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Top10 안에 넣는 작품이다. 말론 브란도의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연기와 알 파치노, 제임스 칸, 로버트 드니로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명연기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대부는 이른 바 ‘마피아’에 대한 동경과 공포를 동시에 주었다. 깊은 고뇌에 찬 대부, 그리고 피를 부르는 복수와 패밀리의 끈끈한 정. 범죄조직을 미화한다는 ‘판에 박힌’ 비판 속에서도 대부는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마피아들의 세계가 과연 이런 것일까, 상상하곤 했다. 예전 홍콩 영화에 빠지며, 홍콩 뒷거리를 주름잡는 폭력조직에 대해 동경을 품었던 것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면 안 되겠다.

▲ 오타비오 카펠라니,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 들녘, 2009.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는 마피아도 결국 인간이고, 또 가족이라는 구성원들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말이다. 잔인한 살인과 보복이 판치는 암흑가지만, 조직을 이어가야 할 ‘어리바리’ 손자나 조카가 영 미덥지 않은 것은 보스도 어쩔 수 없다. 하나하나 챙겨주고 가르쳐줄 수밖에. 물론 젊은 세대들 역시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삼촌이 영 귀찮다. 그저 술과 여자면 행복한데 뭔 조직이냔 말이다.

저자는 매우 새로운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당최 정신이 없긴 하지만,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독자를 바쁘게 만든다. 아울러 재치 있고, 기발한 문장들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저자는 기존 소설이란 문학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뭐 소원 성취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독특하긴 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돈, 권력을 손에 쥔 마피아계의 입지전적 보스 ‘돈 루 쉬오르티노’. 그는 할리우드에 몰려드는 돈을 이용해 돈 세탁을 성공적으로 해 나간다. 영화사를 하나 차려 거기에 손자를 사장으로 앉힌 다음, 영화의 인기에 상관없이 ‘합법적인 돈’을 거둬들인 것이다.

하지만, 원인 모를 테러가 발생해 많은 이들이 죽자, 돈 루는 손자를 급히 이탈리아로 피신시킨다. 그곳의 지역 보스 살 스칼리에게 손자를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살 스칼리는 오히려 손자를 자신들의 영역 싸움에 이용하고 만다. 이에 꼭지가 돌아간 돈 루는 직접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자신의 심복이자 전설의 ‘협죽도’ 킬러 핍피노와 함께…. 자 이제 시칠리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둥~!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우르르 등장하고, 또 사라진다. 책을 읽다가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등장인물 소개’를 몇 번이나 본 다음 돌아갔다는 고백을 한다. 하지만 그게 책을 읽는데 그리 큰 불편을 준 것은 아니었다는 점 또한 밝힌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면 장면이 그대로 ‘씬’이 되고, 등장인물의 이야기 모두가 대사다. 할리우드에서 조금 잘 나가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영화로 만들어도, 뭐 중박 정도는 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는, 하지만 조금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와 더 반가웠다. 그냥 웃고 지나가기엔 조금 아쉬운 이야기들 말이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비열하고 저열하고, 돈과 권력에 영혼을 팔아버린 ‘쓰레기’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나름의 정도를 지키고, 신사적으로 행동하려 애쓰는 돈 루와 같은 마피아들이 차라리 더 정이 간다고 하면, 이것도 구속감일까?

“젠장, 그래도 왕이 있었을 때는 총을 겨눌 대상이 확실했어. 근데 지금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어디 자네가 한번 얘기해봐.”

그가 코지모에게 눈짓을 주었다. 하지만 코지모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정치인이 처신을 제대로 못하면 선거 때 안 찍어주면 돼. 그것밖에 할 게 없어.”

밈모 삼촌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봤자 그놈은 콧방귀도 안 뀌어. 당을 바꿔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렇더라도 총 맞을 일은 없으니까. 젠장, 그게 민주주의라는 거야.”

코지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요즘 정치인들은 토끼보다 더 잽싸다니까.”

여러분들은 모르겠다. 그런데 난 이 장면에서 키득키득 거렸다. 토끼보다 날쌘 인간들 보신 분들 손 한 번 들어보시라. 손이 부족하면 발까지 들어보시라. 공중부양이 안 되는 게 안타까울 것이다.

언젠가 암흑가를 배경으로 그야말로 가슴 시원한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엉터리가 되겠지만, 적어도 그것 하나는 약속한다. 읽은 이들은 아마 속이 아주 아주 후련할 것이다. 왜냐고? 적어도 내 소설에서는 예전 그 누구처럼 우측통행을 강요하지도, 또 예전 그 누구처럼 시도 때도 없이 시민을 검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소설에서는 국민을 ‘성숙한 시민의식’ 들먹이며 노예처럼 다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벽보에 그림 그렸다고 구속영장 신청하는 개념 상실의 공권력도 내 소설엔 없다.

어떤가.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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