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마음》 《도련님》. 그동안 읽은 나쓰메의 작품들이다. 그의 많은 작품 중 그야말로 일부분만을 읽었을 뿐이다. 때문에, 여전히 나쓰메 소세키는 나에게 많은 궁금증과 또한 감동을 주는 작가로 남아있다.

《한눈팔기》는 소세키가 자신의 과거를 재료로 하여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의 문학과 삶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입문서 같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의 만년의 작품들을 가리켜 그 자신의 문학적 투영이자 고백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자전적 색채가 명료한 것으로 알려진다.

▲ 나쓰메 소세키 저 / 조영석 옮김 , 『한눈팔기』, 문학동네, 201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소세키는 고령인 양친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소세키가 두 살 때 다른 집의 양자로 보내졌다. 그 후 아홉 살에 양부모가 이혼함에 따라 생가로 돌아왔지만, 정식으로 그가 나쓰메 가에 복적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두 살이 되어서라고 한다. 그의 이런 어린 기억은 훗날 그의 문학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암울하고 우울하다. 이른 바 선진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주인공 겐조가 겪는 평범하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상들이 펼쳐진다.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식하고 고집불통인 아내,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 양부모, 형제와의 전혀 행복하지 못한 관계 등, 추상적인 지적논리를 중요시하는 그에게 다가오는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한 우울하다.

겐조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끌어안은 채 막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가 생각하는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 대신 그의 일상은 모두 불행하고 따분하고 때론 그의 수준에 전혀 맞지 않은 인물들로 채워진다. 그는 주변 이들이 모두 자신과는 맞지 않는, 수준 이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자신도 별 수 없다. 자신도 이 구차한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작품 속에서 겐조의 머리를 지배하는 ‘어떤 목소리’가 묻는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겐조는 끝내 모르겠다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목소리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게 아니지. 알아도 그 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겠지. 도중에 멈춰있는 거겠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소세키는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좌절하고 고뇌한다. 그러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자신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확인하려 노력한다. 즉 스스로 과거의 철저한 인식과 검증을 통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명확히 인식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깨닫는다. 그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소한, 하찮은 이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고고한 척, 잘난 척 떠든 바로 자신이 하찮았을 뿐이다.

주인공 겐조와 마찬가지로 소세키 역시 교편을 접고 전문 작가의 길을 나선다. 이는 소수의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직업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일본 최초의 근대교육을 받은 당대의 지식인으로써 일본의 올바른 길을 위해 펜을 들기로 한 것이다.

이는 그의 사후 10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전 일본인들이 그를 ‘진정한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른 바 일류 선진국이라 칭송받는 영국에서 느꼈던 노동자들의 참혹한 삶과 끔찍한 자연의 파괴, 이를 발전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숭상하고 똑같은 길을 욕망하는 일본의 모습. 이는 소세키에게 일종의 절망과 분노, 공포를 주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펜으로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이를 바로 잡으려 했다. 그의 한눈팔기는 바로 이러한 그의 소임을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과정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의 작품들은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의 정서는 물론 현대 일본인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일순간 정신적 공백에 빠졌던 일본인들의 당황스러움.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사라지지 않은 허기까지.

위대하고 숭고한 사상, 철학 역시 삶에서 이끌어진다. 모든 것은 하찮아 보이지만, 그 어떤 것도 하찮은 것이 없다. 시간 낭비, 헛짓거리로 조롱받는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삶이자 인생이다. 그 어떤 것도 그렇게 그냥 흘러가는 것은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소함으로 시작해 그 사소함으로 고통 받고 절망하는 이들의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이 하찮아 보이더라도, 분명 삶임을 부정할 순 없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많은 울림을 줄 수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일본인들의 심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데,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은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인의 정신적 스승이자 세계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 스스로 확인하는 기쁨이 크다.

“그렇게 간단히는 안 끝나.”
“왜요?”
“끝난 건 겉모양뿐이잖아. 그러니까 당신을 형식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라고 하는 거야.”
아내의 얼굴에 불만과 반항의 빛이 스쳤다.
“그럼 어떻게 하는 정말 끝이 나는 건데요?”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겐조는 토해내듯 씁쓸하게 말했다. 아내는 말없이 아기를 안아 올렸다.
“그래, 우리 아기 착하기도 해라. 아버지가 하는 말은 뭐가 뭔지 도통 못 알아듣겠네요.”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몇 번이고 아이의 붉은 볼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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