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의 농담

  공주는 농담을 싫어한다.
  좀처럼 웃지 않던 부왕을 닮아서인가?
  고고한 척을 잘하던 모후를 닮아서인가?
  사실 그것보다는
  농담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농담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기 때문
  그래도 웃어야 한다고
  농담도 해야  한다고
  그래야 여왕이 될 수 있다고
  볼 때마다 강조하던 그 분 마법사의 말을 따라
  공주는 농담이 될 만한 말들을 열심히 수첩에 적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공주의 왕권이 정지되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공주에게는 갑자기 생긴 날벼락이었다
  이유가 뭐냐고 도승지에게 물은즉
  순살이 국정을 농단해서 그렇단다
  공주는 순살이 농담을 잘하기는 하지만
  국정을 농담한다는 것은 무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
  어쨌든 농담은 무서운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것다
  이제 왕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결국 농담 때문이란 말인데
  사실 국정 농담이란 말은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왕권이 정지되기 전에도
  순살의 농담 때문에 청문회라는 것도 열고
  특별 의금부도 만든다고 했었다
  공주더러도 조사받아야 한다는데
  공주가 올 것은 왔구나 생각하고
  백성들 앞에서 사과를 한 번 했는데
  공주의 진짜 죄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순살의 전남편 새끼 마법사
  지금은 감옥에 간 늙은 도승지
  따라서 감옥에 갈 뻔한 병든 소 실세 승지
  이들 모두 버티셔도 될 거라고 한 거라
  게다가 공주가 누구냐
  백성의 절반을 죽여도 왕위에서 안 물러나리라던
  부왕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몸
  이제는 늙어버린 부왕 시절 영의정 말에 따르면
  모든 백성이 나서서 물러나라 해도
  안 물러날 공주가 아니더냐
  공주 이제부터 악을 쓰고 버티기로 했것다
  사실 공주가 이렇게 된 건
  공주만 인정하지 않지 오래 된 일인 거라
  방귀가 잦으면 무엇이 된다 했것다
  그 이야기로 한 번 돌아가 보면
  3년 전 어느 날 문건 하나가 궁중에서 유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것다.
  그게 무어냐고 가지고 와 보라고 하니
  내시가 가지고 온 문건에
  ‘십상시의 국정 농담’이라고 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십상시는 무엇이고, 국정을 왜 농담한다는 말이냐
  내시가 바들바들 떨다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농단’이옵니다
  다시 보니 농단이라 씌어 있거늘
  공주 그 말을 모른다는 티를 낼 수 없어서
  그래 그것은 그렇다 치고
  십상시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것은 후한말에 있었던 내시들인데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자들이옵니다
  내시가 여기까지 말하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승지 하나가
  전하 심려치 마시옵소서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이옵니다
  공주는 옆에 있는 늙은 도숭지를 보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근방에 도승지 심기가 불편했었나 보다
  침울한 표정만 짓고 별로 말이 없었다
  특히 문고리를 잡고 있는 젊은 승지가 말하면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십상시라는 이들이 모여서
  늙은 도승지 목을 치려 했다는 것이
  이 문건에 나오는 내용이라는데
  그 십상시의 우두머리가
  순살의 남편 새끼 마법사였다는 것
  도승지는 어찌 생각하시오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요?
  전하 과히 심려치 마시옵소서
  요즘은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는 세상이라
  백성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사옵니다
  백성이 주인이라니 그것 참 해괴한 말이구료
  백성이 주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는 세상이라는 말이옵니다
  그게 그거 아니요
  아니옵니다 백성이 주인인 것처럼 해야 된다는 말이옵니다
  하긴 그렇다 부왕 때만 해도
  말 많은 놈들은 잡아다 주리를 틀어도 됐는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되니 영 성가시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백성이 주인이란 말은
  공주로서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
  하지만 백성이 주인인 척 해야 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판
  그런데 그 문건이란 게 왜 문제가 된 것인고
  승지 누군가가 그것을 저자거리에 돌린 모양입니다
  문고리를 잡은 승지가 도승지를 힐끔 보면서 답을 했다
  그게 누구인가 당장 잡아야 되지 않느냐
  그리고 찌라시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느냐
  근데 그것이 좀 발칙한 내용이라서
  전하와 관련된 일도 들어가 있고
  나와 관련됐다? 그러다가 공주는 멈칫했다
  도승지가 나섰다
  전하께서 예조판서를 불러서
  예조의 참찬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그 사람들 모가지를 날리라고 하신 일이
  문건에 나오는 모양이옵니다
  도승지가 여기까지 말하자 문고리 잡은 승지가 나섰다
  전하 괘념치 마시옵소서
  의금부에서 나서서 철저히 조사하고 있사옵니다
  아니 그렇다치고 내가 참찬도 못 자른다는 말이냐
  어디 내시 네가 한 번 말해 보아라
  내시는 바들바들 떨기만 한다.
