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니체)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 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 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싸일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오래 전 일이다. 내가 강의를 하는 모 시민 단체에서 무슨 서류를 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부탁한 서류가 하루가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 당시 강의를 하고 있던 모 관변 단체에서 서류를 뗐다.    

 관변 단체에서는 서류를 부탁하자마자 바로 메일로 보내주었다.

 마음이 아팠다.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 단체가 이렇게 불성실하다니!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시민 단체’‘운동 단체’를 떠나 버린다.

 그래서 좋은 세상은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의 품성이 잘못된 세상에 깊이 오염되었기에.

 촛불 집회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은 인기가 없었다고.

 많은 활동가들이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을 닮아 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괴물’이 되면서까지 이룬 공은 얼마나 큰가!)

 ‘박정희’‘전두환’같은 무시무시한 독재자가 있을 때는 적과 동지가 명확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독재자를 몰아낼 수 있을 만큼 힘이 크진 지금은 적과 동지가 마구 뒤섞여 있다.

 적들은 우리의 마음 깊은 속까지 침투해 있다.

 ‘하…… 그림자가 없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그것이 우리들의 집안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사이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있다/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촛불 집회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타오르던 우리의 꿈들을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꿈 조각들을 맞춰 가며 우리는 어떻게 좋은 세상의 큰 꿈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하…… 그림자가 없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

 ‘혼자’는 ‘인간(人間)’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이 싫고 단체가 싫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

 서로 싸우며 사랑하며.

 괴물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