 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1951년 6월 12일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종단열차(TKR)는 안타깝게도 휴전선에서 가로막혔고 우리나라는 비행기나 배가 아니면 대륙으로 나갈 수 없는 섬 같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징기스칸 대제 이후 버려진 것 같았던 초원길과 비단길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전 세계 육지 면적의 40%에 불과한 유라시아대륙에 무려 70여 개국 45억 명의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다.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유라시아대륙에 위치한 나라들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7%대로 북미, 남미 등에 비해 두 세배나 된다. 이에 유라시아대륙 내 무역량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중국은 일대일로, 러시아는 신동방정책, 유럽은 10개의 교통축을 연결하는 Ten-T 정책을 통해 자국에게 유리한 국제교통회랑을 구축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유라시아대륙 국제교통회랑 구축을 위한 실제적인 사업을 시작해야만 된다. 물론 이명박 정부 때는 철의 실크로드, 박근혜 정부 때는 유라시아이니시어티브라는 이름으로 대륙 진출을 시도하였지만 매끄럽지 못한 대북 강경 일변도의 정책과 북한의 핵실험에 부딪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한 꿈은 선언 수준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요즘 같아선 남북 당사자 문제뿐만 아니라 미, 중, 러, 일 네 나라의 국내 정치와 외교 관계가 얽히고설켜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분쟁은 제3차 세계대전과 전 세계적인 경제재앙의 신호탄이 될 것이 자명하기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주먹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무엇보다도 서둘러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도모해야 하고 그 유력한 매개체는 유라시아대륙 국제교통회랑의 구축이 될 수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지난 정부에서 공염불로 그쳤던 유라시아대륙 국제교통회랑의 첫 출발점은 남북한 교통인프라 연계 구축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색될 대로 경색된 남북 관계와 대중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차기 정부는 국제 컨소시움 형태의 사업을 통해 남북한 교통인프라 연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한은 죽어버린 건설 경기를 되살릴 수 있는 국가신성장 동력의 창출이 가능해질 것이고 북한 역시 경제적 실리를 얻으며 조금씩 개방과 안정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10여 년 전 우리는 이미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경험을 갖고 있다. 요즘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그 때와 어찌 그리 흡사한 지 한쪽 가슴이 저려 온다. 당시 식민제국주의로 가득 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와 민족의 이익보다는 가문과 당파의 이익을 챙기는데 골몰하다가 나라를 빼앗겼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남이니 북이니, 보수니 진보니 사분오열하다가는 이제 다시는 한반도의 미래는 없음을 통렬히 주시해야 한다.

부디 차기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한 마음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상생대외정책을 추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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