  거듭 공주가 재촉하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지금은 시대가 참찬 정도는 판서가 자르는 시대이옵고
  그 일에 그 분의 따님이 관련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공주는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돌려야지
  그리고 비록 농담과 농단은 구별 못해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부왕에게 배워온 바 동물적 감각으로 알고 있는 터
  도승지 뭐 좋은 거리 없을까 이걸 덮을 만한 거
  도승지가 이때는 뭔가 머리를 잘 굴린다
  전하 마침 좋은 건수가 있기는 있사온데
  성질 더러운 만석꾼의 딸 하나가 있사온데
  땅콩 때문에 지네 가게 점원을 무릎 꿇렸다고
  백성들이 부글부글하옵니다
  백성이 주인인 것처럼 하는 세상이란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호호호
  공주는 이 말을 하고는 흐뭇해졌다
  간만에 웃음이 나왔다
  그 말과 동시에 전하 영특하시옵니다 하면서
  도승지도 문고리 승지도 내시도 박수를 친다
  공주는 내친 김에 하나 더 말해서 좀더 나가고 싶었다
  왜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유생들 붕당을
  오랑캐와 연결해서 해산한다고 했었는데
  걔네들 재판 건은 어떻게 되었소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요
  그게 아직 워낙 갖다 붙일 말들이 부족해서
  나라 바깥에서도 보는 눈이 있고
  그게 두려워서야 뭘 한단 말이요 당장 하라고 하시오
  도승지는 그런 점에는 이골이 나 있지 않소
  도승지가 문고리 승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전하 좋은 날로 잡아서 곧바로 하겠사옵니다
  그 두 가지면 찌라시는 상당히 잊혀질 듯하옵니다
  그래서 의금부의 조사 결과
  십상시는 졸지에 국정을 두고 농단이 아니라 농담을 한 게 되었고
  십상시가 농단을 해서 궁궐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문건을 저자거리에 퍼뜨린 승지는
  국가기밀을 유출한 게 되었으며
  공주가 예조 참찬들을 자르라고 했다는 말이
  적혀 있는 문건을 복사해서 퍼뜨린 승지 역시 
  궁궐 기밀 유출죄가 되어 의금부에 하옥됐단다
  그때부터 백성들은 공주가 하는 말은 모두 다 농담으로 여겼는데
  백성들이 행복한 시대를 만들겠다고 한 말도 농담으로 알고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겠다는 것도 농담
  무상보육 실시하겠다고 한 것도 농담
  4대 중증 환자 치료비 전액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것도 농담
  이것도 농담 저것도 농담
  아아 그런데 이걸 어쩌랴
  이렇게 농담을 자꾸 하다 보니
  어느덧 백성들은
  공주가 여왕이라는 것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와 결혼했다고 하는 공주
  가족도 없고 오로지 나라만 생각한다는 공주
  모든 백성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공주
  순살의 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나 보니
  자기 얼굴 젊어지는 데만 그리 신경을 쓰고
  그것을 해주는 의원, 주사 아줌마, 기치료 아줌마
  궁궐에도 아무 검문 없이 드나드는 판
  백성들더러는 대포폰 근절하겠다고 하고는
  지는 대포폰만 잘 쓰는 거라
  예조 참찬 자르라고 한 것도
  순살 딸 때문에 그랬다는데
  좌천 시킨 참찬들을 확인 사살까지 했다지
  경제 민주화 어쩌구 하더니
  거상들 이익 챙겨 주면서 돈 받아먹고
  문화 융성 어쩌구 하더니
  지 맘에 안 드는 문화인은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옥죄는 판
  그러고도 왕권이 정지되자
  할배 할매 선동해서 자기를 지키라고 하니
  정상적인 백성이라면 누가 공주 말을 믿을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주의 탄핵을 심판하기 전날
  공주가 하야하겠다고
  즉각 물러나겠다고 선언했것다
  새끼 마법사의 말에 따른 것
  하야 하면 전직 임금 예우도 받고
  친공파들이 대거 거리로 나와
  거리를 피로 물들이는 척하면
  모든 범죄도 사면되리라 여겼는데
  이게 웬 일인가
  친공파는 하야 선언하자마자 썰물처럼 사라지고
  몇몇만이 광분하여 날뛰다가 어디론가 가고
  촛불을 든 백성들이 그날 밤 궁궐을 에워싸더니
  공주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공주님은 농담을 잘해
  웃으면서 말해도 농담
  눈물 흘리며 말해도 농담
  심각하게 말해도 농담
  화 내면서 말해도 농담
  이 말도 농담 저 말도 농담
  하야 하겠다는 것도 농담
  농담 농담 농담 농담 

  이리하여 공주가 농단에 농담까지 하게 된 나라
  하야 선언도 농담이 되었으니
  탄핵 심판은 그대로 하게 되었는데
  그 뒤 공주는 어찌 되었을까
  아무튼 공주는 세계 역사상 가장 농담을 잘 하는 임금으로 남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아주 먼 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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